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찾은 세월호 유가족, “우리 얘기 들어준다면 어디든 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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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찾은 세월호 유가족, “우리 얘기 들어준다면 어디든 갈 것”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10.27 0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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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 (좌로부터) 사회자 지창영, (단원고 희생자) 창현 예은 주현 어머니


지난 24일 오후7시 부평구청 중회의실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하는 인천시민 간담회'가 열렸다. 안산 단원고의 창현, 예은, 주현 어머니가 참석해 그간 언론에서 듣지 못한 이야기와 현재의 심정 등을 전했다.

“남은 생애,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처음에는 사고인 줄 알았지만 진실에 접근하면 할수록 사고가 아닌 사건이라는 걸 알았어요. 진실을 알고 싶어요.”(창현 어머니)

“우리가 최소한으로 요구한 수사권, 기소권이 관철되지 않고 유야무야되는 게 안타깝습니다. 스르르 눈 녹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우리의 바람이 관철되지 않고 있어요. 광화문, 국회를 가 봐도 국민과 우리를 분리시키려고 하는 움직임이 보여요. 우리에게는 이렇게 함께 해주는 마음이 너무 소중합니다.”(주현 어머니)

예은 어머니 박은희 씨의 이야기는 길었다. 낮에 광화문에서 노란 추모물결 속에 있는 검은 리본을 떼고 있는데 어떤 어르신이 와서 “제발 그만해라. 처음에는 불쌍했지만 지금은 지겹다. 당신들이 이 공원 전세 냈냐?”고 하더란다. 그때 “어쩌면 대다수의 국민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저희가 오늘 이 자리에 왔지만 현재 유가족의 10%만 활동해요. 나머지 90%는 회의가 있을 때만 나와요. “무서워서” 활동하지 않는 거다“고 전했다.

“제가 전도사인데 하나님 앞에서는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이따금 밤이 되면 이대로 죽어 아이에게 갔으면 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광화문에서처럼) 모진 말을 들으면 더욱 더 각오를 다지게 됩니다.”

“4월 16일에 현장에 있었어요. 거기에는 대책도 상황실도 없었어요. 진도체육관에 있는 부모들이 팽목항에 가지도 못하게 했어요. 체육관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이 너무 적어서 놀랐어요. 그리고 더 이상 아이들은 오지 않았죠. “애들이 다 어디 갔지?” 이상한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못 가게 했지만 체육관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팽목항에 가보니 119 구조대 2대뿐이더라고요. 그 넓은 주차장이 텅 비어있고, 119 2대뿐. 보면 안 될 걸 본 느낌이었어요. 체육관에서 본 뉴스에서는 수십 수백 척의 배와 헬기가 떠다니고 있었거든요. 마치 전시상황처럼. 낮에 찍은 걸 왜 밤에도 계속 보여주지? 그랬었죠. 알고 보니 그 영상도 사실이 아니었어요.“

“진도에서 팽목항까지 40분, 팽목항에서 맹골수도까지 빨리 가면 50분 정도 걸려요. 부모들이 돈을 모아서 세월호가 있는 맹골수도에 갔어요. 해경정이 한두 대 있었는데 구조작업은 안 하고 있더라고요. 그때 같이 간 기자들에게 신신당부했습니다. 꼭 좀 기사로 써달라고요. 기사는 나오지 않았어요. 따져 물었지만 아무 말이 없었죠. 나중에 그 기자가 와서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위에서 쓰지 못하게 막았다”고요. 핸드폰 통화내용이 지워지고 우리가 하지 않은 말들이 떠돌기 시작했어요. 저희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마치 유가족인 것처럼 그곳에 머물며 우리 이야기를 채증하고 녹음했던 거죠. 카카오톡 감시는 그때부터 시작된 거예요.“

“다음 주면 재판이 끝납니다. 오늘도 재판을 보고 왔지만 재판 과정에서는 이런 얘기가 거론되지 않아요. 재판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그때 해경정이 한 대, 헬기가 두 대 있었다고 해요. 해경정에는 14명이 타고 있었는데 그 중 구조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었어요. 헬기에는 항공구조자만 있었구요. 해상 구조자는 없었죠. 제대로 구조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거예요. 배가 기운 건 사고예요, 하지만 사람들을 구하지 않은 건 사건입니다. 그날 아이들이 찍은 사진을 보면 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했어요. 유조선 하나만 옆에 붙였더라도 거기 있는 사람들 모두를 태울 수 있었을 거예요. 왜 구할 수 없었는지 궁금해요. 선원은 죄가 없다며 해경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고 해경은 선원 핑계를 대며 책임을 넘겨요. 정부는 뒷짐 지고 있고요. 해경, 언론, 정부, 정치인, 이동통신사 등 연류 기관이나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특별법이 필요합니다.”

“‘합의’는 말뿐이에요. 만들어보자고 합의했다, 그게 끝이죠. 법이 만들어진 건 아니에요. 정부와 정치인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은 국민입니다. 이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가요, 주인이라면 함께 두 눈 부릅뜨고 이 일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지켜봐주세요. 주인이 아니라고, 국민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 주세요. 이런 참사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소수를 위한 나라가 아니라 국민 모두를 품을 수 있는 나라가 돼야 해요. 조금만 더 힘을 내고, 깨어있길 부탁드립니다.”(예은 어머니)

참석자 중 한 명이 법을 만들면 진상규명이 행해질 거라고 믿느냐고 물었다. 유가족은 “이런 질문 많이 받았다”고 운을 뗀 뒤 “조사에서 끝낼 수만은 없다. 책임 있는 사람을 법정까지 세우자는 거다. 검사가 기소하지 않으면, 판사가 죄가 없다고 하면 벌 받지 못한다. 하지만 법정까지는 책임을 느끼며 오지 않을까. 잘못에 대한 벌도 받아야 다시는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지 않을까”라고 대답했다.

유가족들은 시종일관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보고 있었다.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할 때도 시선은 아래를 향해 있었다. 더 이상 흘릴 눈물도 없을 것 같았지만 아이의 이름표를 목에 걸고 온 주현 어머니는 또 다시 눈물을 훔쳤다.

이날 간담회는 오후 7시, 실명 현수막을 인천 곳곳에 걸며 세월호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이만재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 부지부장의 그동안의 활동, 인천활동 영상 감상, 준비자들의 간단한 인사말로 시작했다. 사회를 맡은 지창영(시인, 번역가)씨는 방명록에 이름을 적은 참관자 한 명 한 명을 호명하며 감사를 건넸다.

당일 열린 재판에 참관했다가 예정 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유가족들이 7시 40분쯤 도착하자 본격적인 간담회가 진행됐다. 유가족들은 “이런 자리가 있으면 어디든 갈 것”이라며 자리를 마련해준 데 감사를 표했다. 간담회는 유가족들의 마음을 듣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이후 30여분간 질의응답이 이어졌으며 예상 시간보다 늦은 10시쯤 마무리됐다.

간담회에는 100여명 남짓한 인천시민들이 찾았으며 유가족들의 사실과 진심에 대한 언급에 곳곳에서 놀라움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감정을 참지 못해 흐느끼는 시민도 적지 않았다.

유가족은 ‘노란리본’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뜻이 더 크다고 어필했다. “누군가 물으면 끝까지 챙겨보겠다는 증표라고 얘기해 주세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억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해주세요.”

유가족들은 또 “이 일이 잘 마무리되면 그동안 도와준 분들에 대한, 또 국민에 대한 답례로 우리처럼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도우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힘든 자리에서 어려운 이야기를 해준 유가족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참석자들은 간담회가 끝난 뒤 모두 일어서서 박수를 치며 동감과 지지를 표명했다.

한편, 지난 25일 토요일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촛불 문화제’가 열렸다. 약 700여명이 참가해 ‘성역없는 진상규명’, ‘특별법을 제정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오후 9시경 문화제 종료 후 참가자들이 청와대 행진을 시도하다 경찰과 대치, 이 과정에서 물리력을 행사했다며 남성 2명이 연행되기도 했다.

세월호 대책회의와 가족대책위 등 시민단체들은 참사 발생 200일인 11월 1일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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