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예쁜 목숨과 사랑스러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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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예쁜 목숨과 사랑스러운 삶
  • 최종규
  • 승인 2011.06.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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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 좋다] 클레어 터레이 뉴베리, 《에이프릴의 고양이》

 지구별 사람 숫자가 60억을 넘었을 뿐 아니라, 곧 70억이 된다고 합니다. 내 어린 나날, 나는 지구별 사람 숫자가 이토록 어마어마하게 늘어날 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내 국민학생 때에 40억쯤 된다고 했던가, 앞으로 50억이 넘으리라고 했던가, 열 살 남짓 하던 어린이는 앞으로 스물이 지나고 서른이 지나며 마흔이 다가올 줄을 몰랐습니다. 언제나 고 나이 그대로 머물지 않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70억뿐 아니라 80억이나 100억에까지 이를 수 있겠구나 싶은 지구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한국땅에서는 ‘아이들이 모자란다’면서 아이를 더 낳아야 ‘나라를 사랑하는’ 일이 된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이제 아이를 낳으면 나라에서 돈도 주고 뭣도 주고 합니다. 그야말로 법석을 떱니다. 서울에서야 아이가 태어난대서 ‘아이 수당’을 줄 일이 없겠지만, 어느 곳에서는 아이 하나에 50만 원을 주느니 200만 원을 주느니 이야기합니다. 남녘땅에서만 오천만이 넘어섰는데도요.

 우리 식구 깃든 시골마을 지자체에서도 아이마다 육아수당을 줍니다. 다만, 한 달 벌이가 백만 원이 안 되는 집안에만 준다던가. 아무튼 우리 집도 이 육아수당을 받습니다. 곧 둘째가 태어나는데, 둘째한테도 따로 육아수당을 준다고 합니다. 참 고마운 일이구나 하고 여기지만, 마냥 고마운 일만은 아닙니다. 따로 육아수당을 주기 앞서 이 나라 사회 얼거리와 교육 얼거리와 문화 얼거리가 아름답다면 육아수당이라느니 무슨 수당이라느니는 없어도 되기 때문이에요. 사회와 교육과 문화 얼거리를 제대로 다스리지 않으면서 ‘가난하다는 몇몇 집안’에 돈푼을 조금 보탠다 하면서 복지 정책을 잘 한다며 자랑하는 셈이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살기 좋은 나라라 한다면, 가난한 사람이든 가멸찬 사람이든 살기 좋아야 하거든요. 돈이 있는 사람이든 돈이 없는 사람이든 푸대접이나 따돌림이나 괴롭힘이 없이 서로 오붓하게 어울리면서 즐거이 웃고 울 수 있어야 하거든요.

 육아수당 같은 돈을 준다면, 또 출산장려금 같은 돈을 주겠다면, 모든 사람한테 주어야 해요. 학교급식을 부잣집 아이래서 안 줄 수 없어요. 무상급식이란 가난한 집 아이뿐 아니라 안 가난한 집이나 그럭저럭 여느 집 아이한테도 베풀 일입니다. 다 함께 누릴 복지이고 평등이며 평화예요. 누구나 즐거이 누리면서 나눌 사랑이자 믿음이에요.

 한 사람이 살아가는 길에서 ‘다 다른 자리가 저마다 아름다우면서 즐겁다’고 느끼면서 활짝 웃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시커멓고 커다란 자가용을 몰아야 멋지거나 훌륭한 삶이지 않아요. 시골길을 두 다리로 낑낑대며 거닐며 짐을 나르거나 장마당 마실을 하기에 바보스러운 삶이지 않아요. 큰도시 아파트에서 살든, 멧골자락 작은 집에서 살든, 흙을 일구며 살든, 펜대나 셈틀을 만지작거리며 살든, 누구나 아름다운 사람이고 사랑스러운 목숨이에요.

 그리고, 사람 못지않게 딱새와 참새와 비둘기도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목숨입니다. 개미와 거미와 바퀴벌레도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목숨입니다. 텃밭에서 토마토 잎과 감자 잎을 갉아먹는 스물여덟점박이무당벌레 또한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목숨이에요. 아침·낮·저녁으로 요 스물여덟점박이무당벌레를 수십 마리씩 잡아서 돌이나 젓가락으로 꾹꾹 눌러 죽입니다. 너희를 죽여야 내가 살아가니까 부디 다음에는 좋은 목숨 얻어 좋은 누리에서 잘 살아가기를 비손합니다. 감자알을 먹든 쌀알을 먹든, 오징어를 먹든 배추를 먹든, 하나같이 고마운 목숨이 내 몸으로 들어옵니다. 나는 목숨을 받아먹으며 목숨을 잇는 사람입니다.

.. 이 집에서는 고양이를 한 마리밖에 키울 수 없다니, 에이프릴은 아빠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 이렇게 고양이 네 마리가 있고, 우리 가족은 전보다 훨씬 더 행복하잖아! ..  (10쪽)

 그림책 《에이프릴의 고양이》(시공주니어,1998)를 읽습니다. 더없이 사랑스럽구나 하고 느낄 만한 고양이가 살포시 고개를 내미는 그림책입니다. 이 그림책을 일군 분은 고양이를 무척 아끼거나 사랑하리라 생각합니다. 그저 그림 솜씨가 빼어나대서 이러한 그림책을 일굴 수 있지는 않으니까요. 아름다운 손길과 눈길과 마음길이 어우러지면서 아름다운 그림을 낳습니다. 사랑스러운 꿈길과 넋길과 붓길이 얼크러지면서 사랑스러운 그림을 빚습니다.

 생각해 보면, 고양이를 그림으로 그리는 분이 대단히 많습니다. 개도 그렇고 나무도 그렇고 꽃도 그렇습니다. 이웃사람이나 동무나 살붙이나 둘레 수많은 사람을 그림으로 그리는 사람도 많아요.

 누구나 그리는 그림입니다. 누구나 쓰는 글입니다. 누구나 찍는 사진이에요.

 그렇지만, 누구나 그리고 쓰며 찍는다 하더라도, 막상 사랑과 믿음을 고이 싣는 그림이나 글이나 사진은 퍽 드뭅니다. 예쁘장하게 보인다지만 사랑스레 보이는 그림이나 글이나 사진은 드물어요. 멋들어지게 보이지만 믿음직하게 껴안을 만한 그림이나 글이나 사진은 찾기 어렵습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미술대학을 나왔거나 미술학원을 오래 다녔거나 빼어난 스승을 모시면서 그림을 배우기에 그림을 잘 그리지 않습니다. 비싼 펜을 쓰거나 값진 종이를 쓰기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름난 시쟁이나 소설쟁이한테서 글쓰기를 배웠으니까 글을 잘 쓰지 않아요.

 오롯이 내 삶으로 쓰는 글입니다. 그예 내 삶으로 그리는 그림입니다. 온통 내 삶으로 찍는 사진이에요. 그림책 《에이프릴의 고양이》는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랑 고양이를 나란히 사랑하는 넋으로 따사롭게 빚은 작품입니다.

.. 엄마가 물었습니다. “새끼 고양이를 한 마리 데려다 기르지 않겠어요, 미스 엘웰?” 미스 엘웰이 소리쳤습니다. “세상에, 그건 말도 안 돼요! 이미 고양이를 너무 많이 기르고 있는걸요. 아주머니도 한번 우리 집 고양이 밥값 청구서를 보셔야 해요. 가슴이 덜덜 떨릴 정도라니까요!” 하지만 미스 엘웰은 (새끼 고양이) 차콜과 브렌다가 소파 쿠션 사이에서 숨바꼭질을 하며 노는 모습을 보고는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머, 너무 귀여워요! 정말로 예쁘네!” 미스 엘웰은 계속 같은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그러더니 결국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당장 데려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  (22쪽)

 고양이는 금세 어른이 됩니다. 금세 어른이 된 고양이는 이윽고 새끼를 낳습니다. 고양이는 한 해에 두 차례 새끼를 낳습니다. 새끼 고양이는 금세 어른 고양이가 되어 새끼를 낳습니다. 고양이는 해마다 손자 뻘 고양이를 낳고, 이듬해에는 증손자 뻘 고양이를, 또 이듬해에는 ……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도 아닌 여러 마리가 끝없이 퍼집니다.

 고양이가 집고양이 아닌 들고양이로 살아간대도 이토록 어마어마하게 새끼를 낳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왜냐하면, 여태껏 고양이 숫자가 이토록 어마어마하게 늘어나는 일을 걱정한 적은 없을 테니까요. 한꺼번에 열 마리씩 새끼를 낳기도 하는 돼지라지만, 돼지가 고기돼지 아닌 들돼지나 멧돼지로 살아갈 때에는 새끼를 함부로 많이 낳지 않아요. 꼭 저 살아갈 만큼만, 또 이웃 돼지가 함께 제 터전에서 살아갈 크기만큼 새끼를 낳아 건사합니다.

 사람들이 집고양이를 기르고 집개를 키우면서 ‘끝없이 늘어나는 고양이와 개’가 근심거리가 됩니다. 집고양이가 되면서 새끼를 더 낳지 못하도록 손을 써야 합니다. 사람들이 고양이를 귀염둥이 고양이로 기르면서 고양이는 들고양이로 지내던 버릇과 삶을 버려야 합니다.

.. 아빠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좀더 큰 아파트로 이사하는 수밖에 없겠는걸. 어쨌거나 우리에겐 넓은 집이 필요해. 이 집은 너무 좁아.” 그 순간 에이프릴이 벌떡 일어나 앉으며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빠! 새 아파트로 가게 되면 어떤 아파트로 하실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처럼 고양이 한 마리용 아파트예요? 아니면, 아니면…….” ..  (30쪽)

 그림책 《에이프릴의 고양이》는 고양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이런 걱정은 굳이 안 해도 된다고 여길 만하지만, 너무도 쉽게 ‘큰 집으로 옮기면 된다’고 실마리를 풉니다. 틀림없이 어느 집에서는 이렇게 ‘큰 집으로 옮기면 돼’ 하고 말할 텐데, 틀림없이 수많은 집은 이렇게 ‘큰 집으로 쉬 못 옮기’며 살아갑니다. 더군다나, 집에서 고양이를 기른다고 할 때에, 먹이 주고 똥오줌 치우며 집안에 흩날리는 털을 훔치는 몫은 누가 하려나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에이프릴은 집안일을 얼마나 잘 할 줄 알거나 잘 거들 줄 알까요. 마냥 귀여운 고양이를 그저 귀엽게 여긴대서 고양이와 함께 예쁘게 살아갈 수 있을는지요. 몹시 귀여운 고양이를 매우 끔찍이 생각한대서 고양이와 함께 착하게 지낼 수 있을는지요.

 그림책 하나를 읽으며 부질없는 생각을 한다거나 덧없는 근심을 한다고 느낍니다만, 아이하고 이 그림책을 함께 읽으면서 아이랑 오붓하게 나눌 이야기밭은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예쁜 고양이요, 집에 돈이 되니까 큰 집으로 옮기면 되는 줄거리입니다. 사람 삶도 환하게 드러나지 못하고, 고양이 삶도 또렷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고양이는 어떤 목숨인가요. 사람은 어떤 목숨일까요.

 동생이 태어나는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담는다고 생각해 봅니다. 동생을 마냥 예쁘게만 바라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때와 곳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젖을 찾고, 삼십 분마다 쉬를 누는 갓난쟁이를 바라보며 그저 예쁘게만 쳐다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하루에도 똥을 서너 번씩 누기도 하면서 자그마한 소리에조차 잠들지 못하며 앙앙 우는 아기를 노상 예쁘다고만 들여다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그렇지만, 아이는 갓난쟁이가 되든 다섯 살 아이가 되든 열다섯 살 푸름이가 되든 참으로 사랑스럽습니다. 짓궂은 장난을 치든 어버이 말을 우라지게 안 듣든, 모든 아이는 참으로 사랑스럽습니다. 《에이프릴의 고양이》라는 그림책은 수많은 갈래 숱한 이야기 가운데 ‘참으로 사랑스러운 모습’만 살짝 가려뽑아 아주 사랑스럽게 느끼도록 보여주기‘만’ 하는 그림책일 텐데, 이 그림책에서 보여주지 못하거나 다루지 않는 다른 이야기나 모습을 찾으려 하는 일이 잘못일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 집 아이는 《에이프릴의 고양이》를 두고두고 좋아하면서 다시 꺼내어 들추지는 않습니다. 《바바빠빠》라든지 《까만 크레파스》라든지 《11마리 고양이와 작은 새》라든지 《로타와 자전거》 같은 그림책은 수백 번씩 다시 들추고 또 들여다보며 폭 빠져듭니다. 《에이프릴의 고양이》에 나오는 예쁘장한 그림을 보면서 ‘예뻐’ 하고 말하지만, 그저 예쁠 뿐, 더 뻗지 못하고 더 스미지 못해요.

 예쁜 사람들이 예쁜 삶을 꾸리며 예쁜 사랑을 나눈다 할 텐데, 예쁜 그림결로 예쁜 마음씨를 느끼기도 하지만, 예쁜 삶이야기를 함께 다루지 않을 때에는, 오래지 않아 질리거나 따분해지고 맙니다. 아이도 고양이도 노리개나 장식품이 될 수 없습니다. 모두 한 집에서 살아가는 살붙이가 되면서,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랑스러운 목숨입니다.

― 에이프릴의 고양이 (클레어 터레이 뉴베리 글·그림,김준섭 옮김,시공주니어 펴냄,1998.12.15./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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