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학교급식 조리원들 "피멍 든다"
상태바
인천 학교급식 조리원들 "피멍 든다"
  • 이혜정
  • 승인 2011.11.17 14: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처우 너무 '비인간적' - 근본적 해결은 '정규직화'뿐


최근 부평구청 7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인천지역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처우개선을 위한 토론회'

취재 : 이혜정 기자

인천지역 G중학교에서 조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모(38)씨에겐 고민이 많다. 그는 얼마 전 급식실에서 일하다가 손목을 다쳐 무거운 물건을 들 수 없는 상태다. 10여 명이 일하는 근무여건상 김씨가 잠시 쉬기라도 한다면 나머지 조리원들이 모든 일을 감당해야 한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손목에 붕대를 감고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손목에다 어깨 통증 등으로 시달리고 있다.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에서 무거운 물건을 들다가 손목이 삐끗했는지, 움직일 때마다 통증으로 시달리고 있어요. 아프다고 쉬면 다른 사람들이 그 힘든 일을 해야 하니 미안한 마음에 그러지도 못하고. 일단 임시로 붕대를 감아놓고 침을 맞으며 일하고 있어요." 김씨의 하소연이다.

김씨는 학교측 반응이 당황스럽다고 했다. 학교에 "손목 부상으로 며칠 쉬어야 할 것 같다"라며 대체인을 요구했더니 본인이 알아서 하라는 반응이었다는 것이다.

"당황스러웠어요. 부상으로 좀 쉬어야 할 듯하다고 했더니, 쉴 거면 저 보고 알아서 대체인력을 구하라고 하더라고요. 최저임금도 안 되는 월급에 며칠 쉬면 대체인력비를 제가 내야 합니다. 생활이 넉넉하지 않으니 그것 역시 부담이고, 안 구하자니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고생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일하고 있어요."

T고등학교에서 조리원으로 일하는 박모(51)씨 사정도 비슷하다. 그는 몇년 전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생계를 위해 본격적으로 경제활동에 뛰어들었다. 월 80여만원을 받는 급여로 세 식구를 감당하기 어려운 그는 오후에 식당에서 4시간 일을 하고 월 70여만원을 받는다. 그러나 몸이 힘들고 아파도 그렇다고 말할 처지가 아니다.

"남편은 교통사고로 일도 못하고, 아들은 아직 대학교 1학년이라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벌어요. 저는 오전에는 학교 급식소에서, 오후에는 식당에서 일을 합니다. 무거운 짐을 들고 나르고 하다 보면, 이곳 저곳 몸이 안 아픈 데가 없지만 그래도 생계를 꾸리려면 해야죠."

그는 얼마 전 황당한 일을 당했다고 한다. 15만원 상당의 맞춤형 복지카드를 사용하고 나서 다음달 돈이 들어오지 않아 학교측에 요구를 하자 예산이 없어 10만원만 넣어줬다는 것이다. 학교측은 막무가내여서 결국 환급받지 못했다.

"복지카드를 사용하고 나면 그 사용금액만큼 다시 통장으로 들어와요. 그런데 사용한 금액보다 부족하게 들어와서 물어봤더니 예산이 없어 전부 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돈을 주고 안 주고 문제가 아니라 세상에 복지부분까지 임의로 삭감하고, 비정규직이라고 이런 처우를 하다니 어이가 없었어요."

박씨는 "우리 같은 비정규직들은 자기 권리조차 말하는 것도 어렵다. 어이가 없고 화가 나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아야 한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처럼 인천지역 초·중·고 급식소에서 일을 하는 조리원들이 상시적인 고용불안과 저임금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리고 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인천지부는 최근 '인천지역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처우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2011년 9월 현재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555명(조리종사원과 영양사 439명)을 대상으로 한 노동·생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조리원과 영양사 중 78%~87%가 손목, 어깨, 허리 등 통증으로 시달린다고 답했다. 이들 중 47%(205명)는 근무 중 부상을 당해도 치료를 하지 못한다고 했고,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20%가 개인부담이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이 없어서'(71%)로 응답했다. 근무인원이 부족하다는 답은 59%(261명)에 달했다. 현장에서 처우개선을 위해선 '복리후생 개선'이 52.6%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업무상 차별' 20.3%, '무응답'11.4%, '비인격적 대우' 45%, '부당한 업무지시' 15%, 기타 9% 순이었다. 조리원과 영양사의 평균 급여수준은 81만~90만원(350명)으로 나타났다.

또한 시간외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등 노동법을 위반하고 급식실 근무인원이 부족하며, 부당한 업무지시가 많은 등 노동조건이 아주 열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영숙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인천지부 사무국장

김영숙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인천지부 사무국장은 "조리원을 비롯해 학교 내 모든 비정규직 종사자들이 나쁜 환경과 임금수준에서 일을 하는 것은 정규직화하지 않아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조리원 처우 개선도 꼭 필요한 문제지만, 근본적으로 제도 속에서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정규직화가 시급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천지역 학교 내 비정규직 종사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 고용불안, 최저임금도 안 되는 급여수준 등에서 벗어 날 수 없는 약자일 수밖에 없다"면서 "현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스스로 견뎌야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법적인 대체인력 예산이 있는데도 무급에 대체인력을 본인부담으로 떠넘기는 사례, 맞춤형 복지 예산부족으로 일정금액 수령, 계약만료 전 해고, 폭언과 비하발언 등 각종 문제가 곳곳의 현장에서 일어난다.

김 사무국장은 "인천시교육청에선 130명당 1명이 급식실 배치기준이라고 하지만, 실제 현장의 급식실 배치기준은 150명당 1명 꼴로 매우 고된 노동을 하고 있어 근골격계 질환 등에 시달리기 일쑤"라면서 "이런 상황에 법적인 대체인력 예산 등 혜택을 받을 수 있음에도 전혀 현장에서 실행되지 않아 아파도 쉬거나 개인이 부담하는 사례들이 빈번하다"라고 지적했다.

이뿐만 아니라 급식실 환경도 나쁘다고 그는 설명한다.

"한 여름에는 더위에 시달리고, 한 겨울에는 추위에 떨며 뜨거운 물을 고무신 위에 부어가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학교들이 하수구와 정화조를 연결해 놓아 일하는 데 어려움이 많아요. 이런 열악한 상황에 혹여 음식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하면 조리원들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그는 "조리원 처우개선은 단순히 조리원 밥그릇 챙기기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 건강식단과 관련된 것으로 매우 중요하다"면서 "학교라는 공공영역에서부터 인식개선 등의 변화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이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고교 급식 조리종사원은 더 힘들다

이같은 학교급식 조리원에 대한 갖가지 문제는 지난 15일 열린 토론회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전국여성노동조합 인천지부가 이날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인천지역 학교급식 조리종사원 노동실태와 전망'을 주제로 연 토론회에서 여성노조 나지현 인천지부장은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고등학교 16곳을 방문해 실시한 조리원들과의 심층 면접 결과를 발표했다.

이 결과에 따르면 조리원 1인당 급식인원은 시교육청에 대한 국정감사 자료(114명)와 달리 대부분 114명을 훌쩍 넘으며 심하게는 1인당 175명까지 담당하고 있다.

또 인천지역 조리원 배치의 경우  경기도에 비해 인원이 적으며, 고등학교에 대한 차별이 없다는 자료를 제시했다. 학생 1천500명이 넘어도 경기도와 달리 기준도 없다는 자료도 내놓았다.

이에 따라 도저히 벅차 일을 할 수 없으면, 15시간 미만 아르바이트를 쓰거나 학교에 따라 학부모를 봉사 명목으로 불러들이는 일이 계속되고 있으나, 이것만으로 인원부족을 해소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조리원들의 장시간 노동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점심 배식 후 30분 정도 쉬고 바로 석식 준비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거의 쉬지 못하며, 그나마 초과근로수당도 실제 초과근로 시간에 비해 인정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 방학 중 보충수업이나 토요일 식사를 제공해야 하는 경우 제대로 임금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 학교는 방학중 근무가 없는 초·중학교와 동일하게 연봉을 정하고 있다.

이밖에 △직영이 된 기간이 짧고 급식비로 임금이 책정돼 고용이 불안하고 △휴가 사용이 자유롭지 못하며 △높은 노동 강도와 낮은 임금으로 이직이 잦고, 산재위험이 높은 데 따른 대책 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진행된 토론회에서 이명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실장은 '학교비정규직 실태와 정책제언'을, 전국여성노조 경기지부 조미란 사무국장은 '경기지역 학교사례를 통해 본 인천지역 개선방안'을 각각 발제했다.

토론에는 고등학교 조리종사원 양명순씨와 강병수 인천시의회 의원, 이례교 인천여성노동자회 회장, 임병조 전교조 인천지부장, 박인숙 인천학교급식시민모임 집행위원장, 김은숙 전국여성노동조합 조직국장이 참여했다.

이 실장은 발제에서 "학교 비정규직 임금문제에는 근속이 반영되지 않은 임금체계가 핵심"이라며 "학교회계직 '고유 임금체계' 모델을 세우는 것만이 그 대안이다"라고 말했다. 또 전국 공통적 문제인 학교 비정규직 계약관계를 학교장이 아닌, 교육감으로 전환하는 문제에 대해 초중등교육법이나 지자체 조례 개정을 통해서라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 국장은 학교비정규직 근로조건 개선방향에 대해 △경력이 인정되는 호봉제 적용 △방학기간 생계보조수당 지급 △근무일수 규정폐지 및 토요일 유급화 △학교비정규직 채용 및 복무에 관한 조례제정 △학교비정규직 전담부서 신설 등을 들었다. 그는 학교 비정규직 차별해소를 위해 교과부와 교육청이 전면에 나서야 하고 서로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례교 회장은 "우리 사회환경은 변화·발전하고 있다고 하지만, 최저임금 수준은 공공요금 인상율에 못 미치고 있다"면서 "중앙정부 정책효과를 기대하기보다 지방정부의 기능적 역할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임병조 지부장은 "고등학교 조리원과 조리사 일수는 고무줄 일수여서 임금단가가 오르면 학교장은 근무일수를 조정해 전년 임금수준에 맞춘다"면서 "학생 건강을 책임지는 조리사와 조리원들이 자부심을 갖고 급식 일을 평생 직장으로 알고 마음놓고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인숙 위원장은 "교육수요 변화에 따른 학교 내 종사자 고용이 다양해짐에 따라 비정규직이 아니라 직무 평가를 통해 정규직 전환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제도적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