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과 꿀이 흐르는 땅, 그 곳을 향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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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과 꿀이 흐르는 땅, 그 곳을 향한 여정
  • 김영수
  • 승인 2013.10.2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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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칼럼] 김영수 / 인천YMCA 갈산종합사회복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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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해방이 되었다고, 노예 생활로 부터의 해방이라는 기적을 이루었다고 모세는 생각했다. 돌아보면 길고 험난한 과정이었다. 말하는 짐승으로서의 삶, 주인의 변덕에 숨을 죽이고, 채찍질 당하며, 아내와 딸은 팔려나가거나 수치를 당했다. 가족이 함께 살 수 있기를 , 매 맞지 않고 살기를, 꿈에서나마 평화롭기를 바라는 이들의 간절한 기도와 부르짖음이 하늘에도 닿고 자신의 심장에도 닿았다. 하여 나섰지만, 노예들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파라오와 권력자들은 완강하고 무자비했다. 아홉 가지 재앙에도 끝나지 않던 싸움은 그들의 장자들이 죽고서야 끝이 났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들이 보낸 군사들을 기적적으로 따돌리고서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향한 첫발을 디딜 수 있었다.

하지만 모세와 히브리인들의 감격도 잠시 뿐, 히브리인 사회에서 일어난 내분으로 위기를 맞는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출애굽기 16:3)는 원망이 빗발쳤다. 굶주림과 추위, 다른 부족의 공격에 시달리던 히브리인들의 원망은 해방의 감격을 순식간에 지워버렸다. 최소한의 먹을 것을 마련하고, 백부장과 천부장을 세워 공동체를 조직하고, 십계명으로 윤리와 질서를 세우고, 전쟁과 외교로 안전을 보장하고서야 히브리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닿는다. 출애굽을 경험한 1세대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살고자하는 욕망, 가지고자 하는 욕망은 본능적이다. 본능에 충실한 삶에는 높은 수준의 윤리와 질서, 지식과 사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합의 등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살기 위해 모여야만 하고, 모여 살기 위해 공동체에 필요한 조직과 윤리, 질서와 합의가 필요하게 되었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배우고 생각하고 합의해야하는 과정이 필요하게 되었다.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와 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합의와 질서는 언제나 갈등하게 된다. 그 갈등을 잘 조절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은 안전하다고 여기며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 과정은 인내와 이해와 관용이 필요한 조심스럽고 긴 과정이다. 인류는 민주주의라는 제도로 그 과정을 잘 이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종종 그 조심스러운 과정이 공동체를 파괴하면서도 그 욕망을 채우려는 시도들에 의해 쉽게 허물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모두가 안전하다고 여기고, 자신만의 행복한 삶을 추구할 권리가 보장되는 복지사회는, 사회구성원들에 의해 의사가 결정되는 민주주의의 토대 위해 세워진다. 힘겹고 조심스럽게 이룬 민주주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향한 그 여정이, 욕망을 충동질하며 승리를 위해 잔혹한 발길질을 해대는 이들에 의해 쉽게 허물어지지 않도록, 경계하며 배우며 생각하고 더불어 노력해야한다.
부정과 부패는 용납하지만 불충은 용납할 수 없다며 으르렁대고, 욕망을 채우기 위해 공동체를 파괴하는 일들이 거침없이 행하여지는 요즘, 비록 자신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끝내 닿지 못했으나, 그 여정을 밝히기 위해 노심초사하던 모세의 심정이 문득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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