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송도유원지에 대한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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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송도유원지에 대한 헌사
  • 양진채
  • 승인 2017.07.21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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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허니문 카/양진채
 ⓒ유동현



송도유원지에 대한 개발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송도유원지. 한때 여름이면 인천시민 누구에게나 사랑받았던 유원지였다. 내게도 그랬다. 20대 작장에 다닐 때는 유원지 내에 ‘ㅇㅇ회사 휴양지’라고 플래카드를 내건 가건물까지 있어 직장인들끼리 단합대회를 하기도 하고 가족끼리 놀러가기도 했다. 결혼해서는 아이들과 유원지 내에 있는 물썰매장에서 물놀이를 즐겼고, 물썰매장이 폐장하고 나면 슬슬 놀이시설 쪽으로 가서 바이킹이니, 회전관람차니 뭐 그런 것들을 타기도 했다.


그런 송도유원지가 송도국제신도시가 생기면서 찾는 사람들이 적어졌다. 송도는 ‘구(舊) 송도’와 ‘송도신도시’로 갈렸고, 송도유원지는 신도시에 편입되지 못했다. 동네 조그만 슈퍼들이 대형마트에 잠식되듯 2011년 그렇게 사라졌다. 50년의 명맥이었다. 소설 <허니문 카>는 그렇게 사라진 송도유원지에 대한 뒤늦은 헌사 같은 것이다.


<허니문 카>의 주인공은 유원지에서 아이스크림을 팔던 L이다. 유원지에 ‘놀러’가 아니라 생계를 위해서 아이스크림을 팔던 L은 유원지가 폐장을 하게 되면서 무료 개방하던 폐장 마지막 날에야 가족과 함께 유원지를 찾는다.

 

언젠가 큰애가 친구와 전화통화 중에 좋아하는 과일을 대는데 망고, 키위, 블루베리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L은 의아했다. 그런 과일들은 먹어본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사과나 귤, 수박 정도였다. 아이가 언제 그런 과일들을 먹어봤다고 좋아하게까지 되었을까 궁금했다. 그냥, 이름만으로도 뭔가 있어 보이잖아. L에게는 이 유원지로의 나들이가 큰애의 망고이고 키위이고 블루베리였다. 무엇을 하지 않더라도 나들이를 나온다는 그거면 되었다.

 

그렇게 유원지로 나들이를 나왔다. L은 들떠있었다. 아이스크림을 팔러 나온 것이 아니라 놀러왔기 때문이다.

 

아참, 삼겹살을 구워야지. 뭐니뭐니 해도 이런 데선 삼겹살 냄새를 풍겨줘야 놀러 온 기분이 나지. 백숙도 해먹어야 하고. 들고 올 땐 힘들어도 해먹을 땐 기분 좋거든. 전국에서 취사를 할 수 있는 유원지는 여기밖에 없을 걸?

 

그랬다. 송도유원지에서는 삼겹살도 구워먹고 수영도 하고, 오리배도 타고 놀이기구도 탈 수 있었다. 그래도 L에게는 그저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이었다. 그런 L에게 한때 송도유원지는 첫사랑이 움트는 장소이기도 했다.

 

L은 T와 함께 요술거울을 보고 웃었고, 선착장에서 오리배의 페달을 열심히 돌리며 호수를 한 바퀴 돌기도 했다.

회전관람차도 탔다. 회전관람차가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해서 가장 높이 올랐을 때 L은 신기한 듯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유원지와 멀리 고층 건물들, 숲과 건너편 바다가 보였다. L이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 T가 재빠르게 L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L이 무슨 일인지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무슨 말인가 하려고 할 때 T가 다시 한 번 입술을 갖다 댔다. 옅은 술 냄새가 났다. 회전관람차에서 내릴 때까지 그 뒤로 아무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L에게는 이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내내 화끈거리는 얼굴이 가라앉지 않은 것은 햇빛 때문만은 아니었다.

 

L은 직장에서 단합대회로 유원지에 오게 되고 거기서 만난 직장동료와 회전관람차에 올라타게 되고 거기서 첫 입맞춤을 하게 된다. 꼭대기에 올라보면 송도시내 일대가 다 보이고 멀리 바다까지 보이던 회전관람차 안에서였다. 회전관람차는 멀리서도 여기가 송도유원지임을 당당하게 알리던 놀이기구였다.

 

 ⓒ유동현

 

코끼리 네 마리가 우리에서 도망쳤다. 오전에 단체관람 온 여중생들이 지른 소리에 놀라 우리를 탈출한 것이다. 탈출한 코끼리 가운데 두 마리는 일찍 발견돼 사육사가 붙잡았으나 나머지 두 마리는 인근 산으로 도망치는 바람에 유원지 일대가 발칵 뒤집혔다. 경찰과 119구급대 등 수십 명이 출동해 유원지에서 꽤 떨어진 산을 뒤져 절 뒤편에서 잡았다. 결국 그 코끼리들은 모두 영양과 환경을 문제 삼아 서울대공원으로 옮겨갔다.

 

유원지에서는 동물원도 겸하고 있어, 한때는 코끼리 쇼를 벌이면서 관광객과 피서객을 모으기도 했다. 그런 코끼리가 도망치는 기사가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그런 과정들을 L은 모두 보았다. 가족들이 놀러와 다정하게 노는 모습도 부럽게 바라보았다, 유원지 폐장하는 날 L이 이곳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자신도 ‘생계’를 위한 곳이 아니라 놀러올 수 있는 곳으로 와보고 싶었던 것이다.

 

꽁꽁 언 아이스크림을 푸다보면 엄지와 검지가 얼얼했다. 꽁꽁 얼어서 푸기 어렵던 아이스크림이 한낮을 지나면서 푸기 수월해지고 저녁때쯤이면 별 힘을 주지 않아도 풀 수 있었다. 그때쯤 되면 아이스크림은 바닥을 보였고 해가 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L에게 시간은 아이스크림을 푸는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흘렀다.

 

삼겹살과 삼계탕을 끓여먹고, 수박씨 멀리뱉기 게임을 하고, 물놀이도 하고, 놀이기구도 타고 그렇게 하고 싶었다. 오늘이 아니면 더 이상 송도유원지에서 그런 것들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원지로의 나들이는 L이 생각한 것과는 달랐다. 그것은 폐장과 맞닿아 있었다.

L은 자신의 삶이 좀 더 나아지길 희망하지만 그것은 꿈과 같은 것이었다. 한때 첫사랑의 장소, 전국적인 명성을 누리는 장소, 인천시민이면 누구나 가봤을 정도, 집에 송도유원지에서 찍은 사진 한 장 없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사랑받는 유원지였다. 그랬던 유원지가 송도국제도시 개발에 밀려나듯, 그녀의 삶은 조금씩 더 변두리로 밀려나는 것이다.


남편과 아이들은 어두워졌는데도 오지 않았다. 더 이상 탈 놀이기구도 없을 텐데 어디서 무엇을 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놀이기구는 멈춰 섰고, 오리배는 선착장에 묶였다. 쪽배는 뒤집힌 채 모래사장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쪽배를 관리하던 청년들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어둠은 더 짙어졌다. L은 배도 고프고 졸음도 몰려왔다. 킥킥킥 원숭이 울음소리가 들리자 선잠이 든 새가 울었다. 그 소리들은 어둠 속에서 기괴했다. L이 꿈꾼 나들이가 아니었다. 아니 L이 꿈꾼 나들이가 어떤 것인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유원지가 폐장되면 이 안에 있던 놀이기구며 동물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압도적인 스케일과 스릴, 기교가 넘쳐나는 놀이기구라는 명성이 사라진지 오래인 노쇠한 기구들이었다. 처음엔 그 기구들도 최신이었을 것이고, 사람들은 그 기구를 타기 위해 줄을 서고, 타는 동안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그때를 기억하지 않는다. 앨범 속에 갇힌, 까마득히 잊힌 요술 거울과 같은 때가 있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높은 곳에서 이 도시를 보기 위해 회전관람차를 탔다. 터질듯 여문 포도알 같은 젊은 연인들도 많았다. 그들 중 누구는 L이 생의 찬란했던 순간, 그때가 빛나는 한때인지도 모르던 어수룩한 그녀가 첫 키스를 나누던 곳에 앉아 키스를 나눌지도 몰랐다. 그날 L의 처녀막이 겨우 족구를 하다 파열됐듯 그녀의 첫사랑은 거기, 저 높은 회전관람차의 흔들리는 좁은 공간에 갇혀버렸다.

먼 바닷가에서부터 비린내와 해무가 밀려드는지 몸이 축축했다. 다시 폐장 안내방송이 나왔다. 폐장이 된 유원지는 이제 유원지가 아니었다.

 

한때는 사랑을 받았던 유원지. 그러나 유원지는 폐장되었고, 물이 들어왔던 그 자리에는 중고자동차가 가득 들어서 있다. 이제는 유원지가 아닌 것이다. 개발 논의 속에서 어쩌면 유원지가 있었던 자리는 그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만큼 변해버릴지도 모른다. 그 유원지가 개장되면서 폐장하기까지 유원지에 들렀던 수많은 사람들 기억 속에 이제 송도유원지는 앨범 속에 잠든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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