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라면 삶아먹지 않아도 배가 안 고프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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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라면 삶아먹지 않아도 배가 안 고프더라고."
  • 김인자
  • 승인 2017.03.03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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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우리아파트 경비할아버지

오늘은 왜 이렇게 아무 것도 하기가 싫지? 침대속에서 왠종일 뒹굴뒹굴하고 싶은데 현실은 잠시도 쉴새 없이 중중거려야하는 공휴일. 심계옥엄니 치매센터에 가시지 않고 집에 계시는 날은 아침에 깨셔서 저녁 잡숫고 주무실 때 까지 잠시도 한 눈 팔 수 없이 하루가 바쁘다. 한달도 넘게 감기한테 잡혀서 몸띵이가 내 몸 같지 않은 요즘. 바쁜 아침부터 괜히 단맛 나는 것들이 땡겨서 작은 아이에게 심계옥엄니를 부탁하고 마트에 갔다. 입맛이 뚝 떨어져서 암껏도 먹기 싫은데 감기약이 독해서 빈속에 약을 먹으니 위장까지 탈이났다. 오늘은 작정하고 머시든 먹고 싶은게 있음 무조건 사먹으리라 생각하고 목적을 분명히 세우고 간 마트. 그런데 막상 뭘 사려 하니 정작 먹고 싶은 게 없다. 천원의 행복이 어쩌구 하길래 맛이 어떤가 하고 서양과자 두개를 샀다.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아니었는데 앉은 자리서 오물오물 죄다 까먹고 그것도 모자라 식빵 두 개를 더 찢어 먹고 그래도 속이 허해서 또 뭐 먹을게 없나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하다 운동이나 하자 하고 계단을 오르는데 다리 한 짝 올리기가 어찌나 고역이던지. 이것이 내 다리냐 저것이 니 다리냐 소리가 저절로 나오게 다리 한짝 계단에 올릴 때 마다 에고고 소리가 절로 난다.
그래도 어찌구 저찌구하여 아파트 맨꼭대기층까지 겨우 올라오기는 왔는데~
 
"아고 울 김선생님 여기까지 또 올라오셨네~"
돌아보니 중앙경비반장 할아버지시다. 순찰을 나오셨나보다.
 
"아... 예... 운동 삼아 계단 좀 타느라고요."
"오늘 날도 화창하니 좋은데 밖에 나가 걸으시지."
"아 ? 예? 심계옥엄니 오늘 삼일절 휴일이라 집에 계셔서 멀리는 못 나가고 또 심계옥엄니가 언제 찾으실지 몰라서 엄니 동선안에서 움직여야해서요..."
"아, 예 그르시구만여~"
 



우리 아파트는 경비할아버지들이 너무 좋으시다. 작년에 우리집은 이사를 했다. 새로 지은 새 아파트로 이사가지 않고 오래된 우리 아파트 단지내에서 옆동으로 자리만 옮겨 앉은 이유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우리 아파트에 살면서 내가 벤치에서 매일 그림책을 읽어드린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헤어지기 싫어서였고 또 한가지 이유는 너무도 좋으신 경비할아버지들 때문이었다.
 
치매센터를 다니시는 심계옥엄니는 센터에 가실 때 차량으로 이동을 하시는데 송영때 보호자 사인이 없으면 센터에 가실 수도 없고 오후에 집에 오실 때도 역시나 보호자가 나와서 사인을 하지 않으면 요양사선생님들이 차에서 내려주지를 않는다. 사랑터에 다니시는 치매할머니 할아버지과 보호자들은 반드시 이 규칙을 따라야한다.
 
학기중에 강연이 많은 나는 오후 네 시 반에 돌아오시는 심계옥엄니를 마중해야 할 때 부득불 강연을 포기해야했다.
그런데 경비할아버지들께 어렵사리 한번 부탁드리고 난 다음부터는 내가 부탁드리지 않았는데도 경비할아버지들이 당신들 스스로 나오셔서 사인을 해주시고 내가 무슨 일을 하다가 심계옥엄니 마중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을라치면 경비할아버지가 먼저 나오셔서 심계옥엄니 불안하지 않게 치매센터차 앞에서 기다려주신다.
 
우리아파트는 경비할아버지들이 각 동에 한 분씩 계시는데 우리동 경비할아버지 뿐 만 아니라 다른 동 경비할아버지들까지도 너나 없이 심계옥엄니를 신경 써주셔서 나는 늘 경비할아버지들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 김 선생님 방학 동안 쉬지도 못했나보네. 얼굴이 많이 상했네. 아직도 그놈의 감기가 안 떨어졌나?"
"예.. 이제 곧 낫겠지요..고맙습니다."
 
처음에 뵈었을 때 보다 머리숱도 많이 성글어지시고 주름도 많이 생기신 경비할아버지 ...뒷모습을 보니 나는 참 좋은데 그만큼 또 왠지 짠하다.
 
"참 어즈께 경비실에 갖다 논 쪼꼬레 김 선생님이 갖다 놨어요? 누가 갖다논지도 모르고 내 잘 먹긴 했는데..."
"아 예... 그냥 초코렛이 아니라고 하길래... 입맛에 맞으실지 어떨지도 모르고 한 끼 식사가 된다고 하길래.."
"좋든데여... 내 생전에 미제 쪼꾸렛도 먹어보고... 그거 한 개 먹으니까 든든하드만요. 밤에 라면 삶아먹지 않아도 배가 안 고프더라고."
"예... 건강하셔요, 할아부지..."
"아고, 나야 다 산 늙으이고 젊은 김 선생님이 건강하셔야지요.
헐일도 많으신 냥반이 ?
으트게 오늘도 조 바깥에 한 번 나가 보실랍니까?"
"바깥이요?"
"김 선생님 옥상에 올라가서 바깥 세상 바라다 보는거 좋아한다믄서여? 전기 반장님이 그르드만. 접때 순찰 돌때 김 선생님 지붕 꼭대기에 나가게 해줬다고~~"
"예? 아 예~"
"이제 봄이야~ 감기 같은거 이제 고만 툭툭 떨쳐 버리고 어서 어서 근강해져서 펄떡펄떡 뛰다녀야지여 ~~ 오만군데 안 가는데 읍씨 댕기믄서 그 체력으로 우짤라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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