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지나온 곳이 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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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지나온 곳이 너다
  • 임병구
  • 승인 2017.11.0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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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 임병구 / 인천시교육청 정책기획조정관
 

‘네가 먹은 것이 너다’가 건강 관련 경구로 유행이다. 먹거리는 몸은 물론 영혼에 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게 친환경급식을 떠받치는 교육적 함의다. 고등학교까지 무상급식을 해야 한다는 요구의 기저에도 급식이야말로 중요한 교육행위라는 공감이 자리하고 있다. 몸이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져 비만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등 식생활 건강교육도 활발해 졌다. 하지만 오늘날 학생들의 몸과 마음 건강지수는 나아지지 않는다. 식중독 사고나 전염병에 취약하고 체력지수도 나아지지 않는다. 잘 먹고 가려 먹어 영양 상태는 좋은데 건강체감도는 제자리걸음이거나 뒷걸음질 중이다.

 

기성세대일수록 먹거리에 대해 기준이 관대하다. 옛날에는 아무거나 먹고 살아도 별 탈이 없었다거나 불량식품으로 항력을 키웠다고 과시한다. 다소 과장이 있을지언정 추억의 음식들은 좋게 말해, 항체덩어리였을 수 있다.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배고픔을 달랬던 세대들에게 각종 열매나 꽃잎 정도는 고급 음식에 속했다. 개구리 뒷다리나 번데기는 고단백 식품, 길거리에 지천인 풀뿌리에서도 당분을 빨아 들였다. 바닥에 떨어진 음식도 셋 세기 전에 주워 먹으면 균이 붙지 않는다는 속설이 위생 관념으로 통용될 정도였다. 요새 아이들은 너무 깨끗해서 오히려 병약하다는 진단은 그런 경험칙과 연결된 믿음이다.

 

곰곰 돌이켜 보면 철따라 산과 들에 먹거리들이 피어났다. 산등성이를 뛰어다녀 진달래를 만났고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 아카시아꽃다발을 취했다. 진달래꽃잎에 이어 아카시아꽃잎을 섭취하면서 봄을 보냈다. 입이 먹으면서 몸으로 받아들였다. 개구리는 혼자 식탁에 올릴 수 없었다. 잔인한 살육(?) 과정에는 동행이 필요했다. 불을 피워 뒷다리를 구우려면 유사시 불이 번질 때에 대비해 떼 지어 무리를 구성해야 했다. 실팍한 칡뿌리를 건지려면 구덩이를 파헤치고 힘을 모아 뭉치를 뽑아내는 협업도 필수였다. 흙이 묻어 있어도 칡이 자리한 영토는 청정구역이었다. 캐내서 곧장 씹고 씹으며 한참을 뛰어 다녔다. 몸이 뛰면서 입도 움직이고 몸이 가면서 입이 벌어지는 순서였다. 여럿이 몰려다니며 나누면서 먹었고 먹으면서 나눴다.
 

결과물로서의 급식은 과정을 제거한 채 제공된다. 문명이 가속도로 생활조건을 바꾸면서 일어난 일대 사건이다. 아이들의 몸 움직임은 식생활과 분리되었다. 식사 시간은 교과목인 체육과 나뉘어졌고 채집 활동은 체험학습을 기록하는 관찰장 속에 박제로 남을 뿐이다. 고구마를 캐 보는 활동이 있기는 있다. 흙을 제거하고 세제를 이용해 깔끔하게 세척한 고구마를 쪄서 맛보는 데 그친다. 굳이 날고구마 맛을 볼 일이 없다. 줄기 성성한 무밭을 지나가다가 흙 묻은 채 뽑아내어 이로 무껍질을 갉아 벗겨 낸 속살을 베어 물 때, 아리고 시원한 맛은 원시의 맛일 뿐이다. 가공되지 않은 맛, 첨가물이 보태지지 않은 맛은 맛으로서 가치가 사라졌다. 몸이 자연과 어우러지며 입맛이 따를 때, 그 때를 복구할 길이 가능하지 않다. 개인 식판에 담은 각자의 몫을 챙겨먹는 방식도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미감 혹은 색감, 촉감 등을 다시 특별하게 교육해야 한다는 생각은 일정한 위기 단계의 징후다. 특히 유아 교육 과정에서 맛에 대해 교육하려는 움직임은 이후에는 치료로 접근하게 될 상황에 대한 고육책이다. 푸드테라피는 ‘약식동원([藥食同源)’ 차원을 넘어 원시의 미감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식재료가 지나 온 과정을 알고, 날 것이 어떤 지 체험한 후의 조리는 초급 요리로서 라면 끓여 먹기를 되돌아보게 해 줄 것이다. 혼밥이 대세라고 면벽 식탁을 마련해 주는 게 배려인 세태다. 악덕 직장 상사와 겸상할 바엔 차라리 벽과 대화하겠다면 그 밥에 어떤 기운이 담길까 애틋하다. ‘밥은 하늘이고 하늘은 혼자서 못 가지듯 서로 나누는 것’이라고 노래하고 밥 먹던 시절, 그 낭만이 그립다. 우리가 지나 온 들과 산이 없고 함께 나누지 못하는 밥 때문에 오늘 우리 몸과 맘이 아프고 서글프다.      



<선생님과 고구마 캐는 아이들. 굳이 고구마를 먹을 일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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