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기 많은 날에 국수를 널면 다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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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기 많은 날에 국수를 널면 다 쏟아져."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3.07.12 01:17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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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송림동, '국수공장' 이옥진 할머니 혼자서 척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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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먹은 배’라는 말이 있다. 먹은 음식이 소화가 잘돼 쉬이 배가 고프다는 뜻. 딱히 먹을 게 없는 시절이기도 했겠지만, 국수를 먹으면 금방 배가 고팠다. 4,50년 전만 해도 끼니로 국수를 먹는 사람도 꽤 됐다. 국수에 라면을 넣고, 김치를 숭숭 썰어 양을 많게 라면국수를 삶아, 온 식구가 밥상에 둘러앉아 한 끼를 해결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맛’으로 국수를 먹는다. 면발이 쫄깃하고 부드러워야 맛있다. 동구 송림동에 '맛있는' 면발을 만드는 공장이 있다. 이옥진 할머니(75)는 혼자서 반죽하고, 국수틀로 뽑아내고, 판다.
 
 
-국수공장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영감이 저 세상으로 간 지 4년 됐어. 그때부터 혼자 하고 있지. 우리 영감은 쌀 장사에 소주 장사 등 주로 장사만 했어. 댓박으로 파는 소주, 알지? 직장생활은 안 하고 장사만 하다가 50살이 넘으면서 국수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어. 사람들은 끼니대용으로들 사갔지. 처음 하는 일이었지만, 밀가루 반죽하고 국수를 만들다 보니까 노하우가 생겼어.”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좋은 국수를 만드는 방법을 터득했어. 날씨가 이러면 수분이 어느 정도겠다고 생각하는 거지. 오늘처럼 습기가 많은 날에는 국수를 안 만들어. 국수를 해서 널면 마르지 않고 쏟아져. 이런 날씨에는 안 되고, 저런 날씨에는 되고… 실수하면서 배웠지.”
 
 
-얼마 전에 끝난 주말드라마 <백년의 유산>에서 보면 국수를 뽑아 마당에 널던데요.
“수분이 적으면 너무 바싹 말라 뒤틀리고 부서져. 부드러운 면을 만들 수가 없지. 나도 그 드라마 봤어. 바깥에서 어느 정도 말리다가 실내로 들여가 ‘숙성’ 시켜야 돼. 나는 실내에 널면서 선풍기를 계속 틀어줘. 국수는 습기 정도가 참 중요하거든. 어떤 사람은 갓 뽑아낸 국수를 달라고 해. 그게 좋을 것같지만, 그렇지 않아. 며칠 돼야 맛있게 잘 마르거든. 그때 먹어야 부드럽고 쫄깃하지. 또 어떤 사람은 6개월 된 국수를 찾기도 해. 만든 지 오래됐다고 국수가 나쁜 건 아니거든.”

“나는 혈압약, 뇌경색약을 다 먹어. 그런데 일해서인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젊어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어. 국수 만드는 일이 힘들지만 할 만해. 이젠 내 사명이고 운명으로 생각해. 이 국수 만드는 일을 못한다고 하면, 그땐 죽은 목숨이지. 건강이 되는 한 끝까지 할 거야.… 일이라는 게 생각하기 나름이잖아.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들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한 거고. 나는 행복해. 이 나이에 일하는 게 복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 애들한테 신세 안 지고, 손 안 벌리면 자식들도 힘이 나잖아. 지금 시대가 그렇잖아. 부모까지 책임지라고 하면 자식들이 얼마나 힘들겠어. 어쨌든, 우리 애들은 부모가 예전부터 일을 해서인지 신세 안 지는 걸 고맙게 생각하는 것같지는 않아. 당연한 일이구나,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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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만드는 날은 좀더 바쁘시겠어요.
“새벽 3시에 일어나. 습기 있을 때 국수를 해야 하거든. 반죽하고, 국수틀로 뽑고, 널면 아침 6~7시야. 그때 밥 먹고 나서 한숨 자.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은 순 단골들이야. 동네사람들 몇이 사서 나눠갖기도 하고, 교회에서 식사로 내놓느라 많이 사가기도 해. 요샌 국수 좋아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 국수를 맛으로 먹지, 배고파서 먹나.”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평안북도에서 내려왔어. 그후 서울서 살다가 결혼하면서 인천으로 내려왔어. 할아버지는 영종도가 고향이야.… 나는 젊어서부터 놀고 먹고 산 때는 없어. 애들 대학교까지 보내면서 늘 일했지. 여기저기 아프긴 해도 아직 움직일 만해. 팔 다리가 성하니까 하는 거지.”
 
 
-사람들이 국수공장을 잘 찾아 오나요?
“우리 공장은 저녁 7시면 문 닫아. 지나가다 국수를 사는 사람도 많고. 우리는 그냥 ‘국수공장’이잖아. 따로 이름이 없어. 송림3,5동 주민센터 바로 앞이라고 하면 다 알아. 가게가 하도 작아서 어느 땐 ‘나도 지나쳐’.(웃음) 아참, 2년 전엔가, 어떤 사람이 와서 동영상으로 찍어가던데. 인천에서 남겨야 할 데라면서.”

“국수는 멸치국물로 우러낸 게 최고지. 사골국물, 갈비탕, 설렁탕에 넣는 국수는 조금씩 넣으니까 맛있는 거야. 국수만 먹을 때는 멸치국물이 최고야. 멸치 우려낸 국물에 청양고추 좀 넣으면 맛이 아주 깔끔하지. 내가 좀 더 젊었다면 국수 삶아내는 장사를 하고 싶었을 거야. 그래야 남는 장사지. 지금 나처럼 국수 만들어 잘 팔린다면 요새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한다고 하겠지. 조금만 잘 되면 한 집 건너 늘잖아. 오히려 지금은 국수 만드는 사람이 줄어들어. 그러다 보니 종로5가에 있던 기계 사온 데가 없어졌네. 기계를 고치려고 해도 이젠 대구로 연락해야 돼.”

“이 일이 손은 많이 가고, 남는 건 별로 없어. 나도 힘들 땐 누굴 두고 할까 싶어도 인건비가 안 나오니까 그럴 수 없지. 하루에 밀가루 세 포 반죽해서 국수를 만들면 2~3일 걸려서 파는데, 인건비가 안 나와. 나는 내 집이라 세 안 나가니까, 달린 식구 없으니까 혼자 할 만한 거지.”
 
 
-할머니가 만드는 국수 맛은 어떤가요? 국수 자주 드세요?
“우리 국수는 매끄럽고 쫄깃해서 맛이 좋아. 오늘 삶았다가 내일 먹어도 쫄깃해. 나도 신기하다구. 우리는 비싼 밀가루랑 싼 밀가루 섞어서 반죽하지 않고, 좋은 밀가루로만 반죽해. 소금물로 간 하는 것밖에 없어. 내가 이 나이에 돈을 벌어서 뭐하겠나 싶어. 좋은 국수 만들면 되지. 밀가루도 좋은 거 쓰고, 싼 밀가루를 첨가할 것도 없고. 나도 국수를 아주 좋아하지. 잔치국수, 비빔국수 다 만들어 먹어. 내가 만든 국수가 참 맛있어.(웃음)”
 
 
-국수를 쌓아놓은 게 참 가지런하네요. 혼자서 무거운 거 들으면서 일하면 몸이 여기저기 아플 것 같은데요.
“내 성격이 착착 맞는 걸 좋아해. 어질러져 있는 걸 싫어해. '얌전하게' 쌓아야 맘에 들어. 여기 국수는 열 개씩 묶어놓고 3만원이야. 한 개에 3000원. 우리 집은 일반국수용, 콩국수용, 칼국수용을 만들어.… 나중에 국숫집 하고 싶다구? 그땐 내 딸이 하는 가게에 와서 사가. 내가 죽으면 딸이 할 거야. 전에 같이 했는데, 둘이 하니까 벌이가 안 돼. 지금은 딴 데 취직했는데, 아마 이 국수공장 물려받을 거야.”

“힘들 때는 어깨도 아프고 엄청 힘들지. 그때는 침 맞고, 파스 붙이고, 약 먹고… 그때그때 조치하면서 일해. 국수 뽑는 날은 하루에 8시간씩 서 있어. 내가 허리 수술한 적이 있어서 밀가루 한 포도 못 들어. 그래서 무거운 걸 들게끔 만들어놨어. ‘국수 삶아 파는 집’은 많이 늘어났지만, ‘국수 만드는 집’은 거의 없잖아. 가늘게 나오는 이빨, 굵게 나오는 이빨, 칼국수 만들 수 있는 이빨까지 모두 갈기만 하면 돼.”
 
 
-국숫발 단면이 일정한데, 뭘로 자르나요?
“마른 국숫발을 손으로 뚝뚝 자르는 거야. 잘라낸 다음 아랫부분을 탁탁 쳐서 국수꼬리를 맞춘 다음, 손으로 뚝 자르지. 우리도 <백년의 유산>처럼 작두로 잘라낸 때가 있었어. 근데 못 쓰겠더라구. 가루만 날리고 깔끔하게 안 잘려. 손이 최고지.”

“봐, 오늘도 습기가 많잖아. 만든 국수를 잘 관리하지 않으면 눅눅해져서 꽁꽁 싸매놔야 해. 7월은 국수를 만들지 말까봐. 바싹 마른 것도 축축 처지니까. 8월이나  돼서 할까…. 국수 만드는 거 자세히 보고 싶다구? 그때나 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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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현 2014-06-03 00:04:26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는 대구에살고있어서 직접찾아가기가 쉽지않네요.
국수공장에서 만드는국수를 사먹어보고싶습니다.
연락처를 알수있을까요?

유원 2014-06-02 20:44:00
양심적인 분에게 감사합니다.
지자체에서 도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가요?
저도 한번 찾아 뵙겠 습니다.
오래 오래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양경순 2013-07-14 02:05:03
인천에도 전통이 흐르는 국수집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좋네요
배고팠던 시절에 허기진 배를 채워졌던 국수~~~멋찐 역사를 쓰고 있는 이옥진 할머니에게 박수와 찬사를
보냅니다~~오래오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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