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기지개를 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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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기지개를 켜다
  • 강영희 시민기자
  • 승인 2013.04.03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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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마을'+'사진'+'신문'이었을까?
 
2012년 우각로신보 표지.jpg
2012년 우각로신보
 
시작은 사소했다.
배다리 반지하에서 활동하거나 인연을 갖고 있던 4인과, 공동으로 건물을 임대해 쓰던 1인이 2010년 2월 지역공동체 창작공방 <다행多行_하다>를 공동 운영하기로 했다. 2009년 공동체예술 프로젝트를 연구보고서로 정리하는 역할을 했는데, 연구 결과 중에서 각자가 이미 가지고 있는 재능을 마을(지역)과 함께 나누는 고민을 해야한다는 내용이었다.
 
 마을공동체 문화예술활동의 시간과 개인적 재능(사진찍기와 글쓰기, 프로그램을 다룬다든가 하는)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하다가 A3 한 쪽 짜리 <강's 마을사진이야기 '다행多行'-> 이후 '휴지休紙'>을 컬러프린터로 뽑아서 이웃들과 손님들과 나눠보게 됐다.
 
사진과 간단한 설명으로 된 신문을 내면서 수많은 텍스트의 스트레스에서 조금은 자유롭지 않을까?  또는 사진 몇 장으로 된 신문이라면 읽는 사람에 따라 편하고 쉽게 접할 수도 있고 (어르신들이 문맹이거나 글씨를 보기 어려운 경우 등에도), 수 많은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다는 사진의 힘을 생각하게 됐다. 
 
 '종이신문'이라는 것에서 '나무'에 대한, 그리고 '인쇄물의 공해'라는 측면에서 마음속의 불편함이 좀 있었다. 하지만 작고 오래된 마을에서 인터넷으로 굳이 찾아서 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마을 풍경을 담은 것들이 그 안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도 나눠지는 것이 '옳다' 또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결국 대량으로 뽑지 않고 필요할 때 그때그때 뽑는다면 그런 불편함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지 않겠나 싶었다.
 
20100608목_사진이야기 연습2 사본.jpg
강's 마을사진이야기 - 2010년 6월 8일 분
 
 언론이란 무엇일까?  미디어란 무엇일까? 원론적인 것에 대한 공부를 좀 해보기도 했지만 그 대상과 방식, 구성에 따라 기존의 신문을 흉내내는 것 조차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흉내내려 하지도 않았지만...
 펜타포트 프린지 페스티벌에 <다행하다> 창작공방이 문화예술 부스를 운영해줄 것을 요청받고 진행했고, 나는 거기에서 현장신문을 발행했다. 더러는 나눠주고, 더러는 붙혀놓고 .. 반응이 좋았다. 
 
 
 무엇을 위해서 마을신문이 있어야 할까?
 
 오래된 것들-사람, 공간, 역사의 지속과 공존은 이제 엔틱이나 빈티지나 하는 단어들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중구청 건물이 전국 어디에나 있는 비까 번쩍한 21세기형 건물과 비견하여 멋져보이고, 특별해보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만큼 오래된 자원들이 풍부한 동구, 그 멋진 옛 것의 가치를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마을사진이야기는 그것들을 소박하게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여기 동구, 창영동과 배다리 만의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송도 같은 신도시만 필요한 것이 아니잖은가? 그러기도 싫고, 그럴수도 없다면 지금 가진 것들의 소중함을 가꾸는 것이 더 합당하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201105025_사진이야기 휴지-1 사본.jpg
2011년 5월 26일 휴지休紙
   
 그렇게 '무엇을 위해서 마을신문이 있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은 2011년 <나비날다>와 만나면서 조금 더 선명해졌다. 내가 가진 재능을, 자원을 함께 나누는 것을 넘어 이 마을이 이 모습대로 계속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숨막히는 도시 속에서 만나는 텃밭과 할머니, 그리고 사람도 별로 없는 이 마을에 들어서면 시골의 어느 한 켠 같은 따뜻함과 편안함, 여유 그 가운데서 낡아지만 왠지 느껴지는 마음의 풍요로움을 자랑하고 싶었다.  
 
201106015_사진이야기 휴지.jpg
2011년 6월 15일 <휴지休紙>
 
 반나절 애를 쓰면 한 쪽 짜리 마을사진신문은 완성됐다.
 
 색감이 풍부하게 담긴 마을사진신문은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바쁜 일이, 다사다난한 일상에 마음이 쏟아지고 여유가 느껴지지 않으면 만들어지지 않았다. 혼자 만드는 한 쪽 짜리 신문은 부담없이 만들다보니 안만들어도 그만이었다.
 
 그런저런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마을에 문화공간이 늘어났다. 사각공간, 한점갤러리, 띠갤러리, 아침햇살...  그 공간 운영자들과 마을 활동을 고민하면서, 그들을 지지하고, 격려하고, 힘이 될만한 일이, 무엇보다 지역주민들에게 그런 공간들의 풍부한 문화예술을 나누기 위한 생각도 늘어났다. 
 일단은 인터넷신문인 <인천in>에 올렸다. 하지만 같은 마을에 사는 주민들과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또 2011년, <다~살림 벼룩시장>을 나비날다와 함께 진행했다. 마을 가운데 생긴 산업도로 공터와 일부 단체의 갈등 때문에 정서적으로 갈라진 윗마을-창영동과 아랫마을-금곡동을 잇는 노력의 일환으로 가운데에 있는 산업도로 공터에서 시작했다. 간간히 주민들이 참여하기도 하고 구경하기도 했지만 주민들이 자기 물건을 내어놓고 파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이웃 마을에서 참여하는 일이 더 많았다. 
다살림시장-일상홍보용+웹용 사본.jpg
다살림 홍보 포스터는 매월 제작해서 부착했다.
 
 그 즈음 한점갤러리를 운영하는 다인아트 윤미경씨가 지원사업을 내보자고 했다.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격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는 등떠밀음이 있었고, 주민들과 소통하기 위한 오프라인 매체를 일단 해보자는 마음들이 모였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정기적이고 책임감 있게 마을 속 문화공간 활동을 기록하고, 풍부한 문화적 자원을 주민에게 알리고, 이 작은 마을에서의 개인적 즐거움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로 기록하기로 했다. 
 또한 공간운영자 또는 마을활동가들도 서로 이해하고 알아가기 위한 계기가 필요했고, 마을활동-다살림 벼룩시장 등에 주민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홍보의 필요성도 충분히 있었다. 
우각로신보 4월-창간호.jpg
우각로신보 2호- 창간호
 
우각로신보 4월-창간호.jpg
우각로신보 2호- 창간호
 
 
 마을에서의 신문에 기능과 역할은 무엇일까?
 
  2012년, 1년간 생각했던 목표들은 성과를 봤다. 문화공간 운영자들은 조금 더 긴밀해졌고, 동구 자원봉사센터가 배포를 도와줘 금곡동 주민들에게도 문화공간의 활동내용이 전해졌다. 창영동에 들어섰던 공간이 두 개나 없어져 혼자 배포하고 지내는 게 좀 힘들었지만, 달이네 점심밥상 모임이 지켜줬다. 그렇게 2012년의 마을 곳곳 이야기와 소박한 풍경들이 남겨졌다.
 
 그리고 좀 지쳤다. 이 신문이 어떻게 읽혀지고 나눠지는지 좀 듣기는 했지만 마을에서의 성과를 체감하기는 어려웠다. 벼룩시장은 '달이네' 두 여인이 배다리 아래서 운영하고, 남구 학산의 꿈다락 수업을 진행하게 된 '강'은 가끔, 겨우겨우 참여했다. 주민들은 늘어나지 않았고, 마을 공간은 세 개가 나가고 하나가 들어왔다. 나비와 내가 주로 글과 사진을 준비하고, 서너명의 주민들이 간간히 함께 했다. 이 조차도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결국 2013년을 준비하면서 <우각로신보>를 지속할까? 말까?를 고민하게 됐다. 
 
마을에서 미디어란? 신문이란 무엇일까요? 그 역할과 기능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려는 일들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마을의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함께 참여하여 즐겨보라고 권하며, 주민들의 마을에서의 삶이 어떤지도 함께 느끼고 이해하며 그야말로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는 ‘사람 냄새 나는 마을’을 지향합니다.
그렇게 마을을 누리며 즐겁기를, 그리고 그런 즐거움을 이웃들과 나누기를, 어려움과 슬픔도 함께 나눠지는 시간들을 통해 작고 오래된 우리 마을이지만 함께 나누고 이해하고 배려하며 살아가면 충분히 가치 있는 공간이고, 소중한 삶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상대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나 찬성이 아니도록 하는 것, 기존의 삶을 파괴하는 개발이 아닌 공존의 가치를 지속시킬 수 있는 건강한 변화의 과정을 함께 가져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해보고 싶었던, 공부도 해보고 싶었던 것을 혼자서 중얼거려봤다. 마을의 '평상' 같은 쉼의, 대화의, 나눔의, 알림의, 꾸지람의, 위로의, 격려의 장場이 필요하지 않겠나?  끝없이 안으로 안으로 쌓이는 질문들 속에서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관성이기도 했고, 의욕 가득찬 나비의 씩씩함도 있었고, 다양한 마을 활동들이 곳곳에서 이야기 되기도 했다. 조금 더 공부와 연구가, 실험과 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다른 의미들이 더해질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다.
 무엇보다 2013년 금창동의 다양한 활동들이 주민들로부터 힘을 받아 마을이 조금은 더 활기차고 생기로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금창동 할머니들이 조금은 더 즐거워 하실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꾸 손녀들을 보고 싶어하는 엄마의 마음이 투영된 것일까? 
  
 
우각로신보(3월호) 최종.jpg
우각로신보(3월호) 최종.jpg
우각로신보(3월호) 최종8.jpg
 
이런저런 복잡한 마음에도 2013년이 시작됐고, 지원도 확정됐다.
 
 도시 속에서 + 지속가능한 + 마을공동체 + 회복을 위한 + 마을사진 + 신문 <우각로신보>가 마을의 활력을 발현할 수 있을지, 신문이 가질 수 없는 것을 탐하는 것인지, 주민들은 어떤 마음과 태도인지, 이 작고 오래된 가난한 마을에 어떤 꿈이 가능한 것일지 새로운 실험이 계속된다.
 
 우각로신보는 그래서 인간적 범주라는 마을공간의 자생성 회복의 과정에 기록이고 싶다. 먹고 살빼는 바보같은 일이 아니라 적게 먹고, 부지런히 일하며 살아가는,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냄새 나는 따뜻한  옛날식 우리마을을 다시 만나고자 하는 노력이고 싶다. 이게 신문이 하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
   
 경쾌한 문장으로 가볍게 끝내는 걸 좋아하는데 오늘은 마지막 문장이 쉽게 씌어지지 않는다. 날라갈듯 경쾌한 키보드 위 손가락이 오늘은 자꾸 무겁다. 머리와 가슴을 지난 생각이 손과 발 끝에서 날렵하게 움직이는 날이 조금 더 가까와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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