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우대정책’이 ‘여성차별’을 방치하고 누적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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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우대정책’이 ‘여성차별’을 방치하고 누적시키다
  • 윤성문 기자
  • 승인 2017.11.30 1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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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 출간

<자료 제공 = 새얼문화재단>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통권97호)가 출간됐다. 이번 겨울호 특집은 <젠더 전쟁>을 다루고 있다.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을 계기로 터져 나온 여성혐오에 대한 많은 여성들의 분노와 조직적 대응, 그리고 이에 맞선 이른바 ‘일베’를 비롯한 여성 혐오자들의 역공격과 강화된 혐오 표현들로 촉발한 젠더 사이의 격렬한 갈등을 배경으로 마련됐다.

특집 필진에는 신경아(한림대학교 사회학과 부교수), 김영미(연세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 김영희(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 소장), 이선희(경계너머교육센터 대표), 나영(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이 참여했다.

또 <비평>에는 ‘우리 사회의 해묵은 과제들’을 주제로 하여 박성제(MBC 해직기자)의 「MBC 몰락 10년사 — ‘만나면 좋은 친구’는 어떻게 ‘엠빙신’이 되었나」, 정대화(상지대학교 총장직무대행)의 「상지대 민주화 투쟁의 교훈과 과제」, 이진오(새나무교회 담임목사)의 「종교인 과세 :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김애령(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 교수)의 「‘인문한국(HK)’이라는 실험」 등 4편을 실었다.


특집 <젠더전쟁>에 실린 글들은 이 여성혐오의 문제가 일시적이거나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이며 또한 일정한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요인들이 누적된 역사적 성격을 띤 것임을 드러내고 공론화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다.

신경아(한림대학교 사회학과 부교수)는 총론에 해당하는 「젠더 갈등의 사회학」에서 현재 전개되는 젠더 전쟁의 상황 및 그 사회적 요인들을 요령 있게 제시해주고 있다. 그녀는 한국 사회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젠더 갈등은 길게는 지난 20년, 그리고 짧게는 지난 10년 동안 전개된 사회적 실천의 결과이며, 특히 정책 실패의 결과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 핵심 이유는 “‘차별’을 인정하기보다 ‘우대’를 강조하는” 관점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의 여성 정책은 불평등과 차별의 시정을 위한 정책보다는 특정한 집단으로서 여성에 대한 시혜 정책으로서의 성격을 띠어 왔으며, 그 결과 생활 전반에 걸쳐 불평등과 차별을 해소하기보다는 예컨대 내각 30% 여성 할당 목표치를 달성하는 데만 주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여성 우대 정책’이 오히려 사회 구조와 일상적인 삶에서 ‘여성 차별’을 방치하고 누적시키는 결과를 낳게 만들었다.

필자에 따르면 이는 비단 노동시장만이 아니라 사적인 영역에서도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성폭력에 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는 『건축학 개론』을 많은 남성들이 실패한 첫사랑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로 기억하는 이유, 그리고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을 치안 당국과 일부 언론이 여성혐오 사건이 아닌 정신질환자에 의한 우발적 강력 범죄로 해석하려 드는 이유는 여성과 남성 사이의 불평등과 폭력, 차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한국 사회의 저변에 깔려 있는 움직임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를 섣부르게 봉합하기보다는 터져 나온 갈등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김영미(연세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는 「노동시장 피해자 경쟁과 여성혐오」에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의 사회적 뿌리를 밝히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녀에 따르면 서구사회나 우리사회 모두 여성혐오의 뿌리에는 신자유주의적인 사회 재편이 존재한다. 서구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성장이 지속되던 ‘황금의 30년’이 지나고 신자유주의의 시기가 도래한 이후 경쟁에서 탈락한 남성들이 생계를 부양해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정체성 상실에 위기감을 느끼면서 여성혐오 현상이 나타났다. 우리사회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하위 비숙련 노동자들이 노동시장 경쟁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았으며, 2000년대에는 저학력 청년 남성들이 가장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 저학력 중년층–장년층 집단에서 남녀 임금 격차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고학력층의 전 연령 집단에서도 젠더 격차가 확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데 비해, 유독 저학력 남성과 여성만 공히 프레카리아트화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문제의 원인은 신자유주의 재편 이후 전개된 계급 편향적인 노동 개혁에 있으며, 이러한 구조적 원인의 비가시성으로 인해 그 직접적 피해 대상인 청년 남성과 여성 사이의 젠더 전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 자본 소득 비율은 크게 증가한 데 반해 노동 소득 비율은 줄어들었으며, 이처럼 줄어든 몫을 둘러싼 “노동자들 내부에서의 경쟁·배제·차별과 반목의 상태가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왔던 것”에서 기인한다 말했다.

그렇다면 현재 전개되는 젠더 전쟁의 사회적 뿌리에는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데,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두 가지 측면에서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첫째, 지난 20여 년 간 줄어든 “노동소득의 몫을 키우고 특히 지금 악화되어 있는 중하위 소득집단의 소득분배율을 높이는 것”은 남녀 노동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이다. 또한 고학력 여성의 경력 단절과 유리 천장을 깨는 것 역시 남성의 이익과 부합한다는 점이다. 둘째,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 생계부양자로서의 지위를 위협받으면서 이로 인해 남성성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남성들이 ‘젠더 과수행’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 좀 더 평등한 젠더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영희(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 소장)는 「몰래카메라 : 시선의 주체와 포획된 신체」에서 최근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디지털 폭력을 주제로 삼으면서 시선의 폭력이라는 문제를 살피고 있다. 한동안 ‘소라넷’이라는 이름의 국내 최대의 불법 음란물 유통 사이트가 큰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100만 명이 넘는 회원들이 각종 불법 음란물을 게시하고 유통하면서 20년 가까이 ‘성황을 이룬’(?) 이 사이트는 2016년에 폐쇄되었지만, 그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변형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소라넷이 폐쇄된 이후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불법 음란물과 영상들은 훨씬 더 은밀하고 산재된 형태로 계속 유통되고 확대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상들 및 음란물들을 게시하고 서로 돌려보면서 남성들은 ‘남성 연대’의 끈을 형성하며, 이를 통해 여성 및 여성의 신체는 더욱 상품화되고 물신화된다. 하지만 이러한 영상물들은 제대로 단속하거나 제재하기가 어려울뿐더러, 적발된다 하더라도 제대로 처벌받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다가 적발된 현직 판사가 약식기소 처분을 받은 것은 특권 여부를 떠나서 이 문제에 관한 법적 인식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준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필자에 따르면 더 심각한 문제는 디지털 성폭력의 근저에 놓여 있는 남성 중심적인 젠더 구조가 법원에서도 그대로 관철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의 신체를 남성의 성적 욕망을 자극할 만한 부위와 그렇지 않은 부위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그렇거니와, 여성은 영상물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고 촬영자에 대해 격렬한 저항의 표시를 제시해야 비로소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 역시 지극히 남성 중심적인 관점의 소산이다. 이에 따라 여성들은 일상생활에서 자신이 언제 어떻게 은밀한 촬영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을까 늘 불안과 공포에 떨 수밖에 없다. 따라서 훔쳐보는 시선의 일부만을 범죄화하고 다른 시선은 정상적인 것으로 묵인하는 젠더 위계질서를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는 필자의 견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선희(경계너머교육센터 대표)의 「‘퓨리오숙 현상’의 이율배반과 젠더 전쟁의 주체들」은 많은 인기를 모았던 종합편성채널의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끌었던 여성 연예인의 별명 ‘퓨리오숙’에서 이야기의 실마리를 끌어낸다. 미국 영화 『매드맥스』에서 절대 권력의 독재자에 맞서 사람들을 해방의 땅으로 이끄는 여성 전사 퓨리오사의 이름을 본 따 퓨리오숙이라고 불리는 이 연예인은 마치 가부장 구조의 남성 가장을 여성 가모장으로 바꿔놓은 듯한 캐릭터로 인해 큰 인기를 끌었다. 아내의 호통에 남편이 쩔쩔 매고 순응하는 것을 보고 많은 여성 시청자들이 대리 만족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퓨리오숙은 가부장의 희화화된 전도물에 불과할 뿐이며, 가모장 퓨리오숙은 현실의 젠더 전쟁에서 여성 전사의 모습을 형상화하기에는 여러 모로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IMF 외환 위기 이후 치열해진 생존 경쟁에서 밀려난 남성들이 인터넷에 진지를 구축한 것이 ‘일베’를 비롯한 여성혐오 사이트의 기원이었다고 진단한다. 이들은 ‘딸기녀’, ‘된장녀’, ‘김치녀’ 등을 비롯한 각종 ‘○○녀’를 생산하고 또한 여성의 신체를 촬영한 불법 영상물을 공유하면서 자신들의 경쟁자로 등장한 여성들을 제압하거나 통제하려고 시도해온 것이다.

필자는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에 맞선 퓨리오사, 곧 ‘페미전사’들은 도처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불법 영상물과 음란물은 근절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방관하거나 묵인하는 사람들에 맞서 그것을 ‘디지털/사이버 성폭력’으로 정의하고, 그것을 근절하고 방지하기 위한 각종 대책 및 피해자 지원에 나선 많은 여성들이 바로 그들이다. 더 많은 퓨리오사들이 나타날 수 있도록 관심과 연대를 아끼지 않는 것이 많은 남성들의 과제일 것이다.

나영(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모순과 혐오를 넘어 페미니즘 정치를 향하여」에서 우리 사회에서 여성혐오가 전개되어온 과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과 그로부터 1년 뒤에 일어난 여성 왁싱사에 대한 살해사건은 우리 사회 여성혐오를 대표하는 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나영이 주목하는 것은 이 두 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모인 여성들이 한결같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고 또 운동권이나 단체와의 연대를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 여름, 86일 간의 본관 점거 투쟁을 통해 박근혜 정권이 몰락하는 데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준 이화여대 학생들의 시위에서도 학생들은 하나같이 마스크를 착용함으로써 자신의 정체를 알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것은 나중에 이른바 ‘일베’를 비롯한 남성 중심 온라인 사이트에서 ‘신상이 털려’ 각종 성희롱과 폭력에 시달리지 않기 위한 자구책이었던 것이다.

필자는 이것이 지난 20여 년 간 한국 사회에서 누적되어온 여성혐오와 이에 맞선 여성들의 투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2015년 일어난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 사회 각계각층에서 일어난 성폭력에 대한 공론화, ‘메르스 갤러리’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던 유명한 ‘미러링’ 작업은 많은 여성의 공감과 지지를 받았지만, 역으로 새로운 형태의 격렬한 반발과 강화된 혐오를 초래했다. 특히 운동을 주도하거나 눈에 띄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집중적인 신상털이와 인신공격은 많은 여성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 글에서 유심히 살펴봐야 할 점은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이 처해 있는 갈등적이고 모순적인 상황에 대한 분석이다.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을 바탕으로 구성된 페미니즘 운동과 온라인을 기반으로 조직된 메갈리아나 워마드 같은 그룹들은 지향이나 연대의 방식 등에서 상당한 차이를 낳고 있다. 특히 워마드 등이 대표하는 생물학적 여성만을 페미니즘의 주체로 생각하는 입장과 성적 소수자들과의 연대를 중시하는 입장 사이의 차이는 꽤 의미 있는 쟁점으로 보인다. 특히 ‘동성애’가 보수 집단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 데 반해, 문재인 정권은 이 문제에 대해 상당히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현 시점에서 보면 더 그렇다. 따라서 “‘진짜 여성이 누구인지’를 대신하여 ‘지금 누가 여성의 위치에 놓여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라는 필자의 말은 많은 울림을 낳는다.

<비평>에서 박성제(MBC 해직기자)의 「MBC 몰락 10년사 — ‘만나면 좋은 친구’는 어떻게 ‘엠빙신’이 되었나」는 내부인의 시각에서 지난 10여 년 동안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던 MBC가 어떻게 처참하게 무너지게 되었는지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정대화(상지대학교 총장직무대행)의 「상지대 민주화 투쟁의 교훈과 과제」는 상지대의 두 번째 민주화를 이루기까지 지난했던 투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요인들을 열거하면서 상지대 사태에서 가장 큰 책임이 교육부에 있음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

이진오(새나무교회 담임목사)의 「종교인 과세 :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는 우리나라에서 종교인 과세가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못한 역사적 상황에 대한 고찰에서 시작하여 왜 종교인 과세가 필요하며 또 정당한 일인지 상세하고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김애령(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 교수)은 「‘인문한국(HK)’이라는 실험」을 통해 지난 2007년에 시작되어 올해 8월로 1기 사업이 마무리된 인문한국 사업의 의미와 한계를 다루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쉽게 풀어나가기 힘든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와 현상들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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