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의 부모가 된다는 것, 그 무거운 삶 위에 피어난 뜻밖의 웃음과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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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의 부모가 된다는 것, 그 무거운 삶 위에 피어난 뜻밖의 웃음과 행복
  • 홍지애
  • 승인 2018.05.26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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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가위바위보를 좋아하는 스물두 살 태훈이』/ 박상미



작년 겨울, 친구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부평의 작은 독립서점에서 열리는 전시회 소식이었다. 당시 여러 개인적인 일들로 매우 고단한 상태였음에도, 전시회 포스터가 눈에 아른거려 도무지 집에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스스로도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열정으로 부평 전시장을 향했고, 그곳에서 태훈이와 그의 어머니, 박상미 작가를 만나게 됐다. 그리고 그날, 바로 그 자리에서 박상미 작가의 그림과 글을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우울한 주제인데 계속 웃음이 새어 나오고,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사연을 모르면서도 뭉클하고, 나는 저들과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같이 행복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들과 감정을 전시회를 다녀간 사람들만의 것으로 두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좋은 것을 나만 볼 수 없지!’ 하는 꽤 착한 마음과 이 좋은 것을 ‘꿈꾸는 인생’의 첫 책에 담아내고 싶다는 꽤 이기적인 마음에서 시작된 일이다.



<저자 개인전 포스터>


이 책은, 가위바위보를 좋아하는 자폐 청년 태훈이의 이야기인 동시에 오늘도 그와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다.

결혼과 함께 시작된 자녀를 향한 여러 가지 꿈은 아이의 장애판정과 함께 사라졌고, 어머니는 매일매일 새롭게 차오르는 절망과 슬픔을 애써 누르며 하루는 아이를 원망하고, 또 하루는 신을 원망했다. 하지만 이렇게 원망만 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지긋지긋한 고통을 끊기 위해선 변화가 필요했고, 그건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아들에 대한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것이었다. 그 결단으로부터 모든 것이 새로워지기 시작했다.

눈여겨볼 것은, 변화를 위한 결단을 시작으로 마침내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주위 사람들의 도움 때문이라는 저자의 말이다. 기꺼이 눈물 가득한 삶에 들어와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걸어 준 고마운 사람들. 저자는 그들이 있었기에 외롭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함께 걷는 이가 있다고 해도 장애가 비장애로 바뀌는 기적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너 때문이야’라는 원망이 ‘고맙고 사랑해’라는 고백이 되었고, 전쟁터 같던 하루하루가 봄날의 꽃길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스물두 살이 된 아들은,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 주는 매너남이 되었다.

‘자폐 자녀를 키우는’이라는 표현이 무안할 만큼, 저자의 그림과 글은 무척 유쾌하다. 아들의 엉뚱한 말과 행동이 이처럼 개그 요소가 될 수 있는 건, 아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고 소중하게 여기는 엄마의 마음 때문일 것이다. 어떤 표정을 지어도, 무슨 말을 해도 웃음이 나는 건 사랑으로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전시회장에서 태훈이>                           <책 134쪽>


아들의 서툰 말 한마디 한마디를 이토록 유쾌하게 바라보는 저자의 모습에서 사랑받음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된다. 그 깨달음이 주는 위로가 참 커서 저자의 글과 그림을 하나의 책으로 엮는 작업이 행복했다. 이 위로와 행복이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부디 전해졌으면 한다. 더불어 장애로 인해 외롭고 슬픈 누군가에게 이 책을 펼쳐 든 모든 이들이 좋은 벗이 되어 주길 바란다.        
   
 홍지애   ‘꿈꾸는 인생’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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