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가정 비애는 '편견'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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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가정 비애는 '편견'에서 시작한다
  • 이혜정
  • 승인 2010.10.20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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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결혼이주여성 피해사례와 문제점, 해결방안은?


결혼이주여성들이 지난달 15일 사망한
몽골에서 온 결혼이주여성 체첵과 관련한 긴급회의를 하고 있는 중.
 

취재 : 이혜정 기자
 

현재 우리나라에는 100만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살고 있다. 이주여성만 12만여명. 이들이 낳은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은 5만8000여명에 이른다. 2020년에는 다섯 가구 중 한 가구가 다문화 가정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점점 우리나라는 이제 '백의민족'에서 다문화 사회ㆍ다문화 가정이란 말이 낯설지 않을 만큼,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다문화 국가'로 나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다문화 사회를 맞이할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인구의 2%를 차지하는 이주민, 그중에서도 결혼이주여성들의 삶을 2차례에 걸쳐 돌아본다.

 


① 결혼이주여성 피해사례와 문제점, 해결방안은?
② 결혼이주여성 정착사례와 현 지원정책은?


이제는 지역에서 다문화 가정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어 한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외국인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얘기다. 

인천시에 따르면 인천시 전체 인구의 2.3%에 해당하는 6만3천575명이 외국인이고, 이중 결혼이민자가 1만1천344명에 달한다.

연도별 추이를 보면 2006년 지역에 둥지를 튼 결혼이주여성이 6천647명, 2007년 7천489명, 2008년 8천291명, 2009년 1만485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편견과 제도적 테두리는 그들의 한국생활을 힘들게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다문화 가정이 지역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편견과 제도적 변화가 필수라고  지적한다.

남들과 같은 평범한 가정을 원해서 왔을 뿐


베트남 결혼이주여성들이 베트남 통번역 수업을 듣고 있는 모습.

얼마 전 인천여성의 전화 부설 '울랄라 쉼터'의 김계환(51) 활동가에게 들은 결혼이주여성들의 폭력피해는 심각했다.

"베트남에서 N(38)씨가 올 6월 남편의 심한 폭행으로 쉼터에 들어왔어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속적으로 폭력을 당했고, 쉼터에 왔을 때는 온몸에 멍투성이었어요. 걷지도 못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지요."

N씨는 아버지와 남동생을 부양하며 집안을 이끌어 오다가 늦은 나이에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며 한국 땅을 밞았다. N씨는 TV에서 비치는, 가정적이고 책임감이 강한 한국남성을 꿈꾸며 결혼중개업소를 통해 지난 1월 남편 A씨(54세)와 결혼을 하고 한국으로 이주를 했다. N씨는 초혼이었고 남편은 재혼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참을 수 없는 모욕과 폭력뿐이었다. 한국말이 서툰 N씨는 서구 석남동 한 시장에서 남편을 도와 장사를 하는 중에 손님에게 웃었다는 이유로 장시간 발로 차이고 머리채를 잡히는 등 지속적인 폭력을 당했다고 한다. 남편은 심지어 입에도 담지 못할 욕설을 해가며 인격적으로 모욕을 주기도 했다.

그래도 N씨는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외국으로 시집을 가서 적응 못하고 이혼을 당해 쫓겨났다"는 주변의 시선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경제난을 겪고 있는 가족의 생계도 걱정이었다. N씨는 모욕과 폭력을 참고 결혼생활을 이어갔다.

남편이 술을 마시고 N씨를 폭행하는 횟수가 2주 한 번에서 1주일에 두 번 꼴로 점점 잦아졌다. 보다 못한 인근 시장 상인들이 신고해 N씨는 쉼터에 오게 됐다.

쉼터에서 N씨를 보호하고 있던 중, 지난 2007년 가슴뼈가 부서지고 온 몸에 타박상을 입어 전치 4주의 진단을 받고 쉼터에 입소한 한 중국인 여성의 남편이 N씨의 남편이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김계환 활동가는 "N씨가 쉼터에 왔을 때 눈물을 흘리며 서툰 한국말로 '나는 죽는 줄 알았다'라고 말하면서 극도의 공포심을 느껴 말도 잘 하지 못했다"면서 "현재는 쉼터에서 안정을 취하면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사례로 시댁식구들에게 피해를 당한 베트남 여성 J(21)씨의 사례를 이야기했다.

J씨는 아픈 홀어머니와 동생 2명을 부양하며 어렵게 살고 있었다. 베트남으로 선교활동을 온 한국 선교사의 중매로 지난 2009년 1월 남편 B(38)씨를 만나 결혼을 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본인은 물론 가족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판단한 그는 남편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러나 남편은 심각한 알콜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어서 결혼 생활 1년3개월 동안 18일 정도만 함께 살았다. J씨는 알콜중독 남편을 수발하고, 집안일과 함께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경제적으로 별로 도움이 되진 않았다. J씨가 붕어빵 장사와 식당일 등으로 한 달에 버는 돈은 고작 60만원. 시어머니는 월급날이면 생활비와 남편 병원비로 써야 한다며 모든 돈을 빼앗고 10만원을 주었다. J씨는 그 돈으로 간신히 생계를 이어갔다. 본국에 있는 어머니 병원비를 보내는 일은 엄두도 못 냈다.

시댁 식구들은 J씨를 무시하고 구박했다고 한다. 남편 여동생과 매제는 툭하면 "내 친구가 경찰이야. 너 도망가면 내가 다 찾을 수 있어. 베트남으로 간다고 해도 내가 쫓아가서 잡을 거야, 우리가 돈을 들여서 데려 온 거니까, 그 돈  갚아야 해"라며 협박을 했다.

하지만 J씨는 베트남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술을 먹지 않으면 착한 남편을 생각해 병원비를 벌기 위해 열심히 가정을 이끌어갔다.

그러던 중 지난 3월 시어머니는 기도원에 남편 병수발을 하라는 이유로 강제로 보내려고 하자, J씨는 무릎을 꿇고 빌며 시어머니와 함께 살게 해달라고 빌었지만 돌아오는 건 욕설뿐이었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인근 교회 장로와 주민들이 J씨를 쉼터로 데려왔다.

J씨는 한국에서 따뜻한 가정을 꾸리고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살고 싶었었지만, 시댁 식구들의 협박으로 하루하루를 불안에 떨며 지내야 했다.

'하나의 상품'으로 바라보는 게 큰 문제…결혼중매업체 제재방안도 마련해야


인천여성의전화 김성미경 회장.

"결혼이주여성을 하나의 상품으로 바라보고 돈으로 사왔으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일부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결혼이주여성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있는 것이죠. 

인천여성의전화 김성미경 회장의 지적이다.

결혼중개업체에 1천만원~1천500만원의 돈을 주고 외국 여성들을 소개 받은 일부 한국남성들이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하면서 문제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지난 7월 결혼한 지 8일 만에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남성에게 살해된 타팃황옥 사건이 있은 지 겨우 두 달 만에 지난 9월 15일 전라남도 나주에서 몽골에서 온 결혼이주여성 체첵(26)씨가 한국인 C(33)씨에게 흉기에 찔려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C씨는 같은 몽골 친구인 E씨의 남편. 지난 2009년 10월 결혼을 한 후 직업 없이 집에서 술을 자주 마셨으며, 술을 마실 때마다 E씨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괴롭혔다고 한다. 견디다 못한 E씨는 친구 체첵씨 집으로 피신해 있었던 참이었다. 만취상태로 체첵집을 찾아간 C씨는 아내를 내놓으라고 협박을 했고, 체첵씨는 "맑은 정신으로 다시 와서 얘기하자"고 만류했다. 이 과정에서 C씨가 미리 준비한 흉기로 체첵씨를 찔러 사망케 했다.

부인을 하나의 상품으로 여긴 남성들 때문에 타팃황옥씨와 체첵씨는 먼 타국에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김성미경 회장은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에서 결혼이주여성을 인생의 동반자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머니, 아내, 며느리라는 성역할로 바라보고 있는 게 문제"라고 말한다.

그는 "결혼이주여성들은 단순히 돈을 벌려고 한국에 오는 게 아니다"라며 "남성들보다 이주가  자유롭지 못한 여성들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결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들어온다"라고 말했다.

하루 한 끼 먹고 살기도 힘든 자국사정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기대하며 타국 땅을 밟는 이들이 결혼이주여성이다. 하지만 이주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과 편견이 변하지 않는 한 타팃황옥과 체첵 같은 사례는 계속 나올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제도적 개선은 필수다. 

결혼이주여성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 정주하기 위해서는 남편 개인의 보증과 함께 2년이 지난 뒤에야 얻을 수 있다. 한국에 귀화하려면 2년 동안 남편과 가족에게 어쩔 수 없이 종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가정폭력 등과 같은 사회적 위험에 놓이게 된다.

김성미경 회장은 "체류권 문제를 갖고 일부 한국남성들이 결혼이주여성에게 권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면서 "우선 체류권과 영주권을 분리해 체류불안정 문제를 해결해야만 사회적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결혼중매업체에 대한 제재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결혼계약 당시 한국남성이 결혼이주여성을 돈 주고 산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게 문제. 외국여성들에게는 남성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결혼을 성사시키고 있는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성미경 회장은 "소수자의 관점에서 다문화 가정‧다문화 사회를 이해하고 한국사회와 함께 공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면서 "한국인의 잣대로 이들을 바라보아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다문화 가정 학생들, 언어발달 능력저하로 인한 학습부진과 자신감 결여 등도 문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는 모습.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문제도 심각하다.

인천시교육청에 따르면 다문화 가정 학생은 2010년 1천896명으로 2008년 798명에 비해 2.4배 정도 증가했다. 이를 학교급별로 보면 유치원 301명(15.9%), 초등학교 1천268명(66.9%), 중학교 230명(12.1), 고등학교 97명(5.1%)으로 주로 초등학교에 학생수가 집중되어 있다.

출신 국가별로는 일본 460명, 중국 381명, 중국(조선족) 246명, 필리핀 271명, 베트남 132명 등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다문화 가정이 한 자녀 이상 미취학 자녀를 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문화 자녀는 어림잡아 1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특히 최근 우리나라 인구 구성비 가운데 다문화 가정의 비율이 급변해 가고 있는 추이로 보아 앞으로 공교육 현장에 인종적, 문화적, 언어적 다양성이 더욱 심화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들은 다문화 자녀 1세대로 지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제도권을 이탈하거나 소외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외국의 경우처럼 폭력‧범죄 집단화 가능성이 높다.

지역아동센터의 한 교사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일찍부터 사회가 껴안지 않으면 향후 큰 사회적 문제로 번질 수 있다"라고 지적한다.

그는 "한국말이 서툰 결혼이주여성이 자녀들을 양육하게 되면 아이들의 언어발달이 떨어진다"면서 "일반 가정의 아이들보다 학습능력이 부진하고, 자신감 결여로 인해 사회성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사회적 네트워크가 부족하기 때문에 대부분 자녀와 단 둘이 지내 자연스럽게 습득해야 할 예절이나 한국문화를 접하지 못하기 일쑤"라며 "결국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때도 일반가정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부적응을 겪을 수 있어 문제"라고 내다봤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엄마가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등 외모적으로 눈에 띄는 국가 출신인 경우 대부분의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놀림을 당하기도 한다"면서 "엄마가 학교에 와야 하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이 꺼려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그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사회, 역사, 문화관련 수업에서 어휘력 문제로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같은 또래에 비해 의사소통에서도 간단한 수준에 머물러 있기 일쑤"라고 말했다.

저학년 자녀를 둔 다문화 가정 엄마들은 알림장에 적힌 '수채용구', '분무기' 등과 같은 용어를 이해하지 못해 자녀들을 빈손으로 학교를 보내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렇다고 담임교사에게 문의해 준비물을 챙겨주는 결혼이주여성은 많지 않다.

상당수 결혼이주여성들은 결혼 직후 가사일과 육아에만 전념하다가 자녀가 취학하면 경제활동을 한다. 대부분 다문화 가정이 저소득이기 때문이다.

2009년 행안부 자료에 의하면 인천시에 거주하는 다문화 가정의 월평균 소득은 100만원~200만원 39.4%, 50만원~100만원 22.2%, 200만원~300만원 15%, 50만원 미만 4.5% 등 순으로 나타났다.

결혼이주여성들은 자녀의 학비와 함께 본국에 돈을 보내기 위해 생산직‧식당 등에서 일을 한다. 이로 인해 부모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 저학년 초등학생들이 방치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학습 능력이 부진하고 일치감치 도대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게 교육현장의 목소리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다문화 가정 학생들의 경우 학교생활 부적응이 학력격차로 이어져 상급학교에 진학하거나 좋은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멀어져 새로운 소외계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며 안타까워했다.

아울러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을 글로벌 인재로 양성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다양한 나라의 언어와 문화양식을 습득해 정치, 무역,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인재로 키우자는 것이다.

현재 지역 사회에 살고 있는 다문화 자녀 1세대는 인천은 물론 한국사회 미래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의 저출산‧고령화‧고지식화‧전지구화 등의 분위기는 앞으로 외국인 노동자 유입과 국제결혼으로 인한 민족적‧문화적 혼재 현상을 더 가속화시킬 전망이다.

한편 인천시교육청은 다문화 자녀 1세대를 위해 2006년부터 다문화 가정 자녀중심학교 32개교를 선정해 대학생연계 멘토링, 연합체험학습, 심리검사, 다문화교육 사이버지원센터(4개 국어), 학부모 상담 지원봉사자, 통번역 서비스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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