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동권 보장'은 허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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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동권 보장'은 허울뿐
  • 이혜정
  • 승인 2011.10.10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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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이 겪는 불편 너무 커 … 실질적 제도 이행 필요


'420 장애인 차별 철폐 인천공동투쟁단'이 얼마 전 인천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외치고 있다.

취재 : 이혜정 기자

남동구 만수동에 사는 지체장애인 1급 정모(35)씨에게 출근길은 두렵기만 하다. 전동휠체어를 타는 그에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불편하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저상버스를 이용해야 하는 정씨는 매일 만수동에서 회사까지 출근하려면 2~3시간 걸린다. 일반버스에 턱없이 부족한 저상버스 탓에 그는 아침마다 정류장에서 발을 동동 굴려야 한다.

"회사에 9시까지 출근시간에 가려면 5시쯤 일어나서 준비하고 7시 반쯤에는 나와야 해요. 일반버스 4~5대 지날 때 저상버스는 한 대 정도 오기 때문에 보통 30분 이상 기다려야 해요. 그마저도 저상버스에 비장애인들이 타고 있으면 그냥 지나가는 기사들도 많아요. 그러다 보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을 하려면 2시간 가량 걸려요." 정씨의 호소다.

얼마 전 그는 황당한 일을 당했다. 출근하려고 버스정류장에 서 있었다. 저상버스가 정류장에 서자 출근길에 나선 사람들이 버스를 탔다. 그리고 정씨가 버스에 오르려고 하자 버스기사는 '출근시간이라 바쁘니 다음 차 타요'라며 문을  닫고 떠났다. 그 다음 저상버스는 정씨가 손을 흔들었음에도 그냥 지나갔다. 저상버스 두 대가 지나가고 나서야 그는 세번 째 도착한 저상버스를 타고 출근길에 나서야 했다. 

"휠체어를 타다 보니 버스에 오르고, 저상버스 내 휠체어 고정 공간에 올라가서 장착하는 데도 시간이 걸려 저상버스 기사들이 모른체 하면서 지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버스에 타도 다른 이용객들보다 탑승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짜증의 눈초리로 흘겨보거나 대놓고 성질을 내는 사람들도 있지요."

하루 평균 1시간 이상 정류장에서 발이 묶이는 그에게 매일 출-퇴근길 때문에 겪는 스트레스는 이만저만 아니다.

또 다른 지체장애인 1급인 김모(42,여)씨는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는 데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 매일 인근 복지관에 운동을 하러 가는 김씨는 보통 주 4일 정도 콜택시를 이용한다. 연수동에서 인근 복지관까지는 20분 가량 걸린다. 그러나 복지관에 가려면 평소 1시간 이상 걸리기 일쑤다.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김씨에게는 콜택시가 아니면 이동하기 어렵다.

"콜택시를 이용하기 매우 불편해요. 복지관에 운동을 하러 콜택시를 부르면 1시간은 기본이고, 갑자기 일이 생겨서 전화를 하면 대기시간이 길어서 약속시간에 늦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늦은 시각에 콜택시를 이용한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에요."

얼마 전 김씨는 복지관을 함께 이용하는 친구 생일을 맞아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콜택시를 부른지 2시간이 지난 오후10시에서야 음식점에 앞에 도착했다. 

"저녁식사가 끝나기 전 8시쯤 전화를 미리 했는데도 2시간 가량 기다렸어요. 함께 기다려준 친구들에게 얼마나 미안하던지…. 제발 이용하고 싶은 시간에 편리하게 이용했으면 좋겠어요. 늦은 시각에 외출을 하려면 사람 만나는 시간보다 콜택시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니 정말 짜증이 나 미치겠어요."

그는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 보통 오후에 개인적인 활동을 하려고 해도 콜택시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 웬만하면 늦은 시각에 외출을 피한다고 했다.


이처럼 저상버스나 콜택시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진정한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장애인이동권이란 장애인이 사회 전분야에서 기회의 균등과 적극적 사회 참여를 목적으로 교육, 노동, 문화 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근본적인 권리 중 물리적 장벽을 없애는 것, 교통시설 이용 등에서 제약을 받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특히 대중교통 시설에서 발생하는 열악한 장애인이동권 문제는 한 인간이 그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격을 박탈하는 거라고 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설명한다.

따라서 장애인이동권은 교통시설의 물리적 제약을 극복하는 일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장애인 대부분은 여전히 큰 불편을 느낀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더구나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지체장애인의 경우 저상버스와 장애인 콜택시 등이 매우 필요한데도 너무 미흡해 이동권 침해 고통은 이룰 말할 수 없다.

지체장애인협회시설 인천지원센터에 따르면 실제로 지체 장애인들이 저상버스를 이용할 때 30~40분 기다리는 겻은 보통이고, 콜택시를 이용할 때는 1시간~2시간 기다려야 한다.

유기석 팀장은 "인천시에서 장애인들이 대중교통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2013년까지 시내버스 중 50%를 저상버스로 교체하고, 콜택시 대수도 늘리는 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수요만큼 공급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특히 저상버스를 이용하려는 휠체어 장애인들의 경우 '왜 탔냐'는 눈총을 받거나 욕을 먹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센터에서 저상버스 이용 시 차량 경사도와 보도경계 턱 수치를 재보니 맞지 않아 지체장애인들이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다"면서 "인천시가 장애인 입장을 고려한 정책으로 장애인이동권을 위해 좀더 신경을 써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인천시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에 관한 조례에 의해 저상버스 도입을 내년에 26대 증차할 계획이다. 또 저상버스 구입비와 운영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저상버스 이용률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도 업체들이 저상버스 도입을 기피하고 있다는 게 인천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장애인 콜택시의 경우는 지난 2006년 제도가 실행된 이래 매년 20대씩 증차했다. 2009년에는 최대 24대 증가했고, 올해는 18대의 콜택시를 늘려 현재 총 122대가 운행되고 있다.

여현숙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국장은 "이동성이 취약한 계층을 위해 마련된 저상버스, 장애인콜택시 등의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필요한 이들이 이용하기에 어려움이 크다"면서 "이동이 불편한 지체장애인들은 뒷전에 밀려 이용을 하지 못하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그는 "저상버스의 경우 발판과 도로 높이가 맞지 않아 이용하는 장애인들의 어려움이 많을 뿐만 아니라 기사들의 인식 부재로 승차거부를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승차거부를 하지 않더라도 발판 작동과 탑승 후 설치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운전기사들이 대부분이어서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누리기에는 아직 너무 미흡하다"라고 말했다.

여 사무국장은 "인천시에서는 차량 대수를 늘리기만 할 뿐 이동성이 불편한 장애인들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제도가 잘 이행될 수 있도록 제도 내면의 문제를 꼼꼼히 살피는 노력과 함께 감시감독이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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