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쓴 독립운동, 변치 않는 신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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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쓴 독립운동, 변치 않는 신념
  • 윤종환 기자
  • 승인 2019.11.08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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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차 생명평화포럼 '한용운, 정지용, 윤동주 - '신념'의 시인들





만해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정지용(鄭芝溶, 1902-1950), 윤동주(尹東柱, 1917-1945)

이들은 일제 치하에서 고향 조선의 모습을, 나아가 독립을 노래한 '민족시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 네 글자만으로 세 시인을 단정할 수는 없다. 이에 세 시인의 보다 깊은 '정체성'은 무엇인지를 묻는 자리가 마련됐다.  





생명평화기독연대가 진행하고 있는 생명평화포럼이 제158차를 맞아 '한용운, 정지용, 윤동주 - 시(詩)로 쓴 독립운동' 을 주제로 7일 오후 7시 부평아트센터서 열렸다.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져있지만, 역설적으로 잘 알려졌기 때문에 한 모습, 한 단어로 '뭉뚱그려진 혹은 규정된' 시인과 시 세계에 보다 깊이 다가가려는 자리다. 또 어려운 논제들에 대한 토론이 아닌, 문학적 나눔을 통해 지친 시민들에게 '힐링'의 시간을 주고자 마련된 인문학 나눔의 시간이다. 

이날 포럼은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의 강연과 함께 자리한 30여명 시민들의 작은 공연(시 낭송과 노래)으로 구성됐다. 본격적인 강의에 앞서 참여 시민들은 저마다의 스타일로 시를 노래하며 따스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김 교수는 이 자리서 세 시인의 '과거 행적', '시 텍스트 분석', '당대의 시대적 상황', '시인들간의 관계' 등에 대해 설명했다. 이를 통해 그들의 시 속에 녹아든 '과거(역사)와 현재에 대한 생각', '그들이 추구했던 무언가'를 천천히 되짚었다.

김 교수는 강의를 시작하며 '시인은 시인일 뿐'이라고 말했다. 민족시인이든 기독·불교시인이든 어느 하나로 '규정'된 별칭을 붙이는 것은 좋지 않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문학 작품엔 저자의 삶(행적), 역사, 시대적 배경, 종교, 교육, 당대의 문학적 관습과 상징 등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렇기에 우리가 시인을 이해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그 모든 것들이 녹아든 텍스트를 꼼꼼히 살펴야한다"고 강조했다.

한용운은 3·1운동 등에서 최전선에 나선 독립운동가다. 그런데 그의 시 속엔 저항과 독립을 노래한 대표적 시인 이육사(李陸史, 1904-1944)와 같은 뚜렷함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나의 길>과 같은 시에서도 그는 자신이 걷고자하는 길에 대해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민족운동을 한 민족시인이라도 뚜렷한 무언가만을 쓰지는 않는다"며 한용운의 평소 행적(철학과 성경에 대해 정통했던 점, 감옥에서도 절망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며 텍스트에 접근해야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용운이 감옥에서도 평정을 유지했던 이유가 있을 것"이라 말했다. 그는 이어 "그것은 어떤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라 물었다.

김 교수는 이어 한용운의 시 <알 수 없어요>의 마지막 연에 집중해야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한용운은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는' 가능성이 없어보이는 일을 위해 '자신을 태우겠다'는 다짐을 시에 녹였다.

이는 아무리 가능성이 없어도 그것을 믿는다는 '다짐'이자 '신념'인 것이다. 김 교수는 "이것이 한용운의 정체성을 압축해서 보여준다"며 "한용운 시의 형식과 소재를 볼 때, 그는 변치않는 믿음으로 약한 이들을 가르쳤을 것"이라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정지용과 윤동주의 과거 행적, 고향,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 등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그에 따르면 정지용과 윤동주는 공통점이 꽤 많았다. 김 교수는 이를 두고 "정지용은 윤동주의 시(詩)적 아버지, 스승"이라 설명했다.

정지용과 윤동주는 동시대 사람이나, 그들이 만나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나눴다는 기록은 없다. 김 교수에 따르면 '만났어도 정지용은 윤동주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 정도의 만남이 있었을 뿐이다. 

김 교수는 "그럼에도 윤동주의 시 110편 중 11편은 정지용 시의 모작"이라며, 두 시인의 외적인 행적(변방과 유학 생활 등)에 공통점이 많고, 정지용 시의 참신한 형식, 내용, 소재, 제목 등이 윤동주 시에도 담겼다고 설명했다. 이는 곧 작품 속에 내포한 생각, 감정, 나아가 '정체성'이 서로 비슷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정지용의 시에서 표출되는 서정 이면엔 항상 반복적으로 그가 지녔던 역사 의식이 내재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것은 '조국에 대해 잊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정지용의 평소 행적(역사의식이 있던 인물들과의 교류, 끝까지 친일하지 않았던 인물들을 추천·등용 한 것)을 통해 구체화된다는 설명이다. 

그렇기에 정지용의 시를 두고 "걸작이다, 열정을 말하다"라며 따른 윤동주 역시 비슷한 의식과 정체성으로 나아갔을 것이란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윤동주는 정지용의 <나무>라는 시를 따라 자신도 <나무>라는 시를 썼다고 말했다. 이 시는 "'역사와 고향'을 잊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겠다는 윤동주의 '다짐'"이 투영된 것으로 두 시인이 가진 정체성의 공통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강의를 마무리하며 "세 시인은 민족투사란 네 글자만으로 정의될 것이 아닌, 자신의 '신념'을 가졌던 이로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 강조했다. 세 시인이 민족시인이 아니란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굳건한 신념의 시인. 그것이 세 시인의 정체성임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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