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을 외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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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외워보자
  • 서영원
  • 승인 2017.09.20 0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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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 화 '학교 오는게 너무 즐거워' - 서영원 / 작전초교 교사
 

금요일 아침. 수업을 시작하기 전, 간단하게 아침인사를 나누는 시간에 먼저 인사를 건넨다.

“자~ 이제 오늘 5교시만 더 하면 주말이니까 열심히 합시다. 그럼 토요일, 일요일 학교 안 오고 집에서 푹 쉴 수 있어요.”

“저, 내일 외할머니댁에 가요.”

“오늘 끝나고 바로 캠핑가요. 거기서 고기도 구워 먹는다고 했어요.”

이런 저런 주말계획들이 얽히고설키는 와중에 의외의 소리가 튀어 나온다.

“난 학교 오는 게 더 재밌는데.”

순간,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주말에 뭐 하기 싫은 거 하기로 했나?’, ‘다른 친구들이 놀러 간다는데 자기는 안 가니까 기 죽어서 그러는 건가?’, ‘학대를 받거나 그러진 않았던거 같은데, 집에 있는게 무서운건가? 왜 그러지?’

찰나의 순간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들을 들이쉬는 숨과 함께 목구멍 깊이 삼킨 후에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를 이어 가 본다.
 

“길동(가명)이는 주말에 집에서 노는 것 보다는 학교에 오는 게 더 좋아? 왜?”

“학교에 오면 친구들 있어서 재밌고 좋아요.”

“주말에도 공원에서 친구들 만나서 놀 수 있잖아? 수업 안하고 더 많이 놀 수 있지 않아?”

“근데 공원에서는 친구들 몇 명 밖에 못 봐서 별로 못 놀아요.”

여기저기서 동의하는 소리도 나고, 그래도 토요일, 일요일이 좋다는 소리도 같이 나와서 웅성거리길래, 호기심이 생겨 전체에게 질문을 해 본다.

“주말에 학교 안 나오는 것보다 학교 나오는게 더 좋을 것 같아?”

‘네’ 와 ‘아니오’가 함께 섞여서 서로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리게 하기 위해 소리전쟁이 난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손을 들어 보기로 한다.

질문은 ‘토요일, 일요일에도 학교를 오는게 더 좋다.’

결과는 9: 16.

학교 안 오고 쉬는게 더 낫다는 의견의 승!
 

큰일 날 뻔 했다. 괜한 질문으로 주말에 강제 초과근무 할 뻔 했다. 그래도 이왕 이야기가 나오고 궁금한 김에 더 물어보니, 그냥 학교 오는게 더 재밌다는 아이, 공부하는게 재미있어서 학교 오고 싶다는 아이, 학교 끝나고 친구들이랑 노는게 좋아서 학교 오고 싶다는(?) 아이, 방과후 기타 수업이 듣고 싶어서 학교 오고 싶다는(??) 아이 까지 다양한 이유로 학교를 좋아했다.

정작 담임인 나는 일요일 밤에 TV를 끄고 잠이 들기 직전이면 ‘눈을 뜨면 또 출근이구나’ 란 생각에 한숨이 쉬어진다. 그것뿐인가. 금요일 마지막 수업이 끝날 때는 ‘이야~이번 주도 무사히 끝났구나!!’ 란 기쁨이 들고, 금요일에 퇴근 시간이 되면 세상 누구보다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빛처럼 빠르게 교문을 빠져나가는데에 온 신경을 집중할 만큼 어떻게든 학교를 탈출하고자 하는데, 애들은 학교 오지 말고 쉬라고 하는 날에도 학교가 오고 싶단다.

‘3학년이라 아직 어려서 그런가보다. 좋을 때다~.’ 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이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많은 숫자가 주말에도 학교에 오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학교를 재미없어 하고, 학교를 오기 싫어하고, 학교를 벗어나야만 비로소 편안함을 느끼게 될 거라는게 마치 정해진 미래처럼 다가올 것이라는게 참 안타깝다


아이들이 학교를 싫어하게 되는 데에는 수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적어도 먼저 그 시기를 지나왔던 선배로서, 그리고 이제는 그 학교에서 학생이 아닌 교사로서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수많은 이유들 중에 적어도 우리교육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 때문에 학교가 싫어지지는 않게 도와주어야 할텐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커가면 자연스레 지금처럼 학교를 좋아하지는 않게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고 미안하기까지 하다.

‘그래! 나도 즐겁게 학교가려고 노력하자. 내가 즐겁지 않으면 애들도 즐겁지 않을 건데, 즐겁다는 애들 마음을 뺏을 수는 없지.’

라고 다짐해보지만...

안다. 다짐 몇 번에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계속 주문을 외워야 할 것 같다.

학교가 오고 싶다는 아이들의 마음이 변하는 시기가 안오면 좋겠지만 만약 오더라도 최대한 늦게 오도록 도와주는 교사가 되도록 끊임없이 최면 같은 주문을 나에게 걸어야겠다.

‘학교 오는게 너무 즐거워! 매일매일 오고 싶어!’ 라고.

 

여담이지만, 주말까지는 아니지만 평소에 학교 오는게 즐겁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한 아이들은 25명 중 25명 전부였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란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고맙고 또 미안하다. 그러니, 주문을 걸어야 할 이유가 또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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