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가장들 "살기 정말 힘들어"
상태바
비정규직 가장들 "살기 정말 힘들어"
  • 이혜정
  • 승인 2011.10.20 1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마저 잘릴까봐 전전긍긍 - 투 잡(Two Job)으로 대리운전 선호


취재 : 이혜정 기자

"사는 게 전쟁 같아요. 간신히 취업한 비정규직마저 잘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고군분투하는 게 일과예요.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나가기라는 말이 맞는 거 같네요." 

저임금과 고용불안 등 불안정한 일자리로 살아가는 이들은 하루하루를 버티기 힘들다. 전국적으로 880만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특히 부양가족을 둔 40~50대 비정규직 가장들은 더 어렵다.

비정규직은 직장인이라기보다는 '아르바이트 인생'이라는 자격지심에 휩싸이기 일쑤다. 가장으로서 자괴감도 느낀다. 얼마 안 되는 수입을 위해 '투 잡(Two Job)' 또는 '쓰리 잡(Three Job)'을 뛰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인천 남동공단 부품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신모(46)씨는 대학생 아들(21)과 고등학교 딸(18)을 둔 기간제 근로자이다. 지난 2005년 사업이 망해 빚더미에 앉게 된 신씨는 파산신고를 하고 현재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고 있다.

신씨가 1주일 6일, 매일 오전 8시반부터 오후 10시까지 잔업을 해 받는 한 달 수입은 140만원 정도.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의 30~40%수준이다. 성과급과 명절 보너스는 물론 없다.

사업이 망한 후 배우자와 헤어져 두 자녀를 신씨가 맡게 됐다. 생활비를 비롯해 등록금 등 앞으로 비용이 들어갈 일이 많아 걱정이 태산 같다.

그래도 한 달에 40만원은 적금을 든다. 대학에 다니는 아들 등록금을 대기 위해서다. 40여 만원은 월세, 40만~50 만원은 자녀들의 한 달 용돈, 나머지는 생활비로 사용한다. '투 잡(Two Job)'으로 버는 한 달 생활비를 쪼개 쓰며 안간힘을 써보지만 아들 등록금은 늘 부족하다. 그래서 그는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한다.

오후 11시부터 새벽 3시까지 일을 해 버는 돈은 80여 만원 남짓. 그의 한 달 생활비는 220여 만원. 하루 평균 4시간 정도 자는 신씨는 고단하지만 그만 둘 수 없는 실정이다.  

"저 혼자 생활하면 하루 세끼 먹을 정도면 되겠지만,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들어갈 돈도 많은데 걱정이 많아요. 이것 마저도 잘리지는 않을까 걱정돼 잔업업무가 있으면 남들보다 먼저 나서서 하기 바빠요." 생계에 대한 절박함을 나타내는 신씨다.

얼마 전 그와 함께 일하던 기간제 근로자는 계약 연장을 못하고 해고를 당해 신씨 마음은 더욱 불안하다.

"요즘은 일용노동직을 구하는 것도 어려워요. 금년 말이면 계약기간이 끝나가는데, 경기가 어려워서 연장계약이 될지 걱정이에요. 지난 2년간은 계약연장으로 불안하더라도 1년씩은 정기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었는데, 얼마 전 동료가 회사를 나가는 걸 보고 제자리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이 태산이에요."

그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현재 일자리 걱정과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감에 요즘 잠을 못 이룬다고 전했다.

퀵서비스 배달을 하는 김모(44)씨는 몇년 전 한 중소기업 중역을 맡았다가 명예퇴직을 했다. 70대 노부와 대학 3학년(22) 딸과 함께 살고 있는 김씨는 아직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

얼마 전 측근 소개로 그는 퀵서비스 배달업을 하게 됐다. 아침, 저녁 관계 없이 하루에 12시간 일을 해 한 달 200여만 원의 월급을 받는다. 회사에서 보험료, 결근시 출근비나 기사관리비 2만원 등 비용을 제외하면 190여만 원을 받는다.

50만원은 지방대학에 다니는 딸 학비를 위해 저축을 한다. 40만원은 딸 용돈과 생활비로 보낸다. 가족 생활비 40만원과 노부의 약값을 위해 20만원을 지출한다. 얼마 전 노부가 대장암으로 병원에 입원하면서 입원비까지 감당하려니 한 달 그의 수입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그는 오후 10시부터~1시까지 대리운전을 한다. 얼마 안 되는 비용이지만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엎친 데 덥친 격으로 집주인이 전세 1천만원을 올려달라는 요구에 더 힘겹다. 대출마저 받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고민이 더하다.

"나이가 많다 보니 어디에 재취업을 한다는 것도 어렵습니다. 다행히 알고 지내던 동네 분이 퀵서비스 배달업을 소개해 힘들게 일자리를 얻었어요. 노부와 자녀를 위해 아직 일을 해야 하는데, 혹시 잘리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힘들더라도 일이 있으면 닥치는 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는 "휴식도 취하고 싶고,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면서 "체력이 다하는 데까지는 어떤 일이라도 하고싶고, 투 잡이든 쓰리 잡이든 닥치는 대로 일을 하겠다"라고 토로했다.

회계사 시험준비를 하다가 졸업이 늦어진 박모(31)씨는 올 2월 대학을 졸업하고 한 보습학원에서 수학과 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두 차례 회계사 시험에서 떨어진 박씨는 어린 딸(2세)을 키우기 위해 시험을 포기하고 급한 마음에 보습학원 강사로 나섰다.

하루 9시간씩 주 5회 일을 하고 있는 그의 월급은 150만원 정도. 하루빨리 더 나은 취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은 먹지만 이 일을 쉽사리 그만둘 수 없다. 딸의 기저귀, 분유값과 생활비를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씨 아내는 아직 어린 딸을 돌봐야 하기에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루빨리 좀더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싶지만, 어린아이를 키우려면 무턱대고 취업준비를 할 수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아내도 함께 일을 하고 싶어하지만, 딸을 돌봐줄 식구가 없어 저 혼자 생활비를 감당해야 합니다." 박씨의 하소연이다.

더군다나 박씨는 개인사업자이다. 학원에서 고용보험료 부담을 떠안지 않으려고 이런 식의 계약이 이뤄진다.

그는 "대부분 강사들이 야간수업이나 주말보충수업 등은 맡고 싶지 않아 해 원장이 누가 하겠냐고 물어보면 내가 한다"면서 "요즘 대학생 강사들이 학교 다니면서 임시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 자리가 불안하기 때문에 주말에도 일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자리가 불안정한데다 혹시나 잘리게 되면 개인사업자로 등록이 돼 있어 일자리를 잃더라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모자라는 생활비를 보충하기 위해 부업거리를 찾고 있다. 그러나 불경기에 투 잡으로 대리운전을 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 직업을 얻는 일마저 쉽지 않다. 그는 어릴 적부터 취미생활로 배운 기타실력으로 격주로 라이브카페에서 공연을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얼마 안 는 수입이지만 어린 딸 분유값을 벌기 위해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