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편하게 쉬어 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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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편하게 쉬어 봤으면…"
  • 이혜정
  • 승인 2011.03.0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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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10명 중 4명은 '만성피로' - '업무 스트레스'가 주원인


취재 : 이혜정 기자

A기업에서 2년째 거래점포를 관리하고 있는 이모(28․여․부평동)씨는 오후 10시가 돼야 쉴 수 있다. 이씨는 자회사 물품 거래 점포에 화장품을 납품하고 매달 마지막 주가 되면 물품 정산 처리를 한다. 지난달 22일에는 물품 정산을 하기 위해 거래 점포를 돌아다니느라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을 했다. 회사의 출퇴근 시간은 9시부터 6시까지. 그러나 이씨는 입사한 후 단 한 번도 제 시간에 퇴근한 적이 없다.

이씨는 오전 8시 40분까지 출근해 매일 9시 오전 회의로 하루를 시작한다. 회의를 마친 뒤엔 각종 서류 준비, 제품 판매 시 소비자 반응 관련 제품시황 보고, 각 점포별 특징파악 및 컨설팅관련 준비 등 내근업무를 한다. 오후에는 거래하고 있는 점포를 하루 3~4곳 돌아다닌다. 보통 낮 12시부터 1시까지는 점심시간이지만 업무량이 많아 때를 놓쳐 거래 점포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샌드위치, 빵, 과일, 초코렛 등으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한다. 거래 점포를 돌며 점주들과 상품 매입 및 판매 컨설팅이 끝나면 퇴근시간을 훌쩍 넘긴 10시쯤 집에 도착한다.

"월말~월초에는 물품 정산 때문에 정신이 없어요. 마감날짜가 다가오면 점주들이 전화를 안 받거나 가게에 나오지 않고 정산을 해주지 않은 일이 허다해 마감 때쯤 되면 회사에서 싫은 소리 듣기 바쁩니다." 이씨의 하소연이다.

그는 "매달 팀별 목표치를 6명이서 매달 평균 7~8억을 달성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면서 "한 팀에서 한 사람이 할당한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면 나머지 팀원이 채워야 하는 부담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인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주말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한다. 주 5일 근무지만 업무량이 많아 주말에도 사무실에 출근하는 게 다반사다. 특히 담당 점포 점주들은 밤과 낮, 주말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해 쉬는 날에도 맘 편히 쉬지 못한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고 있는 이씨는 피로함에 시달려도 잠을 편히 못 자기 일쑤고, 전화소리만 들으면 놀라 쉬는 날에는 전화를 무음으로 해놓는다고 했다.

이씨는 "과다한 업무량과 스트레스 등으로 피곤함에 시달리다 보니 종종 하혈을 하거나 허리에 통증이 와서 병원을 다니고 있다"면서 "시간을 내 병원에 가는 것도 눈치가 보여 제때 병원에 가지 못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오후 부평에서 만난 은행원 김모(33·청라지구)씨도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청라지구에 살고 있는 김씨는 출근길에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다. 버스노선이 많지 않고, 배차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만원 버스안에서 40~50분 사람들 사이에 껴 시달리다가 다시 인천지하철을 타고 문학역에 내려 10분 정도 걸어 회사에 도착한다. 출근시간만 1시간 30분. 김씨는 일을 하기 전부터 진이 빠진다고 했다.

오전 9시부터 업무가 시작되면 12시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창구에서 움직이지 못한다. 주로 점심시간에 손님들이 몰리다 보니 6명의 직원이 3명씩 나누어 점심을 먹고 바로 제자리에 앉아 업무를 본다. 일반 직장처럼 점심시간의 여유도 없이 은행업무가 끝나는 시간까지는 하루 종일 앉아 있다. 일을 하면서 김씨는 소화불량, 다리 저림, 눈 피로함,목 결림 등의 불편함을 호소했다.

김씨는 "점심시간에 손님들이 많이 몰려 점심을 먹고 양치질만 하면 바로 앉아서 업무를 봐야 한다"면서 "잠시 쉴 여유도 없으니 밥을 먹어도 소화도 안 되고 하루 종일 모니터를 보면서 앉아 있어 피로함 때문에 한 주간 내내 기진맥진이다"라고 말했다.

더군다나 김씨가 일하는 은행에는 직원이 6명밖에 없어 대출과 예금업무를 함께 보고 있다. 이로 인해 평균 퇴근시간은 오후 9시쯤이다. 또 매달 40~50개 보험가입 실적을 채워야 하는 부담감에 스트레스가 배가되고 있다. 김씨는 친인척을 동원해 보험실적을 올리고, 심지어 피보험자를 다른 명의로 하고 6~7개 보험을 가입한 상태다.

과다한 업무뿐만이 아니다. 직장 상사가 술을 좋아하다 보니 1주일에 3번 정도는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신다.

그는 "기다리던 퇴근시간이 되면 상사가 술을 먹자고 하니 혹시나 눈 밖에 날까 걱정돼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시게 된다"면서 "2차까지 술을 마시지만 다른 사람들이 3~4차 가는 수준의 양을 마셔 술 냄새가 가시지 않은 상태로 출근하는 일이 잦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입사한 후 시력이 떨어져 안경을 쓰고 있고, 간수치가 많이 올라 간장약을 챙겨 먹는 게 일과 중 하나다.


요즘 직장인들은 업무상 스트레스로 '만성피로'에 시달려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포털 사람인(www.saramin.co.kr)에 따르면 직장인 2237명을 대상으로 피로도와 관련해 조사한 결과 10명 중 4명이 만성피로를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로를 항상 느낀다'는 응답이 39.7%로 가장 많았고, '자주 느낀다' 35.8%. '가끔 느낀다' 22%, '느끼지 않는다' 2.6%로 순이었다.

연령별로 보면 20대는 '항상 느낀다' (49.9%)는 응답이 가장 많은 반면 30대와 40대는 '자주 느낀다'가 각각 38.4%, 46.7%였다. 50대는 '가끔 느낀다' 42.7%가 제일 많았다. 연령대가 낮을수록 더 많은 피로감을 느끼는 셈이다.

피로를 느끼는 원인으로는 '업무 스트레스'(68.4%, 복수응답)를 우선으로 꼽았다. 이어 '수면 부족'(55.4%), '인간관계 스트레스'(54.4%), '운동 부족'(43.4%), '경제적 스트레스'(27.3%), '과음'(14.7%) 등 순이다. 이밖에 '잘못된 식생활(12.3%), '급격한 체중 변화'(11.3%), '가정 스트레스'(9.2%) 등의 의견도 나왔다.

피로를 느끼는 빈도는 1주일에 평균 3.9일로 집계됐다.

직장인들이 느끼는 피로 증상 1위는 '나른함'(52.2%·복수응답)이 차지했다. 다음으로 '무력감'(42.1%), '눈이 피로하고 충혈'(41.5%), '업무능력 저하'(41%), '두통'(34.8%), '소화불량'(29.2%), '수면장애'(26.6%), '근육 통증'(25.5%), '눈꺼풀 경련'(24.2%), '권태감'(22.3%), '입안 헐음'(17.2%) 등이다.

피로의 강도를 묻는 질문에는 49.3%가 '업무 등에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수준'을 선택했고, '기운이 없어 안정을 취해야 할 수준'(24.6%)이 뒤를 이었다. 이밖에 '일상생활에 큰 지장은 없는 수준'(16.7%), '회사를 그만두고 계속 쉬어야 할 수준'(6.2%),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할 수준'(3.2%) 순으로 나타났다.

직장인들의 피로 해소법으로는 '쉬거나 잠을 잔다'(77%·복수응답)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황원준 한국정신건강연구소 소장은 "적당한 스트레스는 집중을 도와주고 적응력을 키워 일의 효율성을 높여주지만, 스트레스가 과도하거나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면 신체적·정신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피할 수 없다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당당히 맞서는 마음자세가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즐기는 취미생활을 하거나 적당한 영양공급, 충분한 수면 등을 통해 생활리듬을 유지하는 게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서 "본인 의지로 힘들 경우 전문의를 찾아 상담을 받는 것도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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