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11시 인천대공원 백범광장에서, 광복회 주관으로
백범 김구 선생 64주기 추모식이 26일(수) 오전 11시 광복회 인천시지부(지부장 임병호) 주관으로 인천대공원 백범광장에서 열린다.
인천대공원에 있는 백범 김구 동상은 1997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인천시민들의 성금으로 세워졌고, 이듬해부터 6월 26일 백범 서거일에 광복회 인천시지부 주관으로 백범 동상 앞에서 추모식을 거행하고 있다.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백범 선생은 의병활동과 계몽운동 등을 벌이다 1919년 3ㆍ1운동 직후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에 선임된 뒤 내무총장과 국무령, 주석 등을 역임했다.
선생은 8.15 광복을 맞아 귀국한 뒤 반탁운동과 남북연석회의 참가 등 완전한 자주독립 국가 건설을 위해 힘쓰다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안두희가 쏜 흉탄에 맞아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백범 김구는 20살 때인 1896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분노해 일본군 중위 쓰치다를 살해하고 인천감옥에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던 와중 고종 황제의 어명으로 사형집행을 면했던 데가 인천이다.
"백범 일지"에서도 '인천감옥에서 수형생활을 하는 동안 인천 개항장을 통해 유입된 신문물을 익히며 항일운동가로서의 사상을 정립했다'고 기록할 만큼 인천과 백범의 인연이 남달랐다.
백범 김구는 20살 때인 1896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분노해 일본군 중위 쓰치다를 살해하고 인천감옥에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던 와중 고종 황제의 어명으로 사형집행을 면했던 데가 인천이다.
"백범 일지"에서도 '인천감옥에서 수형생활을 하는 동안 인천 개항장을 통해 유입된 신문물을 익히며 항일운동가로서의 사상을 정립했다'고 기록할 만큼 인천과 백범의 인연이 남달랐다.
한편 백범은 1911년에도 독립운동을 하다 인천감옥에 수감됐고,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이 인천에 직접 기거하면서 선생의 옥바라지를 했다. 인천대공원 백범광장에는 백범 김구 선생 동상 뒤로 어머니 곽낙원의 동상도 함께 세워져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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