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프레지던트, 실수(mis)가 되어버린 신화(My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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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프레지던트, 실수(mis)가 되어버린 신화(Myth)
  • 송수연
  • 승인 2017.11.01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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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미스 프레지던트 / 김재환 감독

 ‘송수연의 영화 읽기’는 남구의 예술영화관 ‘영화공간주안’과 송수연 평론가의 협약하에 <인천in>에 개봉영화를 리뷰하는 기획입니다. 매월 ‘영화공간주안’이 상영하는 예술영화의 예술적 가치 및 의미를 되새기며, 특히 영화와 아동청소년 문학의 접점을 독자와 함께 읽고자 합니다.







보통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보는 편이다. 감독과 배우가 누구인지 정도만 확인하고 내용은 모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선입견을 만들지 않고 재미도 놓치지 않으려 하다 보니 생긴 습관 같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가끔은 놓치고 후회하는 영화도 생겨서 다큐나 독립영화들은 짧은 ‘감독의 변’ 같은 것들을 확인하기도 한다. <미스 프레지던트>가 그런 과정을 거쳐서 본 영화였다. 그러니까 나는 이 영화를 보고 평소에 내가 이해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이른 새벽 청주, 할아버지 한 분이 의관을 정제한다. 과정 하나 손길 하나가 정성이다. 의관정제를 마친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사진과 위패 앞에서 4배를 올린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위해 애쓴, 임금 같은 대통령’이니 4배를 올린다는 설명이 조곤조곤 따라붙는다. 울산의 한 부부는 육영수 여사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받으신 것 마냥, 남편을 대신해서 죽은 육영수 여사’의 사진이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 안에 빼곡하다. 부인의 지갑 안에, 남편 지갑의 팬던트에 자리한 육영수와 박정희의 사진은 박정희 일가가 이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준다.

김재환 감독은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박정희라는 신화(Myth) 속에서 살게 되었는지, 그들을 이해해보자는 뜻에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감독의 의도에 십분 공감한다. 그리고 소위 ‘촛불’과 ‘태극기’로 이분되는 기묘한 세대 간 갈등의 심각성을 걱정하며, 이것이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런 의도로 만들었다는 영화를 보면서 나는 태극기 어르신들을 마음 깊이 이해하는 데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온 국민의 배고픔을 해결해준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이렇게 못살았을 텐데” 등으로 반복 변주되는, ‘배고픈 설움을 해결한 새마을 운동의 신화’는 이미 지난 세대의 유물이 아닌가. 그렇다면 영화가 천착했어야 할 지점은 현재를 과거처럼 살고 있는 그들의 유령 같은 모습이 아니라 ‘과거의 신화가 어떻게 지금 이곳의 광장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가’라는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와 관련해 영화를 보면서 깊게 탄식한 장면이 있다. <미스 프레지던트>에서 내가 감독의 의도를 만난 지점은 영화가 집중 조명한 ‘평범한’ 세 사람이 아닌, 태극기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단상에 선 한 인물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국가의 보루입니다!” 저 말은 조국 근대화와 새마을 운동으로 대변되는 박정희 신화가, 약 반세기 전 이미 유령이 되어버린 신화가 어떻게 오늘 이곳에까지 연결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어르신들은 박정희와 함께 조국 근대화에 투신한 대한민국의 역군(役軍)이었다. 그러나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그들은 흐르는 시간에 떠밀려 아무도 찾지 않는 뒷방 노인네가 되어버렸다. 아무도 그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아무도 그들의 지혜를 묻지 않았다. 고독 속에서 서서히 말라가던 그들을 저 목소리가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게 한 것이다. 다시 한 번 조국을, 이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는 주인공이 될 수 만 있다면.

처음 태극기 집회가 열린다고 했을 때 촛불시위대나 그것에 동조하던 사람들은 그분들이 돈을 받고 나왔을 것이라고, 인원도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태극기 집회 참가자는 점점 많아졌고 서울과 전국을 누비며 오열하고 부르짖는 그분들을 보며 촛불 시위대는 아연할 수 밖에 없었다. 왜 저렇게까지… 그런데 입장을 바꿔 태극기 쪽에서 촛불을 보면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살인을 했나, 나라를 팔았나,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렇게까지…’? 우리는 어리석었고 착각했으며, 무지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렇게 속고 속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헌재에서 결정되던 날, 지역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어르신들을 보고 나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답답했고, 억울했으며, 끝내 체하고 말았다. 극장을 나와서도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마음이 무겁다. 40여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박정희의 위패 앞에서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했다던 조육형 할아버지에게 우리는 국민이 아닌 시민으로 살 수 있는 길이 있음을 말해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우리는 그의 이름을 저토록 크고 분명하게 불러준 적은 없지 않은가. 우리는 그에게 목소리를 주고 설 수 있는 장소를 주지 않았다. 광장에 선다는 것은, 자신의 목소리와 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며, 이는 사람이 된다는 것에 다름 아닌데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 그들의 이름과 목소리와 장소를 없는 것 취급하지 않았는지. 우리의 무관심이 반세기 전의 유령을 다시 광장에 출몰하게 한 것은 아닌지. 미스(신화Myth, 그리움,아가씨miss, 실수mis)의 돌림노래, 미스 프레지던트를 만든 것은 어쩌면 우리 자신인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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