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동 중국인 할머니의 외로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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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동 중국인 할머니의 외로운 사랑
  • 양진채
  • 승인 2017.09.15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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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단편소설 <중국인 할머니> / 백수린


#. 소설을 다 읽고 나자 모과가 생각났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모과향이겠다. 며칠 전, 길에 떨어진 모과를 주웠다. 파랗고 향이 나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몇 개의 모과를 매달고 있는 나무가 보였다. 모과로군. 나는 진한 향이 나는 모과를 잘게 썰어 청을 만들었던 어느 해를 떠올렸다. 모과향이 나지 않는 ‘풋’것인 그것을 버리지 않고 서재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소설 속 모과와 내가 주워온 모과 사이에는 아무 연관도 없다. 나는 소설책을 덮으면서 중얼거렸다. 모과처럼 조용하고 진한 향이 어둠 속에서 퍼진다고.


#. 중국인 할머니를 보았다.
 
어릴 때였다. 주안7동에 살 때, 그 집이 중국인이 사는 집인지도 몰랐다. 밭 울타리에 넝쿨콩이 잔뜩 열려 있었다. 중국인 할머니는 그 울타리를 돌아나가고 있었다. 뒤뚱거리며 걷고 있었다. 할머니의 등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전족을 한 발로 걸어가던 작은 할머니, 그 옆의 넝쿨콩, 유년의 잊히지 않는 한 페이지였다.

 
#. 소설 <중국인 할머니>
 
백수린의 소설 <중국인 할머니>는 70년을 한국에서 살았지만 끝내 화교로 불렸던 할머니의 외롭고 쓸쓸한 삶과 그 이면의 사랑을 손녀인 나의 눈으로 그린 소설이다.
중국인 할머니는 일흔도 되지 않아 홀로된 할아버지와 같이 살게 된 새할머니이다. 새할머니를 좋아하는 것은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하는 열 살 때의 일이다. 그건 철없던 시절, 그러니까 세상이 내 편과 네 편이 전부이던 때였다. 화자는 소설의 첫머리에 진술하고 있다.

 
그녀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해본 적이 없다. 일부러 숨긴 것은 아니다. 그저 말할 기회가 없었을 뿐.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중국인 할머니에 대해 누구에게 말해본 적은 없는데 일부러 숨긴 건 아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글의 뉘앙스가 좀 이상하다. 그냥 말할 기회가 없었다고 하면 되는데 변명하듯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는 말을 사족처럼 달았다.
 
소설의 마지막에서도 비슷한 문장이 반복된다.

 
지금까지 나는 한때 중국인 할머니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해본 적이 없다. 일부러 숨긴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말할 기회가 없었을 뿐.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어왔다. 그러나 나는 이따금씩 지금은 나의 남편이 된 남자에게 내가 언제 더 크고 아름다운 달을 보았는지에 대해서 끝내 말하지 않았던 그날 밤에 대해 생각해볼 때가 있다.


이 반복된 진술을 보면, 나는 어려서 뿐만 아니라 이미 성인이 되어서도 새할머니의 존재에 대해 그다지 애정을 갖고 있지 않는 듯 보인다. 일부러 숨기지는 않았다고, 그렇게 믿어왔으나 중국인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에서조차 이야기 하지 않았다는 것.
중국인 할머니 장례식장에서도 그렇고, 어렸을 때도 그렇고, 중국인 할머니에 대한 진술은 담담하고 객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의 어떤 부분에 동화되거나 마음을 나누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할아버지와 중국인 할머니가 결혼하기 이전, 육이오 전쟁 때 피난지에서 서로 만났었다거나, 중국인 할머니가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 등이 스치듯 지나간다. 할아버지와 결혼하기 전인 1992년 다들 자국으로 돌아갈 때 왜 떠나지 않았느냐고 묻는 나에게 할머니는 “이렇게 너를 만나려고 그런 게 아니었겠느냐.”고 대답한다. 이 광경을 작가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때 왜 떠나지 않고 이곳에 남으셨어요?”
새할머니의 긴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후, 내가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다는 말투로 물었다.
“이렇게 너를 만나려고 그런 게 아니었겠냐.”
새할머니가 내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리면서 농담하듯 웃었다. 새할머니도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사실 이 소설은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지만 할아버지와 중국인 할머니인 새할머니의 사랑 얘기만으로 한 편의 슬프고 쓸쓸하고 아련한 사랑을 만들 수 있었다.
육이오 피난길에 만난 할아버지와 새할머니, 두 사람은 어떤 이유로 만나지 못했고, 각자 결혼했다. 그러나 둘은 서로를 잊지 않았고, 새할머니는 1992년 모두가 자국으로 돌아가던 시절에도 끝내 이 땅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다시 두 사람은 부부로 만나게 된다. 그러나 정작 죽어서는 전 부인과 전 남편의 묘 옆에 합장한다.
그러나 작가는 그 얘기를 최대한 줄였다. 아니,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중국인 할머니를 무색무취의 사람으로 보았다. 엄마와 할머니가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왠지 엄마가 새할머니를 훈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진술한다. 위의 인용글에서 보듯 할머니도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하고 새삼 느낀다. 이렇듯 할머니는 얘기되어지지 않는 존재, 있는 듯 없는 존재 취급을 받았다. 무시가 아니라 일정한 거리를 두고 타인처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그래서 70년을 한국에서 살았지만 끝내 이방인 취급을 당했던 중국인 할머니의 모습이 한 개인의 가족사가 아니라 이 땅에 와서 자리 잡으려 했던 많은 화교인들과 겹쳐진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돈을 벌기 위해 힘든 노동을 하고 있거나, 젊은 신부로 와 있는 많은 외국인들이 겹쳐진다. 그들을 바라보는 많은 우리의 시선, 그 시선은 냉담에 가까울 정도로 화자의 시선과 닮아 있다.
 
이제 인천 얘기를 해보자.
이 소설에서 할아버지가 살았던 곳, 새할머니가 살았던 곳은 신흥동이다. 오정희의 소설 <중국인 거리>에 직접 드러나지는 않지만 주인공인 내가 다니던 학교 역시 신흥동에 있는 신흥초등학교로 짐작한다. 신흥동은 개항기 신문물이 밀려들던 한복판이었다. 개항기 밀려들던 일인과 중국인 다수가 자유공원 아래 조계지를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소설 속에서는 신흥동이 개항기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지만 그렇다고 신흥동이 낯설지는 않다. 신흥동 동네에 대한 특별한 묘사는 없다. 다만 집에 대한 묘사는 상세하다. 그 근방에서 제일 큰집이었다는 것, 병원을 운영했다는 것, 화자의 엄마가 태어나 시집갈 때까지 살았던 집이고, 나는 뜨락의 모과나무 아래에서 소꿉장난을 하던 곳이다. 신흥동이 아니어도 가능한 공간이다. 그러나 작가는 굳이 신흥동이라고 밝히고 있다. 실제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작가의 개인적 체험이 녹아든 소설이라는 인상이다. 작가에게 인천은 어쩌면 신흥동 집과 같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작가는 말하고 있다.
 

새할머니의 빈소는 엄마의 고향이 위치한 병원에 모셔졌다. 엄마의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지하철로도 연결되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곳이었는데도.
 

이 문장이 소설 속에서 꼭 필요한 문장이었을까를 생각해본다. 작가에게 인천은 위의 문장으로 대변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하철로 연결되어 있어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인데 오랜만에 가게 된 곳.
인천사람들은 이상하게 서울에서 인천으로 간다고 할 때, ‘내려간다’고 표현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서울과 인천이 동쪽에서 서쪽으로의 이동이니 ‘내려간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그런데도 내려간다는 말을 하게 된다. 작가도 ‘내려간다’고 쓰는 걸 보니 인천에서 오래 살긴 한 듯하다.
 
이 소설에서 나는 오페라를 좋아하는 남자와 「트란도트」를 보는데 공연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던 멜로디가 어느 순간 내 귀를 사로잡는다. 그리고 공연을 본 뒤 공원에서 슈퍼문을 보고 서로 감탄한다.
 

“저는 오래전에 이것보다도 훨씬 더 큰 달을, 본 적이 있어요.”
한동안 달을 올려다보다가 불쑥 내가 그렇게 말했다.
남자는 말을 잇기를 재촉하듯 나를 쳐다보았다. 지구에 발을 딛고 있는 한 결코 이면을 볼 수 없다던 달은 완벽한 원형(圓形)을 이루며 어둠 위로 오롯이 떠 있었다. 그래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도 나는 그와 나 사이가 갑자기, 우주가 팽창할 때마다 멀어진다던 은하 간의 거리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뒤에 인용하겠지만 남자가 말을 잇기를 바라고 나를 쳐다보는데도 말하지 못(안)하던 더 큰 슈퍼문은 중국인 할머니와 본 달이다. 나는 남자에게 예전에 보았던 슈퍼문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 대신 이면을 볼 수 없는 달, 우주가 멀어질 때마다 멀어진다는 은하 간의 거리를 생각한다. 그것이 나와 남자와의 거리, 나와 새할머니였던 중국인 할머니와의 거리는 아니었을까.


나는 압도적인 크기의 달을 올려다보았다. 티베트 고원 위에도 공평히 비추고 있었을 거대한 달 주위로 어둠이 푸른빛으로 서서히 용해되고 있었다. 이토록 신비하리만큼 달이 큰 까닭은 타원형의 궤도 탓에 이따금씩 지구 가까이 다가오기 때문일 뿐이라지. 꽃향기처럼 얼굴 위로 쏟아지던 새하얀 달빛을 받으며 내가 아마 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이었을 거다. 새할머니가 불쑥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렇게 말한 것은.
“대륙 사람 자식으로 태어나 대만 사람이 되어서 70년 넘게 여기서만 살았는데, 여기서 외로우면 어디를 간들 외롭지 않겠냐.”
그리고 새할머니는 빛나는 달을 보면서 노래를 불렀다. 낭랑한 중국어로.

好一 
美麗的茉莉花  한송이 어여쁜 모리화
好一 
美麗的茉莉花  한송이 어여쁜 모리화
芬芳美麗滿枝  그 향기가 가지마다 넘치네
又香又白人人誇  향기롭고 하얗기에 모두가 좋아하네
讓我來將摘下  한송이를 따서
送給別人家  임에게 보내련다
茉莉花茉莉花  모리화야 모리화

새할머니가 중국어를 하는 모습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내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새할머니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채 덜 익은 모과가 땅 위로 떨어져 내렸다.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새가 어딘가를 향해 날아가기라도 했는지, 바람도 한점 없었는데. 선이 둥글고 파르스름한 열매는 긴 세월 동안 물에 씻긴 조약돌처럼 향기롭게 빛났다. 나는 노랫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새할머니의 목소리가 달밤과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 모든 기억이 혹시 꿈은 아닐까. 나는 그 밤의 기억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말해본 적이 없다.
 


환한 보름달이 떠 있고, 무언가 회한에 젖은 중국인 할머니가 중국어로 노래를 부른다. 낯선 소리와 리듬이 적막한데 퍼진다. 그때조차도 화자는 좀 차갑다. 그 고즈넉할만한 밤풍경을 새할머니 목소리가 달밤과 잘 어울린다고 해놓고 그게 꿈은 아니었는지 묻고 있다. 새할머니와의 그 밤이 내내 내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던 새할머니에 대한 감정이나 느낌과 달랐기 때문일 터였다.

김보섭 사진작가의 <화교이야기> 사진전을 본 적이 있다. 사진전 한쪽에서는 영상도 마련되어 있었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인물들은 대부분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단단한 입매와 선이 굵은 주름은, 내게는 '누구든지 나를 함부로 보지 않게 하겠다'는 강한 무언처럼 들렸다. 그들은 그렇게 낯선 땅에서 견뎌왔을 것이다.

  
끝내 섞이지 못했던 중국인 할머니의 삶은 외롭다. 낯선 풍효래 라는 이름을 가졌던 할머니, 중국어로 말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할머니, 죽어서도 할아버지와 같은 묘에 묻히지 못했던 할머니. 감춰진 사랑을 누구도 알려하지 않았던 것처럼 중국인 할머니의 삶에 ‘무례’하지 않을 만큼의 ‘예의’를 갖춰 대했던 식구들. 내가 글을 읽고 떠올렸던 모과향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김보섭 사진작가 ‘인천 화교 이야기展’ 영화촬영중인 중산학교 앞 중국인거리(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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