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하늘, "별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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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하늘, "별을 보다"
  • 강영희
  • 승인 2011.09.26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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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은 꿈을 꾸는 일, 가르침은 희망을 노래하는 일

오늘(26일) 아침 <경향신문>에서 오는 10월 마지막 토요일 전국에서 인구 20만 미만의 중소도시나 읍-면 공립도서관을 중심으로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청소년을 위한 과학기술강연 행사를 '10월의 하늘'이라는 이름으로 갖는다는 기사를 읽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어디서 하는지는 몰라도 달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 '소년경향'이라는 어린이 잡지에서 여름방학 선물로 끼워주었던,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4계절 밤하늘 별자리 읽기 과학도구'를 들고 첩첩산골 외가집 평상에서 그 도구를 이용해 하늘의 별자리를 찾아내며 가슴 두근거렸던 기억도 떠올랐습니다.

내겐 꿈이 있었습니다. '과학자'.

그게 뭐 하는지도 몰랐지만 어린 나이에 꿈이 뭐냐,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묻는 학생신상정보를 기록하는 종이에 저는 항상 그 단어를 적었습니다. 20권짜리 위인전에서 여자인 내가 꿈꿀 수 있는 위인의 영역은 달랑 헨렌 켈러, 퀴리부인, 나이팅게일, 신사임당, 유관순 밖에 없었습니다.

가난한 탈농촌 가정에서 자녀들이 받을 있는 호기심 자극이란 게 적은 상황에서 학교나 선생님, 책이나 주변 사람들은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나마 가난한 부모가 해줄 수 있었던 게 월부로 책 사주는 일이었고, 저와 동생은 위인전 20권, 전래동화 20권, 그리고 좀 더 크면서 빨간색 하드커버의 삼성세계백과사전이었습니다. 시리즈 속 다양한 이야기들이 정말 놀라운 세계였습니다. 내 기억에 커버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보았었는데, 접하지 못했던 일 중 하나가 과학영역이었던 거  같습니다.

어린나이에 이해하는 수준이 얕고, 딱히 설명해줄 사람도 없다 보니 깊이도 없이 줄거리만 있는 위인전에서 나는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남성 영역으로만 이야기되었던 과학이라는 테두리에서 새로운 영역을 발견해내고 학문적 노력을 통해서 노벨상을 두 번이나 탔다는 과학자 '퀴리 부인'은 상당히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어떠한 것이라도 '자신만의 실력'이 있으면 남녀차별 없이(왜 없었겠습니까마는 아마도 학문이라는 영역이 주는 이점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는 남녀차별을 덜 당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무엇인가를 지속해갈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여성 위인들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이거나 별다른 새로움도 감동도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남성들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역할을 잘해냈다는 것이었는데, 저는 제 인생을 살고 싶지 남자들의 삶을 잘 살게 하는 보조적인 여성의 역할만을 강조한 글들에서 매혹이 없었던 거 같습니다. 그이들의 삶이 그랬다기보다 그이들이 삶을 다루는 방식에서 우리나라 출판업자들(아마 대부분 남자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되는데)이 골라낸 위인과 그 삶을 정리하는 방식이 문제였겠지만 말입니다.

3중고의 장애를 가족과 헌신적인 설리번 선생의 노력으로 '대학교에 갔다(?)'로 끝나는 헬렌켈러 이야기는 3중고의 어려움이 없는 나로서는 마땅히 닮아야 할 게 뭔지 모르겠더군요. 어려움을 가족과 좋은 선생의 도움으로 이겨낸 이야기에서 그이가 왜 위인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이가 그런 어려움을 가진 장애인들과 소수자, 여성들을 위한 교육가로서 평생을 헌신했다는 걸 알았다면 아마 제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는데. 아마도 그이가 사회주의자로 된 게 그 나머지 인생을 전달할 수 없었던 이유였던거지요. 그러니 반쪽짜리 전기가 된 거고 당연히 감동이 전해지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역사가 거짓 없이 기록되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전장에서 흰 옷 입은 천사'는 간호사인데, 그 헌신성은 우리 엄마들의 그것에 비해 특별할 것도 없어 보였습니다. 내가 전쟁터에 나갈 일도 없는데 닮아야 할 이유도 잘 모르겠고, 그냥 그이가 다친 병사를 적군이던 아군이던 상관 없이 고쳐줬다는 게 좀 기억에 남기는 했지만- 마치 2차 대전 당시 잠시 있었다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처럼 평화의 소중함을 알려줬지요- 우리 동양인 정서에서 자신이 군인이 아닌 이상 다친 사람을 고쳐주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있어서 딱히 헌신적인 심성이 너무 부담스럽게 느꼈던 탓에 모델을 삼기 어려웠습니다. 여전히 병을 고쳐주는 '의사'보다 따뜻한 미소로 병을 고쳐주는 '간호사'가 많은 여자아이들의 꿈으로 되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모양처 신사임당' 전기에서 그이가 똑똑했고 글과 그림에 능했고, 위대한 학자의 어머니였다는 사실만 가지고는 내가 왜 그렇게 살아야 할지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모든 어머니들이 자식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인데, 그이가 좀 똑똑하다는 것, 아들을 잘나게 만든 어머니 모습도 잘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자식만 잘 키우면 위대한 어머니, 내가 따라야 할 여성의 모습인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구요. 요즘 드는 생각은 한때 과도한, 그리고 엇나간 교육열에서 어머니들 역할이 좀 떠오르긴 합니다. 그 많은 어머니들과 딱히 다른 것도 모르겠고, 결론은 역시 그런 어머니가 되는 게 부담스러워서 포기했지요.

유관순은 어린 나이에 용기가 가상해 보였지만 불로 지지는 고문 같은 것을 보며 그것을 참아내며 할 일이 마땅히 있지도 않을 텐데 무섭고 소름끼쳐 고문을 감당하는 일도, 그리고 다시 만세운동을 할 일도 없을 거라 역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모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이 스스로 주민들에게 위험을 감수하고 3.1독립만세운동을 조직하고, 설득하고, 진행하며 끔찍한 고문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꺽지 않았던 모습을 보면 민주화운동을 해온 많은 운동권 인사들의 고난과 역경의 모델이 되었다는 생각, 남성들 사회에서 보조적인 삶이 아니라 여성이라도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가라는 감동이 남달랐지요.

사람들이 만든 빛이 너무 많아 하늘의 별을 거의 볼 수 없게 된 요즘, 가끔 떠나는 여행에서 별자리를 찾고, 가끔 뉴스에서 들려오는 빅뱅이니 성운이니 새로운 별의 이야기 블랙홀…. 이런 것들을 들으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꿈을 꾸듯 행복해집니다.

<장래희망>란에 적은 내 꿈 '과학자'에 대해 조언과 격려를, 지지와 도움을 줬던 설리번 같은 헌신적인 교사가 있있다면 나는 별의 과학자가 되어 세상의 탄생을 공부하며, 하늘을 보며 별과 우주 속 세상을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사람이 되어 스스로도 즐겁고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한 아침이었습니다.

나는, 아니 우리는 이제 꿈 꿀 수 없었던,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 그리고 내일 모레면 만 두 살이 되는 조카가 있는데요, 그런 나로서는 그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는 이 나라 어린이와 청소년들, 청년들이 스스로 다양한 꿈을 꿀 수 있도록 - 아, 이런 식상하고 유치한 말을 내가 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 책을 쓰는 분들도, 글을 옮기는 분들도, 그 길을 가고 있는 분들도, 그것을 가르치는 분들도, 자기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꿈이 되고, 내일이 되고, 때론 절망과 원망이 되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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