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 노릇 참 난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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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 노릇 참 난감하네
  • 이한수
  • 승인 2018.08.30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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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 이한수 / 인성여고 교사


우리 세대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대학교에 갓 들어갔을 때 일일 겁니다. 전교 1등 하던 중학생 여자 애가 공부 때문에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서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지요. 죽은 학생이 남긴 유서를 바탕으로 소설과 영화가 나오기도 해서 그 여학생의 아픈 사연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는 이 말은 그 시대 사회의 모순을 꼬집는 화두이자 철학적 질문이 되었어요. 벌써 30년이 지났네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 말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어떨 때에는 ‘참 세대 차이가 많이 난다’, ‘제들 속은 도대체 알 수가 없네’ 하다가도 한편으로는 달라진 게 하나도 없지 않은가, 아니 우리보다 이 애들이 더 힘든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너무 불쌍하기도 합니다. 한 학생이 이런 넋두리를 하더군요.
 
“과거에 나는 친구들과 잘 지내고 항상 주위에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에 점점 자신도 모르게 지쳐 버렸던 것인지, 나는 점점 날카로워지고 예민해져서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점점 줄어만 갔다. 계속된 취업 준비에, 공부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점점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취업이나 공부에 대해 물으시면 “괜찮아요.”라고 말하고 담담하게 넘겨 버렸다. 이제는 부모님도 포기하셨고 나는 그저 이러한 상황을 침묵으로 일관하며 생활해 나가고 있다.“ - 인성여고 1학년 김OO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현상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회 현상이랍니다. 경제학 이론을 꺼내면 말이 어려워지고 고리타분할 것 같이 무척 망설여지는데 ‘이스털린 역설’이라는 개념을 접하고는 우리 아이들의 고통이 더 절실하게 다가왔거든요. 연구 결과에 의하면 연간 소득 75000 달러까지는 소득이 많을수록 행복감은 비례하여 커지더랍니다. 그 위로는 더 이상 소득이 늘어나도 행복감에는 별 차이가 없더랍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거 좀 화나는 얘기 아닙니까. 연소득 75000 달러 소득은 우리 돈으로 환산하여 월급이 약 600만 원 정도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부부가 맞벌이를 해서 한 달에 이 정도를 버는 집이 얼마나 될까요. ‘이스털린의 역설’, 이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냐’는 울화통을 더 부채질하는 거 아닌가요. 얘기 하나 더 들어 봅시다.
 
“눈 뜨고 아침부터 어두운 저녁까지 집에 있는 시간보다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가족과 마주치는 시간은 극단적으로 짧아졌고 가족과는 자연스럽게 서먹해졌다. “일어나, 학교 가야지.” 아침을 알리는 엄마의 목소리다. 퉁퉁 부은 눈으로 엄마를 힘겹게 노려보았다. 하루에 엄마와의 대화는 방금의 대화가 끝이라 봐도 무방하다. 담이라도 쌓은 것처럼 대화하기는커녕 인사를 하거나 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은 지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인성여고 1학년 OO

 
우리 모두 엄청나게 고생해서 이 나라가 GDP 12위(2017년) 부자 나라가 되었는데 사람들 고통은 오히려 갈수록 더 커지니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식구들하고 둘러앉아 밥 한 끼 맘 편하게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사는데도 오히려 더 불행해진다는데 이게 다 내 잘못이란 말입니까. 우리나라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이 70%나 되는데 유럽 나라들은 30% 정도밖에 안 된답니다. 유럽의 나라들은 대학 등록금이 거의 공짜인데 왜 이렇게 대학엘 안 갈까요. 유럽 아이들은 공부를 싫어하는 건가요? 우리처럼 먹고살기 위해 죽자 살자 공부하는 게 아니랍니다. 정말 연구하려는 학생들만 대학에 진학을 한답니다. 대학을 안 나왔다고 노동시장에서 불이익을 받을 일이 없으니 스펙 쌓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대학에 갈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북유럽의 나라에서는 비정규직이 10% 정도밖에 안 되고 정규직보다 임금이 더 많다고 합니다. 이러니 공부가 돈놀이처럼 황폐해질 리가 없지요.
 
‘이스털린 역설’도 이 문제에 대한 진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부자 나라가 되는 게 국민의 행복지수를 떨어뜨린답니다. ‘토마 파케티’라는 경제학자의 [세계 불평등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에게 상위 부자들 0.1%의 재산 합한 게 전 세계 하위 인구 50%의 재산 다 합친 것만큼 많다고 합니다. 우리 불행감의 진실을 명확히 드러냈지요. 바로 불평등입니다. 나라가 아무리 부자가 되어도 부의 편중이 심해지면 국민들은 점점 더 불행해진다는 겁니다. 1등이 모든 걸 독차지 하는 입시 체제에서는 나머지는 전부 루저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니 경쟁은 점점 더 극심해질 수밖에요. 가족들하고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을 지경인데 친구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세대보다 훨씬 부자 나라에 살지만 이 아이들 마음은 우리 세대보다 엄청 더 가난한 것 같네요. 얘기 하나만 더 들어봅니다.
 
“‘밥상’ 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가족들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이 떠오르는가.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틈 없이 바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과의 여유는 그저 사치일 뿐이다. 아침 7시에 출근하셔서 늦은 저녁에 돌아오시는 아빠, 그 뒤에 바로 등교하여 밤 10시에 돌아오는 나, 그리고 나를 학교에 데려다 주시고 바로 출근하시는 엄마까지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한데 모여 앉아 5분 대화하는 시간도 만들기 어려운 상황이다.”
-인성여고 3학년 윤OO
 
‘밥상머리 교육’, 요즘 세대들은 아마 이 말이 뭔 말이지도 모를 겁니다. 아침은 패스트푸드 점심 저녁은 급식이니 밥상머리에 앉을 일이 없지요. 우리 어릴 때에는 밥상머리 예절이 고리타분한 유교 인습이라고 투덜대기도 했는데 그 밥상머리가 사라지고 마는 삭막한 시대가 되어버린 지금은 그만큼 귀한 공감교육의 자리가 또 있을까 싶네요. 행복은 곧 공감이 아닐까요. 더불어 공감할 타자가 없는 외로운 삶은 우리를 점점 삭막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우리가 노력하지 않고 게을러서 이렇게 된 게 아니라는 건 명확한 것 같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죽도록 공부해야 한다고 다그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하면 할수록 고통의 늪으로 점점 더 깊이 빠지게 되는 게 불편한 진실입니다. 엄살이 아니라 정말 아이들은 숨 막힐 지경입니다. in서울 못할 바에야 재수하라는 부모님의 권고가 숨 막히게 하는 올가미 같은데 무슨 공부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이 젊은이들의 비극은 누구의 잘못 때문일까요. 아니 누구를 탓할 수나 있을까요. 이 젊은이들 중 8,90%가 낙오자가 되었다는 패배감에 젖어 살 텐데 이들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단 말입니까. 절대 다수가 경쟁에서 도태되고 마는 구조인데 이들이 반성을 하고 각성하면 구제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건 기만이 아닙니까.
 
어떤 직업을 고를까 고민하는 건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의 한가한 일로 보이는 게 우리 사회 현실입니다. 직장을 구하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 버렸으니까요.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당장 생계 걱정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적성을 고려하는 게 사치일 수 있습니다. 최근 한국정보고용원의 발표에 의하면 요즘 미취업 청년의 정규직 취업률이 21.5%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되었답니다. 5명 중 한 명 꼴로 월평균 임금 260만 원 정도의 정규직에 취업하고 나머지는 무직 상태이거나 한 달 140만 원 정도의 박봉에 시달리는 임시직에 취업한다고 합니다. 이런 형편이니 소질과 적성을 운운하는 건 참 철없는 얘기일 수 있습니다. 타자와의 진실한 공감 소통? 말도 안 되지요.
 
‘in서울’, ‘SKY’만한 교육 적폐가 또 있을까요. 말단 공무원 임용 시험일지라도 SKY 출신 아니면 꿈도 꾸지 말라는 게 요즘 구직난 세태의 단면이라고 합니다. 그 험난한 공시생 과정을 통과한 SKY들은 또 얼마나 오만한지 동사무소 찾는 주민들이 너무 불쾌하다고 하소연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공부 잘 하는 학생은 인성(人性)이 바닥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건 이제 피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 되었습니다. 교육 적폐 때문에 공부하는 애나 뒷바라지 하는 부모나 하나같이 피 말리는 고통을 견디고 있습니다. 이래 봐야 남는 건 상처뿐이란 걸 모르지 않지만 별도리가 없으니 그 속이 어떨까요. 선생도 매한가지입니다. 내가 열심히 가르칠수록 저 아이들이 점점 더 불행해진다니 이 시대에 교육자로 산다는 게 참으로 난감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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