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이 갈라놓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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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이 갈라놓은 것들
  • 양진채
  • 승인 2017.06.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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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나팔꽃 담장 아래 / 이해선

<철조망 ⓒ박래철>
 

6월은 ‘호국보훈護國報勳의 달’이란 표어가 없어도 우리 국민에게는 결코 ‘국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달이다. 아직 3·8선이 남아 있고, 통일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쟁이 1950년에 일어났으니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고 까마득한 옛날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또 아주 까마득하다고만 할 수 없다. 전쟁은 아직도 기득권 보수 세력이 안보를 들먹일 때 써 먹는 단골 메뉴고, 전쟁을 겪은 세대에겐 잊히지 않는 상처이니 아직 현재진행형이라고 해야 맞겠다.
 

이해선 소설가의 단편소설 <나팔꽃 담장 아래>는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다룬 소설이다.

6월이니 이왕이면 전쟁과 관련한 소설이면서 배경이 인천인 소설을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떠오른 소설이 이 <나팔꽃 담장 아래>이다. 제목이 특별한 것도 아니고, 소설 내용도 전쟁으로 인한 가족의 상처이고 보면 아주 특별하다거나 색다른 소설은 아닌데 어찌된 일인지 소설 속에 잠깐 등장하는 부평역에서 백운역 가는 길에 있는 캠프마켓 담장 얘기가 뇌리에 또렷이 남았다. 물론 소설 속에서 ‘부평’이라는 지명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작가가 인천에서 활동했고, 미군부대 옆의 백화점 운운하는 것으로 보아 그리 짐작할 뿐이다.

 

그네는 택시기사의 불평을 건성으로 넘기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 땅 미군부대를 되찾자는 현수막이 전봇대 사이에서 나부끼고 있었다. 미군부대 땅을 되찾아 직선도로를 내고 근린공원을 조성하자는 시민운동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백화점 길목에 자리잡고 있는 미군부대 담벼락엔 담으로부터 2미터 이내 주정차를 금한다는 영내 사령관의 공고문이 붙어 있었다.

 

소설은 그네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네는 칠십 줄의 노인네다. 화가였던 남편이 공동으로 김일성초상화를 그리는데 동원됐다가 문제가 될까봐 월북했다. 지금의 남편은 그의 후배로 곤경에 처한 그네를 위기에서 구해준 뒤 함께 살게 된다. 그네에게는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미전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네의 어머니는 그네의 새로운 결혼생활을 위해 손주 미전을 업고 나갔다가 잃어버린다.

 

-아이고 야야, 애를 잃어버렸다야. 어떤 미군이 애기가 이쁘다고 쪼꼴레또를 주며 안아본다기에 내려놨더니, 그만 안고 가버렸어야….




<미군부대>



그렇게 잃어버린 줄 알았던 아이는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네 서방 보기 안 됐어서…. 모두 빨갱이 따라 넘어갔는데 네 뒤까지 맡은 유서방 보기가 여간 안 됐어야지. 남의 자식 키워서 좋은 사람 있겄냐? 그것도 빨갱이 된 사람의 자식을….

 

사 년 전에야 그네는 어머니가 아이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아이를 고아라고 속이고 미군에게 맡겼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당시에는 종종 있는 일이었다. 그 일로 그네는 어머니와 불화한다. 그리고 오늘 그 아이가 미군에게 맡겨진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풍산댁에게 맡겨졌다는 것을 어렵게 찾아간 자리에서 듣게 된다.

이렇게 소설 속에서 아이는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미군에게 맡겨진 것도 아니라, 먼 친척에게 맡겨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설의 한 축이 ‘미전’으로 인해 어머니와 등을 진 그네를 다루고 있다면, 다른 한 편으로는 화단을 중심으로 한 월북한 전 남편과 현재의 남편이 등장한다. 소설 속에서 전 남편도, 현재의 남편도 삶속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모두 화가이고 이 둘은 그림을 매개로 등장한다. 전남편이 화가이지만 어떤 사람인지 드러나지 않는다. 현재의 남편은 오로지 세상의 평판과 상관없이 예술을 하는 사람이다.

 

-진짜가 아니면 그려선 안 돼. 자기를 속이지 말고 자기 것을 그려야 해. 타이틀 따내기처럼 수상에만 집착하고, 전시 경력만 내세우면 헛 것을 그리게 돼.

 

이런 남편이 팔지 않은 그림이 있다.

 

곧 울 것 같은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이 낡고 퇴색한 금박 테두리 안에서 부옇게 떠올랐다. 흐릿한 배경 속의 아이는 냉이꽃 같은 풀꽃을 한 줌 쥐고 서 있었다. 뒤틀리고 늘어진 원피스자락이 회색빛 담벼락과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길다란 회벽 끝나는 자리에 영문자 팻말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 팻말 너머에서 금방이라도 푸른 눈을 가진 미군 병사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호통치며 달려나올 것 같았다.

 

이 남편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해보자. 소설 속에서는 자세히 드러나지 않지만 이 남편의 순애보야말로 지극하다. 선배의 아내를 위험에서 구했고, 가정을 이뤄 책임졌으며, 중국여행을 떠난 것도 실은 남북 작가들의 공동기획전 계획의 일환이긴 하지만 아내의 전남편이자 선배를 찾아볼 생각도 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현재 남편에 대한 그네의 감정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북으로 간 남편은 실은 유명한 화가가 되어 있었다. 그의 그림 역시 비싸게 거래되고 있었다. 전남편은 어렵게 남쪽의 아내에게 소식을 전해온다. 편지와 그림 한 장으로.

 

한 폭의 그림이 눈앞에 드러났다. 아이를 안고 나팔꽃 담장 앞에 서 있는 여자.(중략)

그림 속 아이는 복숭아처럼 발그레한 볼과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하고 청자빛 차림의 여자 가슴에 안겨 있었다. 그네는 가슴으로부터 아이의 숨소리를 듣는 듯 했다.

 

현재의 남편이 그린 그림이 미군부대 담장을 배경으로 한 아이라면, 전남편이 그린 그림은 나팔꽃 담장을 배경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그네다. 두 그림은 아이와 담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아주 많이 다르다.

소설 도입부에서 그네는 어찌된 일인지 꽃이 좋아 1층으로 이사를 왔지만 나팔꽃만큼은 커튼으로 가려버리고 또 덩굴도 자르려고 하는데 뚜렷한 이유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것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줄을 타고, 얼어붙은 먼 땅에서 나팔꽃 담장을 잊지 않은 한 사람의 모습이 점점 뚜렷이 다가왔다.

 

소설을 정리하자면 전쟁통에 남편과 이별하고, 아이를 잃어버린 그네가 어머니와 남편의 흔적을 다시 만나면서 상처를 새롭게 환기하는 소설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소설은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는 느낌이다. 특히 등장인물의 감정을 묘사해야 될 때 하지 않고 있다. 전남편이 그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전남편에게 그네는 어떤 존재였는지. 같은 물음으로 현재의 남편은 그네에게 어떤 존재인지, 남편에게 그네는. 잃어버린 딸 미전과 현재 곁에 있는 딸 영인에 대한 감정. 또 그림과 편지로 대면하게 되는 전남편의 흔적이 그네에게 어떤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지 거의 생략되어 있다. 전쟁은, 전쟁으로 인한 상처는 그 많은 감정조차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가.
 

소설 속 미군부대는 이제 시민의 품으로 돌아와 근린공원이 조성되었으며, 남은 땅 역시 활용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여전히 담장의 일부는 회색빛으로 남아 있지만 이제는 ‘미군부대가 있던 자리’가 되었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음성같은 나팔소리’를 들으며 가위를 든 채 나팔꽃 넝쿨로 다가갔던 그네는 어찌되었을까.

조성된 근린공원은 미군부대 흔적을 빠르게 지워나가며 푸르다. 전쟁의 상흔도 이렇게 시간에 기대어 치유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햇님이 방긋 웃는 이른 아침에 나팔꽃 아가씨 나팔 불어요… 따따또또 따따또또 나팔 불어요.

 

명랑하게 들려오는 나팔꽃 노랫소리처럼 그네가 나팔꽃과 정면 대결하길, 그 대결에서 성공하길 빌어본다. 



< 6·25 전사자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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