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만 잃어버리면 내가 가져갔다고 생떼를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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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만 잃어버리면 내가 가져갔다고 생떼를 써..."
  • 김인자
  • 승인 2017.05.12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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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치매 할머니의 손목시계
 
"우와,예쁘다~
할아버지, 시계줄에 반짝반짝 보석도 박혔네요?"
짜장집 할아버지 가느다란 손목에 예쁜 시계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헐렁 ~헐렁~
 
그런데 할아버지 손목에 찬 시계가 많이 좀 크다.
"이거? 내꺼 아니야. 울 할망구꺼야."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혈관성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를 할아버지가 매일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하신단다.
엄마가 아가 키우는 거랑 똑같이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몸무게 50키로인 할아버지가 몸무게 60키로인 할머니를 매일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그렇게 하신단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매일.
 
노랑 봉다리 달달커피를 좋아하는 할머니는 커피 드신걸 금방 까먹고
자꾸 자꾸 드셔서 살이 자꾸만 자꾸만 찐단다.
그런 할머니를 말리느라 할아버지는 자꾸 자꾸 살이 마른단다. 노랑 봉다리 커피를 찬장 깊숙이, 다용도실 저 구석에 꽁꽁 숨겨놔도 술래잡기 대장 할머니는 귀신 같이 찾아내서 노랑봉다리 커피를 먹고 먹고 또 먹고 하신단다.
 
할머니는 밥 먹은 것도 까먹고 커피 먹은 것도 금방 까먹는 까먹기 대장.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까먹은 걸 금새 금새 찾아내는 찾아내기 대장.
요즘은 할머니가 시계를 어따 뒀는지 자꾸만 까먹어서 매일 매일 온 집안을 홀까닥 뒤집어 시계를 찾는단다. 아침에도 시계가 없어졌다고 온 집안을 홀랑 뒤집었는데 세탁기속에서 시계가 나왔단다. 어제는 냉장고 안에서 찾은 할머니 시계. 술래잡기 놀이에 지친 할아버지는 이제부터는 아예 할머니 시계를 할아버지가 차고 다니시기로 했단다.



 
"뭐만 잃어버리면 내가 가져갔다고 생떼를 써..."
할아버지가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말씀하신다.
 
"내가 도둑놈을 집에서 키웠어. 오빠도 조심해. 우리집에 도둑놈 있어. 아주 숭헌 놈이야. "
 
때르릉 ~~
"아, 금방 갈꺼야~"
 
때르릉~
"아, 금방 간다고오~ 문 꼭 걸어 잠그고 불 다 켜놓고 있어."
 
1분마다 할아버지 전화에 벨이 울린다.
할아버지를 찾으시는 할머니 전화다.
 
"경찰관 나리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어요. 내 돈이 없어졌어요. 빨리 와서 잡아가요."
 
"네, 알겠습니다.할무니.이 경찰 나리가 금방 가서 나쁜놈 잡아갈께여. 조금만 기다리세요."
 
하루에도 열두 번 씩 도둑놈도 됐다가 오빠도 됐다가 경찰관 나으리가 되는 짜장집 할아버지.
 
우리 할아버지
짜장할아버지가
나는
좋은데
마음이 아프다.
 
"할아버지, 제가 책읽어드리까요?"
 
커피대장, 까먹기대장 할머니의 엄마인 찾기대장 할아버지에게 그림책을 읽어드렸다.
 
할아버지가 좋아서
너무 마음이 아파서
천천히
조용조용
할아버지에게 정성스럽게 그림책을 읽어드렸다.
 
"아, 참 좋네. 이뿐 선상님 저번에 테레비에 나왔지? 내가 테레비에서 듣고 참 좋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목청이 참 좋으네. 우리 이쁜 선생님 목소리가 백만불짜리야..."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오래오래 사셔야해요.
커피대장 까먹기대장할무니 옆에서 오래 오래 오빠도 되고 경찰관 나으리도 되고 숭한 놈이 되어주실라믄 할아부지가 모쪼록 건강하셔야해요.
꼭이예요, 할아부지 아라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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