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헌 거 보지 말고 얼릉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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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헌 거 보지 말고 얼릉 가요"
  • 김인자
  • 승인 2017.11.14 0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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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거미와 벌
 
#1

나는 거미가 무섭다.
거미뿐만 아니라 발이 많이 달린 벌레는
몽땅 다 무섭다.
 
병원 오가는 길에 우연히 보게 된 거미.
여전히 무서운데 며칠 째 지켜보고 있다.
 
왜냐면...
왜지?
 
거미줄에
대일밴드가 걸려있었다.
 
거미도 아픈가?
대일밴드가 필요했나?
 
거미가 아프니까
거미가 꼼짝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니까
마음 착한 바람이 약국에 가서 사다줬나?
아니면 곤충을 좋아하는 아이가 붙여주고 갔나?
 
거미야...
너도 아파?
어디가 아파?...
 
거미는
며칠째
꼼짝도 안하고 있다.
 
좀 더 가까이 가서 보고 싶은데
갑자기 거미가 발을 확 뻗을까봐
무서워서
겨우 요만큼 밖에 다가가지 못했다.
 
아픈지,
죽은 건 아닌지,
궁금한데
 
무섭기도 하다.
 
11월 여섯 날
아픈가? 안아픈가? 거미를 처음 만난 날.
 
집에 와서 누웠는데
옷이 다 젖었다...
 
무서운 거미.
그런데
걱정이 되는 거미.

 
#2

비가 올거 같다.
하늘에서는 구름이 어수선하게 몰켜 다니고 땅에서는 떨어진 단풍들이 이리저리 와글와글 몰려 다닌다.
그 모습에 신이 난 바람은 심술쟁이처럼 찬 바람을 더 쌩쌩 훅훅 불어댄다.
바람이 불고 날이 추워서 그런가 내 몸도 다시 추워졌다. 설사가 다시 시작되었고 더불어 기운도 점점 없어져 갔다.
너무 아파 진통제 맞으러 병원 다녀오는 길.
 
오늘도 나는 거미가 궁금해서 일부러 차를 두고 병원에 걸어서 갔다왔다.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니 거미줄이 성할까? 다 끊어져서 거미가 다른 데로 간 건 아닐까 걱정하면서.
그런데 아무리 걱정을 해도 살 놈은 어떻게든 산다. 제 살 궁리는 다한다.
오늘도 여전히 멀찌감치 서서 거미 사진을 찍었다.
가까이 가믄 확 달려들까봐 무서워서.
그리고 화면을 당겨서 봤다.
아픈건 다 나았는지 거미줄에 걸려있던 대일밴드는 없어졌다.
대신 거미를 살피다가 나는 기겁을 했다.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 했다.
거미가 벌을 잡았다.
아니 이미 벌은 잡혀있었다.
오랫동안 한참 동안 멀찌감치 떨어져서 거미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화면을 당겨서 살펴봤다.
거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표정이 포만감에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오랜시간 살펴봐도 거미는 꼼짝도 않고 있다. 움직임이 없다.
 
거미가 벌침 맞아서 죽었나?
포획자가 거민가? 벌인가?
 
"거기서 뭐해요?"
깜짝 놀라 돌아보니 할머니 한 분이 서 계셨다.
"아 예쁜 꽃 보는구나? 예쁜색시"
"그게 아니고 거미봐요, 할머니."
"거미? 어디? 아후 무서.
벌이 잡혔네. 아니 으트게 벌이 잡히나? 빵 하고 대침 한방 쏘면 거미가 바로 죽을텐데.
아구 머리를 먹고 있나봐. 입으로.
아후 무서."
"할머니 여기가 머리에요?"
"그럼 머리지. 아후 무서. 이쁜 색시 숭헌 거 보지 말고 얼릉 가요."
 
할머니가 가시고 한참을 더 그자리에 서 있었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거미를 살폈다.
움직이나? 안움직이나?
가까이 가서 보구싶은데
무서워서 더 가까이는 못가고
사진을 찍어 화면을 당겨서 봤다.
 
"아직도 안갔어?"
할머니가 다시 오셨다.
"징그런 걸 뭘 그리 보고 섰어?"
"죽었나 해서여..."
"아고 죽었으믄 어쩔라고? 묻어라도 줄라고?"
"그게 아니고... 그냥..."
"이그, 금방 비 쏟아진다. 언능 집에 가요. 가다가 색시 걱정되서 내 다시 와 봤지.여즉 이러구 있을 줄 알았어. 내가 얼굴에 핏기 하나 없구만."
"네,할머니."
할머니가 몇 번을 뒤를 돌아다보신다. 어서 가라 손짓을 하시면서.
 
바람이 불어온다.
'뭐 좋은거라고 그걸 보고 있어요.'
바람이 낙엽 하나를 거미줄에 두고 갔다.
"보지 말고 그만 가요."
바람이 낙엽 하나를 가져와 또
거미줄에 두고 갔다.
 
거미도 벌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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