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로 배울 때에는 알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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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 배울 때에는 알 수 없어요
  • 최종규
  • 승인 2011.09.20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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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 좋다] 히로노 다카코·사토우치 아이, 《비 오는 날 또 만나자》

 아이가 달립니다. 네 살 아이가 언덕길을 달립니다. 두 살일 적에는 언덕길을 걸어 오르지 못해 안아 달라 하거나 업어 달라 했고, 세 살적에는 힘겨이 걸어서 오르던 언덕길입니다. 네 살 아이로 살아가며 언덕길을 기운차게 달음바질로 올라갑니다. 아이는 언덕길 하나쯤 달음박질로 올라도 지치지 않습니다. 거꾸로 달음박질을 하며 내려가더니 또 달음박질로 올라옵니다. 신나게 달리고 신나게 노래하며 신나게 발을 구릅니다.

 아이라면 달리기를 좋아한달 수 있습니다. 아이라면 누구나 마음껏 달리려 한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 모르겠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웬만해서는 신나게 마음껏 달리기를 하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나는 어릴 적에 으레 달렸습니다. 심부름을 받아도 손에 종이돈과 쇠돈을 꼭 쥐고 달리기를 했습니다. 나도 달리고 내 동무들도 달립니다. 사내도 달리고 가시내도 달립니다. 바지를 입어도 달리고 치마를 입어도 달립니다. 혼자서도 달리고 함께여도 달립니다. 둘이서 나란히 달리고 셋이서 활짝 웃으며 달립니다.

 1등이 되려고 달리지 않습니다. 그저 달리지 않고는 배기지 못합니다. 달려야 성이 풀립니다. 달릴 때에 마음이 부풀고, 달리면서 가슴이 뻥 뚫립니다.

 어린 날 우리 집에는 자가용이 없었습니다. 어린 날 내 동무 가운데 자가용 있는 집은 거의 없었습니다. 누구나 걷습니다. 누구나 버스를 얻어 탑니다.

 오늘날 우리 집에는 자가용이 없습니다.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 집에는 자가용을 모시지 않습니다. 자가용을 딱히 좋아하지 않고, 자가용이 굳이 있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으며, 자가용을 굴릴 돈이 없습니다.

 짐이 아주 많아도 어깨에 짊어지고 손가방으로 듭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아이를 가슴에 안고 다닙니다. 정 힘들면 택시를 부릅니다. 첫째 아이하고 읍내에 장마당 마실을 다닐 적에는 자전거를 몹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집에 자가용을 굴리는 아이들은 달음박질을 잘 안 합니다. 애써 달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달리기는 두 다리를 튼튼하게 다스리는 집안 아이들이 좋아하는 삶이라고 느낍니다.


.. 나무와 풀잎 그리고 땅에 내리는 빗방울 소리는 아주 조용합니다. 땅은 빗물을 한껏 들이마시고 있습니다. 나뭇잎도 풀도 비를 흠뻑 받아 반짝반짝 윤이 납니다 ..  (4쪽)


 숲속 나무를 바라봅니다. 한여름 푸른 잎사귀를 마음껏 뽐내는 나무들을 바라봅니다. 칠월에 이어 팔월에도 햇볕 구경을 거의 할 수 없는 이 끔찍한 나라에서 햇살을 포근히 담으며 푸른 기운을 나누어야 할 나무들이 햇님 얼굴을 구경조차 못하는 슬픈 모습을 온몸으로 느끼며 바라봅니다.

 해는 어디에 숨었을까요. 해는 왜 이렇게 두 달째 숨어야 할까요.

 모든 일에는 뜻이 있습니다. 뜻이 없이 이루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비가 올 만하니까 비가 옵니다. 둑이 무너질 만하니까 둑이 무너집니다. 가물 만하니까 가물고, 장마가 올 만하니까 장마가 옵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이제 이 나라는 빗줄기가 마구 퍼부을 만큼 되지 않고서는 사람들이 숨쉴 바람이 깨끗해지지 않기 때문에 비가 날마다 끝없이 퍼붓지 않나 하고 생각합니다. 날마다 몇 차례씩 비가 퍼부어야 그나마 숨쉴 만한 바람이 흐르니까 비가 퍼부어야 하나 하고 생각합니다.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자력발전소가 터진 만큼, 이 방사능까지 하루 빨리 씻어 주려고 이토록 비가 모질게 퍼붓는지 모릅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아니더라도 한국사람 누구나 자가용을 한두 대쯤 장만해서 날마다 아주 오래오래 모니까, 이 자가용마다 내뿜는 배기가스를 씻으려고 비가 끔찍하달 만큼 퍼붓는지 모릅니다. 햇살을 머금는 숲속 푸르디푸른 나무들만으로는 이제 어찌할 수 없기 때문에, 지저분해지고 만 바람은 풀잎과 나뭇잎으로는 되살릴 수 없기 때문에, 지구별을 움직이는 자연힘은 모질디모진 막비를 베풀지 않느냐 하고 생각합니다.


.. 또 다른 연못 속을 들여다보니 이곳은 온통 올챙이 세상이랍니다. 부레옥잠이라는 수초가 꼭 배같이 불럭 떠 있는데, 그 잎에 개구리가 ‘폴짝폴짝’ 올라 앉습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조그만할까? “어머머, 이것 좀 봐. 꼬리가 나 있네.” ..  (12쪽)


 비가 들이붓고 난 다음에는 그럭저럭 맑디맑은 파란 빛깔 하늘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아무리 비가 들이붓고 난 다음이더라도 이듬날 맑디맑은 파란 빛깔 하늘을 좀처럼 올려다보지 못합니다. 일본에서 원자력발전소가 터지지 않았더라도 한국땅 자가용이 너무나 많을 뿐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멧줄기를 허물고 물줄기를 메우는 못난 막개발을 수없이 벌입니다. 여느 사람들은 그저 돈을 버는 일터에 목을 매답니다. 돈을 벌어야 살림을 꾸린다지만, 벌어들인 돈을 다 쓰지도 못하면서 돈을 더 벌고 부동산을 더 늘리는 사람이 몹시 많습니다. 다달이 버는 돈으로는 살림 꾸리기 벅찬 사람도 많습니다만, 하루에 버는 돈만으로도 어찌 다 쓸 길이 없는 사람 또한 참 많습니다. 축구선수 박지성 님이 하루에 버는 돈을 한 해에 걸쳐 다 쓰기는 쓸는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아이를 낳아 살아가든 아이 없이 살아가든 홀로 살림을 일구며 살아가든, 사람들이 저마다 할 일은 돈벌이가 아닙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이럭저럭 먹고살자면 오늘날에는 돈푼을 어느 만큼 벌기는 벌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돈푼 벌기에만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내 삶을 사랑할 만한 일을 해야 합니다. 내 삶을 돌볼 만한 일거리를 느껴야 합니다. 내 마음을 가꾸면서 내 이웃을 괴롭히지 않을 일자리를 헤아려야 합니다.

 무기 만드는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삶이 보람찰 수 없습니다. 자가용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꾼이 되는 삶이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아이패드이든 무어이든, 이런 새로운 전자제품을 만드는 공장 노동자 삶이 얼마나 즐거울까요. 이런 전자제품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아이들한테 대단히 나쁘기에 아이들이 이런 전자제품을 아예 만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신문글이 대문짝만하게 실리기까지 합니다만, 아이들한테 전자파가 나쁘면 어른한테도 전자파가 나쁠 텐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이 나라 어른들은 무엇이 참이고 거짓이며 삶이고 죽음인가를 깨달으려 하지 않습니다.


..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그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기다렸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꽥꽥 꽥꽥’ 다시 소리를 내며 개구리 한 마리가 울기 시작하고 ‘꽤꽤 꽥 꽤꽤 꽥’ 또 다른 개구리가 울더니 차례로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들려와서 마침내 대합창이 되었습니다 ..  (23쪽)


 히로노 다카코 님이 그림을 그리고, 사토우치 아이 님이 글을 쓴 그림책 《비 오는 날 또 만나자》(한림출판사,2001)를 읽습니다. 비가 오는 날 어린 가시내 하나가 빨간 빛깔 비옷을 입고 바알간 긴신을 신으며 집안 마당부터 집 둘레 논밭까지 마실을 나와 조그마한 이웃 목숨들하고 인사하는 이야기를 담은 어여쁜 그림책을 읽습니다.

 아이는 개구리를 보고 두꺼비를 보며 올챙이를 봅니다. 미꾸라지를 보고 작은 새를 보며 나비를 봅니다. 애벌레하고 만나며 빗방울 내려앉은 수국을 들여다봅니다.

 아이는 머리로 배우지 않습니다. 아이 곁에서 아이한테 머리에 외우라며 가르치는 어른은 없습니다. 아이는 마냥 즐거이 동무들을 만납니다. 아이는 하냥 기쁘게 이웃들을 사귑니다. 아이한테 잠자리가 동무입니다. 아이한테 풀벌레가 이웃입니다. 아이한테 작은 꽃망울이 동무이고, 아이한테 우람한 푸른나무가 이웃입니다.

 비가 오는 날이니 비가 오는 날에 살가이 사귀며 함께 노는 동무를 만납니다. 비가 오는 냘인 만큼 함께 비를 맞으며 이 비를 기쁘게 누릴 이웃하고 어깨동무합니다. 《비 오는 날 또 만나요》를 읽을 아이들은 이 그림책에 나오는 목숨붙이 이름을 잘 몰라도 됩니다. 그예 모두 곱고 고마우며 고즈넉한 삶인 줄 느낄 수 있으면 됩니다.

― 비 오는 날 또 만나자 (히로노 다카코 그림,사토우치 아이 글,고광미 옮김,한림출판사 펴냄,2001.8.30./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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