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 선거는 로또?
상태바
교육감 선거는 로또?
  • 김도연
  • 승인 2010.05.12 17: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순서 잘 뽑는 수밖에"…유권자는 누가 나왔는지도 몰라


취재 : 김도연 기자

교육감 선거를 두고 교육계와 정치권에선 '깜깜이 선거' 또는 '로또 선거'란 말이 나온다. "순서를 잘 뽑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정당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어 부각되기 어렵고,  유권자들은 누가 나왔는지도 잘 모른다는 게 교육계의 반응이다.

그래서 후보들은 정책 개발에 공을 들이기보다는 선거공보물을 잘 만들고, 투표 용지 상단에 이름이 올라갈 수 있도록 추첨을 잘하는 게 당선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인천시 교육감 선거에 나서는 한 후보는 "정책을 많이 준비해도 유권자들에게 알리기 힘들고, 정당과의 연대도 확보할 방법이 없다"며 "운 좋게 순서를 잘 뽑아서 유력한 후보처럼 보이는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후보자들 사이에 퍼져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6월 2일 치르는 제5회 동시지방선거에서 교육감 선거가 정책이 아닌 순위와 색깔을 우선하는 투표로 변질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크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는 추첨을 통해 순서대로 투표 용지에 이름을 올리기 때문이다..
 
인천시선관위에 따르면 교육감과 교육의원 출마 후보자들은 공식 후보 등록이 마무리되는 14일 오후 6시께 시 선관위 사무실에서 투표용지에 이름을 올리기 위한 순위를 정하는 추첨을 한다. 최종 후보 등록을 마치는 인원 수에 맞춰 1번부터 순서대로 번호가 표시된 주사위를 추첨함에 넣고 각 등록 후보들이 가나다순으로 한 명씩 나와 추첨함에서 순위를 뽑는다. 이런 방식을 거쳐 뽑힌 번호 순서대로 최종 투표 용지 상단에 각 후보자의 이름이 명기된다.
 
이로 인해 유권자들은 투표할 때 가장 위에 적힌 인물이 광역자치단체장이나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처럼 특정 정당과 관련됐을 것이라고 오인을 하며 투표권을 행사할 우려가 높다.
 
실제로 시 선관위도 이러한 부분을 걱정하고 있다.
 
시 선관위 관계자는 "선거에 관심이 높은 시민들은 일일이 후보자별 공약이나 정책을 비교하겠지만, 선거에 관심이 낮은 시민들은 교육감이나 교육의원이 정당과 아무런 관계가 없음에도 투표용지에 적힌 순서대로 특정 정당과 관련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기표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지속적인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일정 부분 우려하는 현상이 투표 현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며 "10명 가운데 한 두 명은 교육감이나 교육의원 선거에 정당을 염두에 두고 투표권을 행사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다른 선관위 관계자는 "지난 선거에서는 후보자 이름이 가나다순으로 투표 용지에 명기됐는데, 투표를 할 시점에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 분위기가 기표에 영향을 줄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며 "이번 선거에서 교육감이나 교육의원 후보들에게 그렇게 투표할까봐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이를 최대한 예방하기 위해 시 선관위는 교육감과 교육의원을 뽑는 투표 용지 상단에 '교육감 선거는 정당과 관련이 없습니다'라는 문구를 새겨 넣었다.
 
또  선거 공보물에도 '교육감 선거와 교육의원 선거는 정당과 관련이 없습니다'라는 문장을 강조해 표기했다.
 
하지만 역대 선거에서 전국 최하위 수준의 투표율을 보이고 있는 인천지역은 광역단체장이나 기초단체장 선거와는 달리 교육감이나 교육의원 선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가 떨어져 앞서 제기된 우려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최근 한 신문사가 1천명의 인천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육감 선거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무응답율이 무려 51%에 달해 유권자들의 관심이 매우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례로 인천시 교육감 예비후보 캠프 사무장을 맡고 있는 A씨는 "얼마 전 전 직장 동료들과 식사를 하게 됐는데, 최근 무엇을 하고 있냐는 후배 질문에 교육감 선거 캠프에서 일한다고 했더니 '이번 선거에서 교육감도 뽑냐'고 물어 황당했다"고 말했다.
 
가정에 배달되는 과도한 후보자별 선전물도 선거에 대한 관심도와 판단력을 흐리게 할 수 있다.
 
시 선관위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각 가정으로 배달되는 후보자별 선전물을 40여 개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교육감, 교육의원, 시의원, 구·군의원, 시장, 구·군의장, 비례대표시의원, 비례대표 구·군의원 등 8번을 투표해야 하는 상황에서  선거별로 평균 5명씩만 후보자가 나와도 40명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평소 선거에 관심이 없는 유권자가 후보자별 홍보물을 받아보는 순간, 정책을 비교한다는 건 어려운 현실이다. 결국 평소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을 염두에 두고 모든 선거에 투표권을 행사할 우려가 높다.
 
연수구 주민 박모(53)씨는 "수십 명이나 되는 후보자들의 공약을 비교해 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교육감이나 교육의원 선거가 정당과 무관하다곤 해도 상당수 유권자가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의 순위를 투표용지에 반영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각 교육감 예비후보 진영에서는 '인물 알리기' 초점을 두고 홍보 전략을 짜고 있다. 우선순위에 의한 변수를 최대한 줄여 보겠다는 의지이다. 또 이번 지방선거에서 교육감 선거도 함께 치른다는 점을 홍보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순위 투표가 걱정되는 것은 비단 후보자 추첨에 의한 순위 결정뿐만 아니라 '색깔론'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인천에선 진보진영과 비(非) 전교조를 기치로 내건 보수진영이 서로 적임자임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에선 후보 단일화를 이뤘지만, 보수진영인 '바른교육 인천시민연합'에선 아직 7명의 후보를 단일화하지 못한 상태. 전교조를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는 보수진영과 전교조 출신을 후보로 내세운 진보진영이 갈수록 '색깔'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  교육정책보다는 진보와 보수란 양 갈래로 나눠 싸움을 벌일 것으로 관측된다.  

유권자 이모(37, 남동구 간석동여)씨는 "교육감 선거는 특히 각 후보자가 내세우는 정책과 공약을 놓고 판단해야 하는데, 최근 보수와 진보 양자 구도의 색깔은 정책선거의 의미를 퇴색하게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보수와 진보로 양분되는 분위기지만 각 진영의 후보자가 공식화하면 정책 비교가 충분히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일반 유권자들이 중차대한 교육감 선거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