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잘 쓰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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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잘 쓰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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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3.0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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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도 반성한 우리말 실태

며칠 전 교사와 공무원의 국어 성취도가 55~65%에 불과할 정도로 우리 국민의 언어생활이 엉망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와 충격을 주었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윤여탁 교수가 국립국어원의 의뢰로 작성한 '교사의 국어능력 실태조사'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8월 전국 초ㆍ중ㆍ고 교사 2천13명의 국어능력을 조사한 결과 평균 점수가 20점 만점에 12.99점으로 집계됐다. 이는 백분율로 환산하면 65%다.

평가 분야별 성취도는 단어 78.2%, 텍스트 66.1%, 문장 61.4%, 맞춤법 60.4% 등이었다.

교사들의 담당 교과별 성취도는 국어 73.6%, 과학 59.48%, 수학 62.37%, 외국어 61.09%, 기타 58.66% 순이었다.

비교집단인 공무원의 국어능력은 55%에 불과해 교사들보다 10% 가량 떨어졌다.

이런 결과는 교육현장의 규범적 언어와 일상 언어가 크게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윤 교수는 "일반인의 성취도는 아마 40% 전후로 훨씬 더 낮을 것"이라며 "교사의 점수가 낮은 것은 교육현장의 규범적 언어와 일상생활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예컨대 띄어쓰기는 국립국어원의 맞춤법 규범과 교과서의 맞춤법, 신문 지면의 맞춤법이 전부 다를 정도"라며 "우리 국민의 언어생활을 체계화할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대왕 초상화

우리 공공언어 외국말과 번역 말투 뒤범벅 

“공공기관 누리집에는 보통 사람이 들어오잖아요. 그런데 전문가나 되어야 제대로 알아듣겠구나 싶은 말이 많아 답답했어요.”


‘한글사랑지원단’으로 문화체육관광부의 공공언어 순화 활동에 참여했던 이은하씨(35·어린이책 작가)의 말이다.

이씨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공공기관의 누리집(홈페이지)을 찾아다니며 말씀씀이(언어사용) 실태를 살폈다.

그는 “우리 공공언어는 외국말과 번역 말투 뒤범벅”이라며 “이를 우리말과 우리 말투로 다듬어 보니 ‘우리말이 정말 쉽고 아름다운 말’임을 새삼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공공기관 누리집 언어는 ‘고객만족서비스를 지향하여 이미지 제고’, ‘세계화를 선도하는 복합멀티플렉스 시티’, ‘웹접근성 강화’, ‘민원FAQ에서 After Service콜’처럼 혼란스럽다.

 

공공기관 누리집 언어를 돌아본 '한글사랑지원단'이 마무리 모임을 갖고 있다.  

‘한글사랑지원단’은 지난해 9월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한글학회가 만든 것으로, ‘공공기관 언어순화’와 ‘우리 말글 분야 새로운 일자리 마련’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안고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전국의 국어전공자와 우리 말글을 다루는 일을 하는 젊은이 50명이 참여해 네 달 동안 공공기관 누리집 500여곳을 돌았다. 지금은 그 결과를 순화보고서로 종합해 각 기관에 보내고 있다고 한다. 2월로 활동을 끝내는 한글사랑지원단은 그동안 어떤 점을 느꼈을까. 국어를 좀 안다는 이들이었지만 “정작 국어는 알아도, 우리말은 너무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지원단 가운데 한국어 교사였던 한 분은 “일본어를 전공해서 평소에 한자에는 자신이 있는 터라 은근히 어려운 말을 골라 쓰곤 했는데, 지원단 활동하면서 내 모습이 공공기관 언어 사용과 같아 부끄러웠다”고 소감을 말했다.

전직 중학교 교사였다는 한 참가자는 “영어만 드높이는 문제를 바로잡는 게 한글사랑인줄 알았다”며, “이 일을 하고 보니 일본식 한자말, 미국식 어법을 우리말에서 덜어내야 하는 등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공공언어는 어린 아이에게 말하듯이 손쉽게 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써야 한다”며 “모두 힘을 모아 찬찬히 공공언어를 바꾸어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원단 실무책임자였던 한글학회 김한빛나리씨는 “국어국문학과 이외에 우리말 사용을 가르치는 학과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며 “한글을 전문으로 깊이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대학이나 대학원 과정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만큼 국어전공자마저도 손쉬운 우리말을 살려 쓰는 게 어려웠다는 얘기다.

살가운 우리말 살려 써야

한글사랑지원단 일꾼 국문학 대학원생인 김건우씨(32)는 공공기관에서 다듬어야할 말 첫째로 ‘-화’와 ‘-적’, 또 ‘국민’을 꼽았다.

김씨는 “세계화, 정보화, 일반화’의 ‘~화’나 ‘국제적, 윤리적, 사무적’의 ~적’은 공공기관에서 참 자주 쓰는 말"이라며, 이처럼 글을 딱딱하게 만드는 말을 덜어내면 좋고, ‘‘국민’ 같은 말도 ‘여러분’으로 바꾸면 훨씬 살갑게 들린다”고 제안했다.

그는 나름대로 ‘인프라’, ‘서비스’, ‘프로젝트’, ‘윈윈-’, ‘-센터’, ‘캠프’ 같은 거리낌 없이 쓰는 영어와, ‘제고’, ‘기재’, ‘정립’, ‘확충’, ‘수록’, ‘실시’, ‘해소’ 등 풀어써도 될 만한 한자말 목록을 정리해 봤는데, 일일이 예로 들기 힘들만큼 많았다고 설명했다.

국어교육과 대학원생이라는 한 참가자는 “‘~관련’이나 ‘~에 대해서’, ‘~의, ~을 위한’, ‘~에 의한’과 같은 어색한 번역투 털어내기가 힘들었다”며 “이것만 주의해도 말이 참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 언어는 쉽게 써야’ 의식 생겨

비록 한글사랑지원단은 넉 달 남짓 만에 500여개의 기관을 돌아봐야 해서 모든 게시판과 민원서식을 훑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공공기관 말은 모두가 쉽게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의식만큼은 일꾼들 마음에 깊이 새길 수 있었다.

공공기관도 여기에 공감했다고 한다. 순화보고서를 이미 건네받은 공공기관들한테 이번 사업을 이끈 한글학회로 고맙다는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실무책임자 김한빛나리씨가 알려줬다.

그는 “오늘은 여성부 산하 여성사 전시관 관장님이 직접 전화해서 내부적으로 고민하던 문제를 짚어줘 고맙다고 했다”며 “전문용어는 어쩔 수 없지만, 7월에 누리집을 개편할 때 참조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번 사업을 총괄한 문화부 국어민족문화과의 김혜주 사무관은 “한글사랑지원단 순화보고서 발송으로 끝내지 않고, 각 기관이 결과를 반영하도록 부처마다 계속 협조를 구할 예정”이라며 “문화부 누리집도 지원단이 제안한 용어로 고치도록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공공기관 누리집 뿐만 아니라 공공장소의 간판, 안내문, 표지 언어를 다듬는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공공언어 순화사업’을 계속해서 벌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글학회에선 한글사랑지원단이 만든 ‘공공기관 누리집 언어순화 보고서’를 이달 말까지 각 부처에 발송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 이후엔 한글학회 누리집(www.hangeul.or.kr)에 전자책으로 덧붙여 놓을 예정이다.

영국에서는 공공기관에서 글을 발표하기 전에, 할머니한테 물어본다고 한다. 할머니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써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우리 공공언어도 좀 더 알기 쉽고, 부드럽게 바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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