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삶 사랑할 때에 바른 말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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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삶 사랑할 때에 바른 말 하는 사람
  • 최종규
  • 승인 2011.06.15 0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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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데이비드 바사미언, 《시대의 양심 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

 한자말 ‘양심(良心)’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양심 있는 사람이 된다 할 때에는 옳고 그른 줄을 아는 사람이 된다는 사람을 가리킨다 할 테지만, 이에 앞서 ‘착한’ 사람을 일컫는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良心’에서 ‘良’이란 ‘착할 량’이거든요.

 말이며 몸가짐이며 곱거나 바르거나 상냥할 때에 착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말이며 몸가짐이며 곱거나 바르거나 상냥하자면, 옳은 말과 몸가짐을 알아야 합니다. 옳은 말과 몸가짐을 모르고서야 곱거나 바르거나 상냥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으레 ‘선량’이나 ‘양심’이나 ‘선행’이나 ‘선심’ 같은 갖가지 한자말을 들먹입니다만, 어떠한 말마디라 하더라도 한 가지로 모둘 수 있습니다. ‘착함’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내 마음을 착하게 가다듬을 때에 내 삶을 옳은 쪽으로 접어들도록 애쓰는 셈이고, 내 하루를 착하게 돌볼 때에 내 삶을 바른 길로 접어들도록 힘쓰는 노릇이며, 내 말을 착하게 다스릴 때에 내 삶을 상냥한 결로 돌보도록 온몸을 쓴다 할 만합니다.

 《시대의 양심 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라는 책이라 한다면, 이 지구별에서 ‘착하게’ 살아가면서 ‘바르게’ 말하려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담으려 했다는 소리라고 느낍니다.

.. 인도 정부는 비폭력이란 개념을 지향해 왔습니다. 따라서 비폭력 저항과 비폭력 지배가 인도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지요. 중국이나 터키, 인도네시아와 달리 인도는 국민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정부의 뜻에 따르지 않는다고 국민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꾹 참고 기다릴 뿐입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계속하고, 그 결과는 무시해 버립니다 … 인도 공공분야의 기반시설은 국민의 돈으로 지난 50년 동안 꾸준히 건설된 것입니다. 정부는 이런 기반시설을 엔론에게 팔 권리가 없습니다 … 야라 나라가 핵무기를 비축해서, 인도와 파키스탄과 미국처럼 자기 국민을 속이고 다른 나라를 위협하는 세계는 위험한 세계입니다 …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이라 말하면서, 핵폭탄을 만드는 데 돈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 도시의 좁은 틈바구니에는 예외없이 가난한 사람이 몸을 쪼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한 곳은 빛이 너무 환한데, 어둠은 그 주변에서 점점 짙어 갑니다. 엘리트들은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 내가 쓴 글대로 행동하고, 내가 글로 쓴 것을 끝까지 해내려고 애씁니다 ..  (아룬다티 로이/145∼151쪽)

 나부터 착해야 합니다. 내 마을이 착해야 합니다. 내 겨레와 내 나라가 착해야 합니다. 여느 일자리를 찾아 여느 살림을 꾸리는 나부터 착해야 합니다. 공무원이나 교사로 일하는 사람도 착해야 하고, 정치를 하건 회사를 꾸리건 착해야 합니다.

 착한 사람은 제 밥그릇을 챙기지 않습니다. 착한 사람은 나와 네가 서로 웃으면서 마주할 밥상을 차립니다. 착한 사람이 제 밥그릇 떵떵거릴 까닭이 없고, 착한 사람이 어깨를 우쭐거릴 일이 없습니다.

 착하게 살아가며 정치를 한다 할 때에는 제 힘을 키우려 하지 않습니다. 서로서로 즐거울 터전을 일굴 정치를 할 착한 사람입니다. 회사를 꾸리건 공장을 꾸리건 다르지 않습니다. 일하는 사람 누구나 땀값을 받도록 마음을 기울여야 착한 사람입니다. 착한 사람은 돈을 더 벌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착한 사람은 내 살림을 사랑하고 내 이웃 살림을 사랑합니다. 다 함께 오붓하게 누리거나 즐길 보금자리를 사랑합니다.

.. 우리에겐 더 이상 관광객이 필요없습니다. 우리는 관광객을 원하지 않습니다. 관광객을 위한 휴양지가 세워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 하와이에는 사방이 골프장입니다. 온갖 종류의 살충제가 뿌려집니다. 원주민이 쫓겨난 땅에 골프장이 세워집니다 … 환경오염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환경적 인종차별이기도 합니다 … 관광객들도 와이키키가 자동차와 사람으로 만원이라고 투덜댑니다. 교통난이 끔찍합니다. 관광객들은 다른 섬으로도 끊임없이 찾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다른 섬들까지 단기간에 황폐화시킵니다 … 하와이를 찾는 관광객의 대부분은 우리 역사를 모릅니다. 우리가 미국의 일부가 되기를 기꺼이 원한 것처럼 거짓으로 꾸며진 매우 낭만적 이야기를 알고 있을 뿐입니다 ..  (하우나니 카이 트라스크/173∼177쪽)

 나는 어버이로서 생각합니다. 어버이인 나부터 착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우리 집 아이가 학교를 다니건 안 다니건 그닥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는 제 어버이가 일구는 착한 삶을 가까이에서 늘 지켜보면서 스스로 착한 길을 걸을 수 있으면 됩니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착한 삶을 스스로 헤아리면서 아이한테 가장 걸맞으며 아름다울 착한 나날을 일구면 됩니다.

 굳이 초등학교이니 중학교이니 고등학교이니 대학교이니 보내지 않아도 됩니다. 학문은 제도권학교가 아닐 뿐더러, 배움은 대안학교 또한 아닙니다. 졸업장이 있대서 학문을 잘 갈고닦은 사람이 아닙니다. 대안학교를 다녔기에 열린 넋이나 얼로 사랑을 나누지 않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 학교는 제도권이라 하든 대안이라 하든, 정작 가야 할 길을 놓치기 일쑤입니다. 왜냐하면, 배우는 곳이라 하는 학교는, 교과 과정이 아니라 삶을 가르치며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삶을 가르치며 배울 수 없다면 배움터가 아닙니다. 삶이 아닌 지식을 가르치거나 배운다면 입시학원입니다. 시험문제를 풀거나 교과서를 외우도록 이끈다면 입시학원입니다. 학교는 학원이 아닌 학교라는 이름을 쓴다지만, 껍데기가 학교라 하기에 학교이지 않습니다. 알맹이가 학교라야 학교이지, 학교 노릇은 안 하거나 못 하면서 이름만 학교라 일컫는대서 학교일 수 없습니다.

 학교라는 이름을 붙이려 한다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부터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착한 꿈과 착한 말로 착한 삶을 사랑하는 교사가 있어야 비로소 학교입니다.

 착한 교사가 착한 아이들을 맞아들여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착한 배움길을 걸어가려 할 때에 바야흐로 배움터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착하지 않고서야 무슨 가르침이고 어떤 배움이겠습니다.

 착함이란 옳고 바르게 살아가는 길이요, 착함이란 아름답고 해맑게 살아내는 나날이며, 착함이란 따스하며 넉넉하게 얼싸안는 사랑입니다.

.. 어머니는 여성만의 힘으로 세계를 평화롭게 만들어 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남자는 탐욕과 자아로 가득해서 긴장과 폭력을 낳을 뿐이라고 말입니다 … 어머니는 “나일론 옷을 사 주는 건 문제가 아니란다. 하지만 네가 어떻게 살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는지 생각해 보거라. 그럼 먹을 것이 직공의 손에 들어가는 게 낫겠니? 이익이 산업자본주의자의 손에 들어가는 게 낫겠니?”라고 말했습니다 … 내가 아직도 수공예품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수공예품을 단순히 제품으로만 보지 말고 인간의 창조력과 노동으로 빚어진 산물로 생각하라는 어머니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 미국 영화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시스템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엘리트들에게 미국식의 에너지 소비자가 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세계화를 간단히 정의한다면 ‘시장이 될 만한 곳을 찾아내라!’는 것입니다 … 우리는 마시는 물에 돈을 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세계은행은 물이 공짜이기 때문에 남용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물이 남용되는 진짜 이유는 물을 대규모로 사용하는 산업체가 물을 알뜰하게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물을 오염까지 시키고요 … 사회적 책임, 노동자의 권리, 자원의 이용이나 독극물의 방출에 대한 제한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자본과 무역만 자유화하는 세계 헌법에 찬성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현재의 자유무역협정은 이 땅에서 생명을 고갈시키려는 협정입니다 … 대기업들과 싸우면서 그들이 겉으로는 막강한 힘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한없이 공허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짜릿한 전율감마저 느낍니다 ..  (반다니 시바/340∼349쪽)

 이야기책 《시대의 양심 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데이비드 바사미언이라는 사람이 만난 스무 사람은 한결같이 ‘착한 꿈’을 ‘착한 말’로 펼치며 ‘착한 삶’을 들려주려 합니다. 꿈과 말과 삶이 한동아리로 착하게 흐르도록 힘을 쏟습니다. 넋과 글과 일놀이가 착하게 뿌리내리도록 땀을 흘립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닙니다. 그저 착한 길입니다. 착한 마음일 때에 착한 얼굴이고, 착한 손길로 착한 글을 쓰거나 착한 그림을 그리거나 착한 사진을 찍습니다. 사랑바라기를 하면서 조그맣게 살림을 꾸립니다. 믿음바라기를 하면서 예쁘게 두레를 하거나 울력을 합니다.

 굳이 남 앞에서 멋들어져 보이는 옷을 차려입을 까닭이 없습니다. 내 고운 결을 아끼면서 내 고운 보금자리를 어여삐 돌보는 삶을 일구면서 내 숨결을 살찌우는 자연을 헤아리는 옷을 자연에서 얻어 자연스레 웃으면 됩니다. 치레하는 삶이 아닌 사랑하는 삶입니다. 내보이거나 뽐내는 삶이 아닌 보살피거나 어깨동무하는 삶입니다.

― 시대의 양심 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 (데이비드 바사미언 엮음,강주헌 옮김,시대의창 펴냄,2006.9.18./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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