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청소년 찾아...이동쉼터 ‘뭉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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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청소년 찾아...이동쉼터 ‘뭉클카’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문양효숙 기자
  • 승인 2013.07.09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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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부평 문화의거리엔 작은트럭과 천막이
<인천in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협약기사>
 
“쌤~! 사탕 줘요!”
“대체 우리 왜 이렇게 자주 보니? 이러지 말자. 자, 여기!”
“다른 맛으로 줘요.”
“나한테 사탕 맡겨놨니?”
 
열대여섯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하나가 멀리서 달려오더니 사탕을 달라며 살갑게 실랑이를 벌인다. 친숙한 듯 장난을 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이는 가출 청소년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거리 상담을 하는 상담교사 원지연 씨다.
해가 지는 오후 6시가 되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인천 부평역 문화의 거리 입구에는 작은 트럭 한 대와 파란색 천막이 자리를 잡는다. 이 차의 이름은 뭉클카. 가톨릭아동청소년재단이 운영하는 가출 청소년 일시 쉼터 꿈꾸는 별의 ‘이동 쉼터’다. 부스가 설치되면 네 명의 상담교사는 자원봉사 교사들과 함께 조를 짜서 거리로 나선다. 일주일에 세 번은 부평역, 한 번은 주안역에서 청소년들을 ‘찾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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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시 부평 문화의 거리 앞에 자리 잡은 청소년 이동 쉼터 뭉클카 ⓒ문양효숙 기자
 
가출한 아이들을 위해 쉼터를 만들었지만, 많은 아이들은 여전히 거리를 떠돌았다. 쉼터는 거리로 나가기로 했다. 아이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만났다. 상담교사들은 뒷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며 소소한 수다를 떨기도 하고, 늦은 밤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표정이 왜 이렇게 안 좋냐?”, “밥은 먹었니?” 물으며 말을 건네기도 했다. 원지연 씨는 “초기 가출 청소년을 발견하는 게 가장 주요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가출한 아이를 발견하려면, 10명을 만나도 그 한 명의 느낌을 알아야 해요. ‘나 가출 했어요’ 하고 얼굴에 붙이고 다니지는 않으니까요.”
초기 가출 청소년을 발견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거리 상담의 역할은 쉼터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다. 상담교사들은 거리에서 청소년들을 만나며 “우리가 여기 있어” 하고 알렸다. 상담교사들이 거리에서 보낸 시간에 비례해 아이들과 신뢰가 쌓여갔다. 아이들은 자신의 친구가 가출하면 손을 잡고 데려왔다.
집을 나오는 나이는 중학교 2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 사이가 많다. 충동적으로 집을 나온 아이들은, 마주앉아 마음을 다독이면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집으로 돌아갈 상황이 아니거나 본인이 원하지 않을 때에는 쉼터를 소개해준다. 쉼터가 아니라면 아이들이 잠을 잘 수 있는 곳은 친구 집, 아니면 거리다. 가출이 오래 지속되면 인터넷에서 ‘가출팸’을 만들어 집을 나온 또래끼리 모여 살기도 하고, 요즘 같은 계절엔 노숙을 하는 아이도 있다.
쇼핑 공간과 식당으로 북적이는 부평 문화의 거리 뒷골목에는 모텔들이 꽤 눈에 띄었다.
“여기 모텔이 시설이 안 좋아요. 딱 잠만 잘 수 있는 곳이죠. 하루에 만 원, 만 오천 원 정도 하는데 거기서 여러 명이 자요.”
상담교사들은 모텔을 돌며 업주들에게 “혹시 자고 싶은데 숙박비가 없는 것 같은 아이들이 보이면 우리를 소개해 달라”며 명함을 돌렸다.
 
  
▲ 문화의 거리 옆 골목에는 모텔들이 줄지어 서 있다. ⓒ문양효숙 기자
 
저녁 7시 반. 문화의 거리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던 원 씨는 “지금은 아이들이 노래방이랑 당구장에 있을 시간”이라며 뭉클카로 잠깐 돌아왔다. 뭉클카 옆에 만들어진 부스에서는 한 무리의 덩치 큰 남학생 다섯 명이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쌤, 초코파이 먹어도 돼요?”
“쌤, 배고파요.”
밥을 먹고 돌아서면 다시 배가 고픈 나이이기도 하지만, 집을 나온 아이들은 특별히 끼니를 챙기기가 어렵다. 거리에서 가출한 청소년들을 만났을 때 상담 교사들은 “밥은 먹었어?”를 제일 먼저 묻는다. 대부분 “아니요”라고 말한다 했다. 상담 교사들은 “밥 먹으러 가자”며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 아이들은 잠깐 망설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함께 뭉클카로 향한다.
밥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건넨다.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처음 만난 상담교사에게 부모님과의 다툼, 매 맞은 이야기, 재혼한 부모님으로부터 소외된 이야기 등 자기 이야기를 술술 쏟아낸다. 원지연 씨는 “관심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해요.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들어줄 어른이 주변에 없는 거죠.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보다 완전히 새로운 누군가에게 어려운 이야기가 더 잘 나올 때가 있잖아요.”
  
▲ 뭉클카 안에서 상담교사 오병근(왼쪽), 박병국 선생 ⓒ문양효숙 기자
 
차 안쪽에서 한 남학생과 상담을 하던 상담교사 박병국 씨는 “부모님이 아니라면 교사, 친구들이라도 제대로 된 신뢰관계, 안정된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아이들이 그게 잘 되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처음부터 ‘내가 담배 피워야지’, ‘말썽 일으켜야지’, ‘불량 학생이 되어야지’ 하고 태어나지는 않잖아요. 모든 걸 환경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지만 좋은 관계 하나가 지대한 힘을 미치는 거죠.”
상담교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뭉클카를 찾아 “○○ 쌤 어디에 계세요?”라며 자기와 친한 선생님을 찾고, 간식을 찾으며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원지연 씨는 “아이들이 어른들은 믿을 만하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한다”며 “좀 더 어른다운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청소년기엔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변화가 극심하죠. 어른은 두 종류잖아요. 철드는 어른이랑 철 안 드는 어른. 이 아이들에게 그런 어른이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더 열심히 아이들을 살피게 돼요.”
밤 12시까지의 강행군, 몸이 부대낄 만도 했다. 상담교사 박 씨는 뭉클카와 아이들을 만나는 거리가 “힘들지만 보람된 공간”이라며 “몸은 지치지만 마음이 지치지 않으니 괜찮다”고 말했다. 함께 있던 상담교사 오병근 씨는 “이곳이 아이들의 힘들고 외로운 마음이 쉴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마음 기댈 곳도, 오갈 곳도 없는 청소년들을 위해 오늘 밤도 화려한 번화가 한 귀퉁이에 작은 차 한 대가 서 있다. 등대처럼 불빛을 반짝이며 청소년들에게 말을 건넨다. “누구도 혼자 울지 않도록, 우리가 여기 서 있을게.”
  
▲ 원지연 선생이 청소년들과 거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 김지혜 선생이 늦은 시간 거리의 청소년들과 상담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 뭉클카에서 청소년들을 만날 때 나눠주는 사탕과 명함 ⓒ문양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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