우유니 소금사막, 눈부신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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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니 소금사막, 눈부신 기억
  • 서진완
  • 승인 2017.03.08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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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버스에서의 악몽 같은 시간

서진완 인천대 교수(행정학)는 지난 2013년 1월 3일부터 2014년 1월 2일까지. 365일 간의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중·고등학생이던 두 아이와 아내까지. 온 가족이 함께 1년이란 시간을 붙어 있었다. '24시간 365일'을 꼬박 함께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기록을 <인천in>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우유니 소금사막으로


우유니 사막의 일출 ⓒ 서진완


숙소를 나서, 우유니(Uyuni)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라파즈에서 오루로(Oruro)까지 이어진 3시간 거리는 포장된 도로를 달리지만 이후 우유니까지 9시간을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한다. 아이들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차를 타본 경험이 없고, 자정을 넘어서부터 그 길을 달릴 텐데, 출발하기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이것이 바로 사서 하는 고생이라고 해야겠지!  

덜컹거리는 버스에 앉아 사막 위에서 뜨는 해를 보았다. 비포장도로 위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용케도 하루 밤을 보냈다. 다행히도 뒷좌석에 앉은 작은아이는 놀이기구를 탄 듯 좋아했다. 아침식사라면서 요구르트와 비스켓이 든 봉지를 하나씩 받았다. 먼지가 사방으로 날려서 창문 밖으로 먼지 이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버스가 멈춰 섰다. 우유니는 먼지로 뒤덮인 회색마을이다.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산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막 한 가운데에 있는 마을이다.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모래와 먼지가 날린다. 모두들 초췌한 모습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우유니 사막에서 ⓒ 서진완
 

우리와 함께 사막을 여행할 일행을 만났다. 한 대의 사륜구동 차량에 탈 수 있는 7명이 한 팀이 되어 움직인다. 우리 가족과 브라질에서 온 여성 Ivone과 스위스에서 온 커플 두 사람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차량 위에 배낭과 이틀 동안 먹을 음식을 함께 싣고 마을을 빠져나오자, 바로 사막이 시작되고 주변이 온통 모래밭이다. 모래사막 위에 난 길을 따라 달리자 눈앞에 넓은 들판이 펼쳐졌다. 대패로 잘 다듬은 듯 평평한 모래사막을 지나자 어느새 소금으로 뒤덮은 들판이 시작되었다. 

흰색 소금들판 위로 움직이는 차량들이 보인다. 누군가 쌓은 소금 더미가 있고 이를 채취하는 트럭도 보인다. 바닥에는 아직도 물기가 있다. 차량에서 내렸다. 발을 밟는 순간 바스락바스락 때로는 사각사각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이곳이 바로 우유니 소금사막이다. 주위를 둘러봐도 지평선만 보이고, 보이는 곳은 온통 흰색 소금뿐이다. 정말 경이롭다. 사람들은 점프를 하고, 엎드리거나, 앉거나, 제각각 자세를 취하면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맑은 하늘과 소금들판이 이곳에 맞닿아 있다.  


우리도 뛰어 보았다! ⓒ 서진완
 

소금사막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도로라고 하는 것이 따로 없다. 그냥 달리면 그곳이 도로가 된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이곳에서 눈을 감고 수 시간동안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흰 들판 전체가 그냥 소금이다. 소금사막 한가운데에 차를 세웠다. 운전기사가 차문을 모두 열고, 뒤 트렁크 문을 열어 식탁으로 만들었다. 소고기 스테이크, 야채, 그리고 볼리비아인들이 즐겨먹는다는 곡류(Quenua)로 점심을 준비했다. 시장이 반찬인데다, 이런 곳에서 먹는 점심이라 특별했다. 

햇살은 뜨겁게 소금을 달구고, 이에 반사된 빛으로 더운 열기가 느껴진다. 이곳 주변의 소금사막 바닥은 특이하게 벌집모양이다. 사막 한 가운데에 우리가 탄 차량만 있고, 주변에는 어느 것 하나 없다. 순간 조용함이 지나쳐 적막감마저 느껴진다. 우리들 목소리는 바람소리와 함께 날아가 버린다. 

다시 출발했다. 너무나 광활한 벌판인지라 아무리 달려도 똑같은 모습이고, 멀리 보이는 산들도 다가오려고 하지 않는다. 흐릿하게 보였던 산을 향해 달렸다. 몇 차례 졸다 깨다를 반복했다. 선글라스를 착용했음에도 눈이 부셔서 오랫동안 뜨고 있을 수가 없다. 멀리 높은 산이 있는 것을 보면서 소금사막을 얼마나 오랫동안 달렸는지 모른다. 꽤 오랜 시간을 달린 끝에 소금사막이 끝나는 지점에 도착했다. 

눈앞에 소금사막과 산이 맞닿는 곳에는 얕은 개천이 흐르고 집들이 몇 채 있다. 판자촌과 다름없는 이곳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온 일행이 먼저 큰 테이블을 차지하고 차를 마시고 있다.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가서 방 내부를 보는 순간 기절하는 줄 알았다. 인도 이후로 이렇게 열악할 상태의 방과 침대는 처음이다. 침대 매트리스는 완전히 꺼져있고, 벽은 벽돌의 맨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으며, 샤워시설은 유료지만 물이 귀해서 단 한번만 허용한다고 했으며, 그나마 따뜻한 물을 보장할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머물러야만 한다. 기막혀 하는 아내를 쳐다보았다. 


돈이 많으나 적으나, 이곳에서 선택은 이 숙소 뿐이다. 이곳에서 "평등"을 만난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 서진완


“평등한 곳이네요!” 이곳에서는 아무리 부자라고 할지라도 잘 곳은 이곳 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고 아내와 나는 서로 웃었다. 아이들과 함께 언제 이런 경험을 또 해 보겠느냐며 스스로 위로했다. 저녁식사 전에 따뜻한 커피를 한 잔 했다. 그동안 아내는 샤워를 하고 나왔다. 기대를 낮추면 샤워를 한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아내도 따뜻한 차를 한 잔 했다. 침대 위에 있는 모포는 그냥 덮고 잘 수 없는 상태였기에 배낭에서 침낭을 꺼냈다.

소금사막에서 아침을 맞았다. 찬 물로 얼굴을 씻자 정신이 맑아졌다. 호흡이 불편한 것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견딜만하다. 아내와 함께 일출을 보러 나갔다. 해가 방금 떠올랐다. 조금만 더 일찍 나왔다면 붉게 타오르는 햇살이 소금사막 위로 올라오기 전부터 볼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기는 했다. 그러나 해가 막 떠오른 지금 이 순간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지금까지 다양한 곳에서 일출을 보았지만, 소금사막 위로 떠오르는 이 광경은 꼭 놓치지 말아야 한다.  

흰 소금밭 위로 햇살이 반사되어 주변이 더욱 밝아졌다. 프랑스에서 온 일행 중 몇 명은 벌써 소금사막 위에서 일출을 맞고 돌아오고 있다. 소금사막 저편에서 떠오른 붉은 해가 흰 소금 위를 비춘다. 반대편에는 아직 지지 않은 달이 크게 떠있다. 눈앞에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소금사막 위에서 보는 해는 장엄하다 못해 엄숙하다. 아내와 함께 주변을 걸었다. 뽀드득 뽀드득! 정말 눈 위를 걷는 소리가 난다. 숙소 앞에 펼쳐진 얕은 개천물 위로 플라밍고 여러 마리가 노닐고 있고, 숙소 근처에는 라마가 풀을 뜯고 있다. 게다가 물 위에 비친 하늘은 더 없이 맑다. 


소금 사막을 걸으면 눈 위를 걷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 서진완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모습을 이틀 동안 마음껏 보고 느꼈다. 함께 여행을 했던 친구들과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바람은 여전히 심하게 불었다. 우유니에는 이제 우리만 남았다. 해는 완전히 져서 주위는 어두워졌다. 수쿠레(Sucure)로 떠나는 버스터미널 주변은 어둡고 버스 한 대만 서 있다. 배낭을 싣고 기다리는 동안 독일에서 온 세 명의 대학생 자매가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우유니를 떠났다. 어둠속에서 하늘에 별들이 총총 떠 있고, 버스가 언덕 위로 올라가자 우유니의 불빛이 보였다. 버스는 한동안 덜컹거리더니, 조용해졌다. 이제부터 포장된 도로다. 드디어 잠을 청했다.


볼리비아는 정말


스쿠레 시내의 모습, 이 도시를 '흰색의 도시'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 서진완

버스 실내에 불이 켜졌다.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을 떠 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3시도 안된 시간인지라, 어딘가 정차 했겠지 하면서 독일인 자매에게 이곳이 어딘지 물었다. 그녀는 운전기사에게 스페인으로 다시 물었다. 벌써 수쿠레에 도착했다니! “말도 안하고 이럴 수가!” 다행히 아침까지 버스 안에서 머무를 수 있다고 했다. 황당했지만 지금 나가면 아무리 예약한 숙소라고 하지만 문을 두드려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을 듯 해서 결국 버스 안에서 다시 잠을 청했다. 잠시 후 독일인 자매가 뭔가를 의논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우리도 인사를 했지만, 그 순간 걱정이 되어 나도 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24시간 문을 연 숙소가 있다고 했지만, 나는 여대생 3명이 이 낯선 곳에서 이 시간에 숙소를 찾는 것이 옳은 판단은 아닌 것 같다고 아침까지 있다가 우리와 함께 나가자고 권유했다. 다행히 내 말을 듣고 차내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침 6시 운전기사가 버스 안에서 자고 있던 모든 사람들을 깨울 때가지 함께 있었다.

모두들 부스스한 모습으로 버스에서 내려 배낭을 챙겼다. 우리는 택시를 타면서 독일인 자매와 헤어졌다. 그리고 예약해둔 숙소에 도착해서 문을 두드려 자는 직원을 깨웠다. 다행히 우리가 예약한 방이 비어 있었다. 배낭을 풀자 그동안 쌓인 긴장도 함께 풀어졌다. 큰아이는 먼저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고, 아내와 나는 뜨거운 물에 샤워를 했다. 옷들을 모아서 세탁을 맡기고 침대에 들어가는 순간 나락으로 빠지듯 잠이 들어버렸다. 


스쿠레 시장에서 갓 구운 빵을 샀다. ⓒ 서진완


신선한 빵을 구하러 아내랑 숙소 밖으로 나갔다. 좁은 거리를 지나자 재래시장이 나타났다. 시장 입구에서 갓 구운 빵을 샀다. 길을 걸으면서 바싹거리는 빵 끝을 뜯어 먹으며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분명 낯선 공간이지만 여행을 오래하다 보니 이런 시장거리가 익숙하다. 중앙시장에서 광장으로 이어지는 구시가지는 성당, 시청사, 그리고 식민지시대의 건축물들이 모두 흰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이 도시를 흰색도시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광장은 그렇게 크지 않지만 우거진 나무와 주변에 서 있는 흰색 스페인풍의 고풍스런 건물들이 둘러써 있어 다른 도시처럼 스페인의 영향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거리에는 키 작은 인디오들이 많다. 

아침에 맡겼던 세탁물이 저녁 늦게 도착했다. 그런데 방금 건조기에서 꺼낸 듯 물기가 그대로 남아있고, 작은아이 겉옷 대신 다른 사람 옷이 와 있는데다 큰아이 양말은 사라졌다. 스페인어를 모르니, 이를 어쩐다! 포기하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다. 점심을 먹으러 숙소를 나섰다. 언덕길을 올라가는 차들이 뿜어내는 매연이 좁은 거리를 뒤덮고 공기는 건조하다. 물로 자주 입술을 적시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입술은 더 크게 갈라졌다. 비염이 심한 큰아이는 나 보다 더 심했다. 말을 할 때도 음식을 먹을 때도 입술이 갈라지는 것을 조심해야 하니 괴로울 수밖에 없다. 남미여행을 시작하면서 건조한 날씨 때문에 모두가 힘들다. 

볼리비아의 헌법수도인 수쿠레와 볼리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산타크루즈(Santa Cruz)을 오가는 도로가 비포장도로라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수쿠레에서 버스를 탈 때, 일반버스에 비해 차체가 좀 높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결국 비포장도로를 달리는데 적합하게 설계된 버스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산타크루즈로 가는 길에 있는 식당 ⓒ 서진완

수쿠레를 출발해서 한참을 지나 어둠이 내리면서 비포장도로가 시작되었다. 그 후로 버스는 밤새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한차례 식당 앞에 정차해서 화장실을 이용하고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했다. 화장실은 너무나 지저분했다. 식당 역시 제대로 된 음식으로 보이지는 않아 아예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시 버스에 올랐다. 깜깜한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르더니 마침내 산 정상 근처에 버스가 정차했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지났다. “저것 봐요!”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리더니 어둠속에서 크고 작은 볼 일을 보는 것이었다. 이럴 수가! 우리는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이곳 사람들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다시 버스는 비포장도로를 쉼 없이 달렸다. 버스 안에는 히터를 틀지 않았다. 춥다고 해도 소용없다. 다른 승객들은 아무런 불평을 제기하지 않는다. 나의 웃옷을 벗어 아내에게 덮어주었다.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만 버스를 탈 때 사람들이 왜 담요를 하나씩 들고 타는지 그 이유만 이해할 뿐이다. 새벽 5시에 산타크루즈 터미널에 도착했다. 흙먼지 속에 달려서인지 배낭을 한참 털었다. 

새벽에 잠을 청한 탓에 아이들은 늦게 일어났다. 새벽에 감기 기운을 보이던 큰아이는 약을 먹고 잔 덕분인지 괜찮은 것 같다. 큰아이는 비염 때문에 고생을 해 왔는데, 남미에서는 건조한 공기에 매연이 더해 더 고생이다. 나 또한 입술이 트고 호흡까지 불편해서 빨리 볼리비아를 떠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산타크루즈 시내의 모습. 상대적으로 낮은 지대라 한결 호흡하기 편했지만, 매연은 여전히 힘들었다. ⓒ 서진완

결국 아내와 계획한대로 이곳에서 3일만 보내고 바로 파라과이(Paraguay)의 아순시온(Asuncion)으로 가기로 했다. 다행히 산타크루즈는 볼리비아에서 가장 낮은 지대인지라 한결 호흡하기에 편해졌다. 숙소 밖으로는 크고 작은 차들이 다녀서 차량소음이 무척 크게 들린다. 매연은 여전히 힘들다. 그동안 민감하고 예민했던 아내도 이번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받아들이다 보니 꽤나 무뎌진 듯해 보인다. 그러기까지 본인은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여행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아내와 나는 우유니에서 수쿠레로 올 때 만났던 독일인 세 자매 얘기를 자주 하게 된다. 그 세자매가 서로 의논하면서 여행을 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지만 독일의 교육에 대해 더 주목한다. 남미를 여행하면서 의사소통이 어려울 때마다 독일학생들에게 큰 도움을 많이 받았다. 스페인어를 영어로 통역해준 대부분의 친구들이 독일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또한 세계를 여행하면서 독일인들을 가장 많이 만났다. 물론 우리들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아내와 나는 오늘날 독일의 경쟁력은 바로 이런 대학생들이 전 세계를 다니며 살아있는 경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견을 같이 한다. 

최소 몇 개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은 물론이고, 등록금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는 나라. 한결 같이 열악한 현지 숙소에서 생활하면서도 그 나라를 이해하려는 이들 대학생들을 보면서 내가 만나고 있는 우리 대학생들의 현실과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아시아인으로서는 일본인들도 참 많이 만난다. 국가의 경쟁력과 내가 만나는 배낭여행자들의 국적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궁금해졌다. 나는 양자간에 꽤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많이 보고 많이 경험하는 젊은이들이 많을수록 상대에 대한 '다름'을 인정할 수 있고 어려움을 경험해 보는 것이 자신의 현재 모습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 부부가 우리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바로 그것이다.

아이들과 시내 중심가로 걸어갔다. 일 방향으로 되어 있는 좁은 길을 따라 몇 블럭을 지나자 붉은 색 교회건물이 보였다. 내부는 흰색으로 가벼운 느낌이 들었지만 천장은 나무로 되어 있어서 독특한 느낌이 든다. 광장 중심에 성당이 있고, 주변에는 흰색 건물들이 사각형의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앉아서 쉬고 있는 모습은 차분해 보이고, 깨끗한 주변과 잘 어울린다. 처음 보는 볼리비아 음식도 맛을 보고, 아이스크림과 케이크 가게에 들렀다. 낯선 거리에서 낯선 가게들을 보는 것은 항상 재미있다. 신호등이 따로 없어서 알아서 차량을 피해서 건너 다녀야하기 때문에 길을 건널 때마다 신경을 써야만 한다. 그때마다 큰아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엄마와 동생을 잘 보호해 준다. 특히 아내가 사진을 찍을 때면 큰아이는 앞에서 잠시 기다려주기도 한다. 

아침 바람이 어제보다는 차게 느껴졌다. 밤새 온도가 많이 내려갔다. 아이들을 깨우고, 배낭을 정리했다. 버스를 타면 추울 것을 예상해서 침낭 2개를 빼두고 배낭을 정리하니 배낭 부피만큼 가방에 여유가 생겼다. 남미에서 버스를 탈 때면 배낭에 열쇠를 단단히 채우게 된다. 열쇠를 채울 수 없는 부분은 케이블 선을 이용해서 묶는 것이 효과적이다. 


국제버스라더니! 

아순시온행 국제버스를 타기 위해서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고 버스터미널 주변에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터미널 주변 가게들은 지저분하기 그지없고 도로는 무단으로 건너는 사람들과 차량이 서로 섞여있다. 이 정도면 신호등이 아무리 제 기능을 발휘해도 소용이 없다. 우리도 사람들을 따라 길을 건넜다. 


이게 정말 아순시온으로 가는 국제버스 인걸까? ⓒ 서진완


국제선 출국세를 지불하고 아순시온행 버스를 찾았다. “이 버스 맞아요?” 국제버스라고 했는데, 이럴 수가 없다. 버스의 외형은 일반 시내버스보다 못하다. 실내좌석은 좁고, 저녁식사로 나눠준 도시락은 도저히 먹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렇게 좁은 좌석에 24시간을 어떻게 참고 가나!” 걱정이 태산같이 밀려왔다.

버스가 속력을 내자 창문 틈 사이로 바람이 심하게 들어왔다. 특히 작은아이와 바꾼 자리는 출입문 앞이라 출입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더 거셌다. 가족 모두 침낭을 꺼내 덮었다.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는 것을 창문에 서리가 맺힌 것으로 알 수 있다. 히터는 작동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각자 준비한 담요를 덮고 어느 누구도 히터를 켜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이런 버스로 국제노선을 다니게 하는 사람도 그렇고 아무런 불평 없이 타고 다니는 사람도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새벽 3시 30분경 드디어 포장된 길이 끝나고, 비포장도로가 시작되었다. 온 몸이 진동으로 흔들렸다. 잠을 청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길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다. 

차가 멈췄다. 볼리비아 출입국관리소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여권에 출국도장을 받았다. 다시 버스에 올라서 여권을 가방에 넣지 않고 기다렸는데, 파라과이 출입국관리사무소까지는 한참을 달렸다. 비포장도로인데다 일부 구간은 모래에 거의 바퀴가 파묻힐 정도로 깊어서 이때는 천천히 지나가기도 했다. 오전 11시가 지나서 비포장도로를 벗어난 듯 갑자기 버스가 조용해졌고 잠시 후 낯선 공터에 멈춰 섰다. 큰아이는 인터넷에서 보았다면서 이곳이 파라과이 출입국관리사무소라고 했다. 모두들 자기 짐을 들고 버스에서 내렸다. 


파라과이 국경에서 ⓒ 서진완
 

출입국관리소직원들은 개인들이 소지한 짐 하나하나를 모두 꺼내게 하고 나서 검사를 시작했다. 볼리비아에서 들어오는 마약 때문에 검사가 항상 삼엄하게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때 한 직원이 나를 보면서 여권을 달라고 했다. 나의 여권을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쭉 살펴보고 우리를 쳐다보더니 가족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배낭을 모두 들고 가라고 한다. 검사가 필요 없다는 신호를 한다. 이렇게 고마울 때가! 사무실로 가서 입국수속을 마쳤다. 아직도 짐 검사를 위해 사람들이 흙먼지 날리는 바닥에 서서 기다리고 있다. 한층 여유가 생긴 우리는 화장실에서 간단히 세수를 하고 다른 사람의 수속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12시를 훌쩍 넘겨 모두 버스에 올랐다. 점심으로 나눠준 도시락을 받았다. 배는 고프지만 입맛이 없다. 버스 문에는 어디에선가 나타난 인디오 모자가 손을 내밀고 있다. 남은 도시락과 음료수를 건네주면서 얼굴이 마주쳤는데, 의외로 고마워하는 얼굴이 아니다. 이곳에서 매일 이 시간에 나타나서 이런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한 탓인지 너무나 당연하게 받는다. 그래서인지 도시락을 주는 내가 오히려 당황스럽다. 버스는 먼지를 날리며 출발했다. 창 너머 이들이 서 있는 모습이 멀리 보였다. 

가도가도 끝이 없다. 불편하고 비좁은 의자에 오래 앉아 있으니 온 몸이 비틀렸다. 창밖으론 밀림이 이어졌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큰아이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여행을 준비한 과정에서 못 다한 얘기, 이번 여행이 엄마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줄지 등 많은 얘기를 했다. 

한낮은 더워서 계속 창문을 열고 달렸는데 해가 지는 순간부터 이내 공기가 달라졌다. 주변에 어둠이 깔리고 산타크루즈를 떠난 지 24시간 만에 목적지 아순시온 시내로 들어왔다. 여행을 시작하고 다양한 고생을 했지만, 흙먼지가 들어오고, 에어컨은 물로 히터도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은 비좁은 버스에 앉아 이렇게 긴 시간을 타고 온 것은 처음이다. 터미널에 도착하고, 우리는 모두 초췌한 모습 그대로 버스에서 내렸다. 손으로 옷을 틀자 먼지가 흩날린다! 

<정리 = 이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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