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너무 좋아서 노래가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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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너무 좋아서 노래가 절로 나온다"
  • 김인자
  • 승인 2018.07.0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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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수원 '숙지노인복지센터'에서(2)


강연이 끝나고 식당으로 이동하시는 숙지복지센터 할아버지, 할머니들 뒤에서 따라 걷는 내내 내마음을 따뜻하게 했던 또 하나의 귀한 장면.
 
경도치매어르신들의 주간 보호센터인 '숙지복지센터'에는 다수의 할머니들 속에 할아버지는 달랑 두 분 뿐이다. 혼자서도 보행이 자유로우신 87세 월환 할아버지와 지팡이를 짚고도 걸음이 많이 불편하신 신남식 할아버지. 신남식 할아버지는 귀신도 때려잡는 해병대 출신이신데 지금은 이모양 이꼴이 되었다고 입을 꾹 닫고 계신다. 신남식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걷고 계신 또 한 분의 할아버지. 강연 중에는 뵙지 못했던 분인데 백발의 할아버지가 신남식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모습이 사랑하는 연인들 처럼 다정하고 정답다. 두분의 모습이 너무도 따뜻해보여서 누구실까 궁금했는데 숙지복지센터를 운영하시는 목사님이라신다. 신남식 할아버지를 식당까지 모셔다드리고 할아버지 목사님은 식사도 하지 않으시고 바로 센터로 돌아가셨다. "식사하고 가셔요,목사님" 하는 내 말에 할아버지 목사님은 치과 치료를 받는중이라 식사를 못하신다고 하셨다. 그런데도 일부러 신남식 할아버지를 식당까지 모셔다드리고 가시는 할아버지 목사님 마음을 또 배웠다.
 
점심식사로 불고기 전골이 나왔다. 그런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드시기에 고기가 좀 질기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우리 심계옥엄니는 질긴 고기는 잘 씹지 못하시고 목에 잘 걸리시기 때문에 아기처럼 잘게 잘게 잘라드려야 한다. 안 그러면 목에 걸려서 식사 도중에 식은 땀을 흘리며 쓰러지신다. 다행히 숙지복지센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연세가 많으신데도 별탈 없이 맛나게 잘 드셨다.
식사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모시고 근처 숙지공원으로 산보를 갔다. 식당까지 걸으시면서 좀 무리를 하신 소희 할머니는 식당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쉬시기로 하고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숙지공원으로 이동했다.
 
식당서 나와 행길을 건너 조금 걸어가니 숙지공원 안에 그늘막이 시원한 정자가 있었다. 할머니들이 힘드셨나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할머니들은 신발을 벗고 정자위에 올라가 두발을 쭉 뻗고 앉으셨다. 그러자 할머니 한 분이 내 다리 한번, 남의 다리 한번 번갈아가며 손으로 무릎을 탁탁 치시며 노래를 부르셨다.
노래를 부르시는 할머니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이셔서 "할머니, 재밌어요. 또 해주세요." 했더니 할머니는 싫다소리 안하시고 또 다시 신명나게 불러주셨다. 노래 할머니를 따라 너나 없이 모두 다 함께 노래를 불러주시는 숙지노인복지센터 할머니들. 할머니들의 네번째 손톱과 새끼손톱에 예쁘게 물든 빨강물이 할머니들 노래에 신명나게 장단을 맞춰준다. 토요일에 봉사자들이 와서 빨강 메니큐어를 발라주고 갔다는데 할머니들의 수줍은 멋부림이 용기내어 너울 너울 춤을 추는 것 같다.
 
모든 할머니들의 노래가 끝나자 강연내내 입을 손으로 가리며 박장대소를 하셨던 91세 영숙할머니가 노래를 부르시겠다고 나섰다.
"내가 맛있는 밥도 얻어먹고 이렇게 시원한 데로 소풍을 나오니까 기분이 너무 좋아서 노래가 절로 나온다." 하시며 노래를 부르셨다.
영숙할머니는 나이 마흔 살에 마흔 두살인 남편과 사별하고 4살 6살 8살 아이 셋을 혼자 키우셨다.
"우리 막내가 네 살 때 내 치마자락을 끌고 가믄서 이러는거야. "엄마, 엄마 아부지 무덤 좀 파봐라. 아부지 데꼬 가게." 그랬던 아가 잘 커서 덕적도서 아주 큰 돈벌이 하믄서 잘 산다. 내가 그게 또 고마워서 노래 하나 또 해야되겄다." 하시며 노래를 또 부르시는데 그 노래소리가 그렇게 또 좋을 수가 없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영숙할머니 구성진 노래소리에 병순할머니가 "눈이라도 마주쳐야지."하며 노래로 화답하신다. 맞다. 사랑은 아무나하나? 눈이라도 마주쳐야 하는거이지. 다른 할머니들이 말씀하실 때마다 다정히 손을 잡고 눈맞쳐가며 끄덕끄덕 공감해주시는 병순할머니는 대전여고 출신이시란다.
 
연거퍼서 노래 세 곡을 부르신 영숙할머니가 "아싸,좋구나~"하시며 두 손뼉을 짝하고 마주치시니 옆에 앉으신 병순할머니가 따뜻하게 웃으며 "모가 그케 좋아?"하고 영숙할머니에게 물으신다.
"다 모였으니까 좋지." 하시는 영숙할머니 말에 병순할머니 "그래,그래. 평생 못 풀은 한,여기서 다 풀어."하신다. 내가 할머니들 연세가 궁금해서 물을 때마다 여든 일곱,아흔 셋하며 척척 대답해주시는 성화할머니.정작 당신 나이를 여쭈니 "나? 몰라. 까묵었어."하신다. 참으로 귀여우신 성화할머니, 성화할머니의 선한 눈빛이 나는 참 좋다.

숙지복지센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참 좋으시겠다. 이리 지내시다가 좀 더 연세가 들고 거동이 힘들어지시면 어디 다른 시설로 옮겨 가시는게 아니라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시면 된다. 센터장님이 말씀이 '가정공동체'를 만드실거란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당신들이 다니고 싶을 때까지 다니실 수 있는곳, 센터장님의 마인드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행복에 맞춰져 있는 곳.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정성스런 마음으로 내 부모님처럼 모시는 곳. 지금부터 더 힘든 상태가 와도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 않고 오랜동안 익숙하게 생활했던 이곳에서 마음 편히 돌봄을 받으시는 숙지노인복지센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참 좋으시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시설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많이 생기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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