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占)보는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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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占)보는 심리
  • 황원준
  • 승인 2013.11.17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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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원준의 마음성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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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중반의 젊은 가정주부가 얼마 전에점(占)을 보러 갔다가 ‘남편이 40세에 죽는다’는 점쟁이의 말을 듣고 충격에 빠졌습니다. 남편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서 고심 고심 속앓이를 해왔습니다. 결국은잠을 못 자고 불안해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입맛을 잃고 먹지도 못하고 점점 살이 빠져가고 있었다. 그동안 남편에게 못해준 일들이 영화처럼 수없이 스쳐 지나가고 심한 죄책감이 들고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였다고 합니다. 남편은 아무 영문도 모르고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 함께 방문하였습니다. 무슨고민이 있는지 식사를 못하고 멍하니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지낸다며 아내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워 하면서도 의아해 하는 눈빛을 보였습니다.

자세한 진료상담을 해보니, 남편은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전문직종의 자영업자이며 주변에 아는 사람이 많고 모임이많다 보니 허구 헌 날 늦은 귀가와 음주가 잦았다고 합니다. 아내는 부산스런 두 아들을 혼자 키우느라고힘든 하루 하루를 보내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대학 때부터 친구들하고 심심풀이 정도로 가끔 점 집을찾았던 기억이 났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 심심풀이로 호기심 반으로, 또한뭔가 큰 대안이 보일까 하는 마음 반으로 은근히 기대하며 점 집을 찾았다 합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40세에 죽을 운명으로 태어났다’며 ‘당신은 과부 팔자야’라는것이었습니다. 남편이 죽는다는 말에 잔뜩 겁을 먹고 있는데, 귀에번뜩이는 점쟁이의 말을 들었습니다. ‘방법이 있다!’라는것이었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두 눈을 크게 뜨고 점쟁이 앞으로 다가가서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물었습니다. 방법은 500만원을 들여 굿을 해서 한을 풀어줘야하고 부적을 사서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오래 사는 거북이를 100만원에 구입하여 방생을 해줘야 대신해서 나머지 삶을 죽는 않고 살 수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내일모래, 2년 후에 40세인데 돈 600만이면 남편을 살릴 수가 있다는데 600만 때문에 남편을 죽게내버려 둘 수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살림하는 가정주부가 600만원이어디 작은 돈인가? 누구한테 말해, 어디서 빌려 온다는 말인가? 결국 만만한 친정엄마에게 자초지종을 말했습니다. 친정어머니는 ‘에라 미친년, 그런 점을 믿냐?’하면서혼을 내더니 ‘그 점집이 어디냐’며 쫓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위 사례처럼점쟁이의 말에 충격이 되어 심적 스트레스를 못 이기고 우울증에 걸려 정신건강의학과에 드물게 방문하게 됩니다. 점쟁이가하라는 굿, 부적과 방생을 하고도 아무런 효과가 없음을 뒤늦게 깨닫고 나서 분하고 억울한 감정으로 방문하기도합니다. 때로는 남편 몰래 돈을 빌려다가 빚이 되어 남편에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다가 심적 스트레스를견디지 못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을 찾게 됩니다.

사례에서보듯이 ‘점(占)’은의학적 측면에서 진료하는 과정과 너무도 흡사합니다. 물론 여기서 점을 보는 사람을 비하거나 필자 역시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지만 점을 의료영역과 견줄 만큼 평가 절상하는 것도 결코 아님을 밝히며,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기바랍니다. 그만큼 환자 입장 또는 마음의 고통이 있는 자의 입장에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기에무슨 말이든지 귀에 솔깃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논의하고싶은 점은 질병 발생이 되었을 때 병원을 방문하여 진료받는 환자가 겪는 정신심리적인 측면에서 증상의 발현, 방문시기, 진단, 처방 및 치료 후 심리적으로 반응하는 행동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방문시기를살펴보겠습니다. 점집을 찾는 시점과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한 시점과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여러분들은 ‘어느 시점에서 병원을 방문하는가?’ 라고 물으면 ‘아플 때’ 라고대답할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아프다고 다 병원에 방문하는 지 다시 한번 자세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어느 날 운동을 갔다 왔는데 기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은기침을 조금 한다고 바로 병원에 갑니까? 아니겠죠. 대수롭지않게 생각하고 넘어갈 것입니다. 그런데 기침이 며칠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멈추지 않고 지속됩니다. 아니면 누런 가래를 보이거나 열이 오른다든지 하는 새로운 증상이 나타난다면 이제는 병원에 가려고 하지 않을까싶습니다. 그렇다고 바로 갈까요? 아닙니다. 감기겠지? 독감이겠지? 라며소위 사우나를 가서 땀을 흘려 보거나 민간요법을 해본다거나 약국에서 일반의약품 약을 구입하여 복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때 환자의속마음을 헤아려 보겠습니다. 정신심리적으로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기간이 길어지거나 새로운 증상이생겨 점차 불안이 증가되기 시작하여 긴장감이 참지 못할 정도의 레벨이 되면 내 의지로, 내 판단으로할 수가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의사를 찾아 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럴 때 진료하는 의사는 정신건강의학과의사가 아니겠지만 신체적으로 아픈 것만을 진찰해주는 것보다 환자가 병원에 방문하기까지의 그런 불안한 마음까지 봐주는 의사가 진정한 “심의(心醫)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측면에서‘3시간 기다렸다가 3분 진료한다’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환자를 봐야만 하는 우리나라의 의료적 현실에서 그런 면까지 자상하게 봐줄 의사가 얼마나 될까요? 과거에는 진찰하는 동네 의사와 자기집안일이나 자식문제도 상의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그런 심리적인 불편함이나 고통을 상담한다는편안한 마음으로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할 수 있겠습니까? 이럴 때 의료영역이 아닌 ‘비의료영역인 점’을 보러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증상을 듣고나면 원인과 진단을 내리는데, 조상 귀신이 씌어서, 돌아가신할머니 산소가 잘못돼서 등등으로 원인을 찾게 된다. 감염질환에 항생제 처방하고, 우울증에 항우울제 처방하듯 그 원인에 따라 무속적 처방을 내린다. 처방은앞의 사례처럼 병숙을 해야 한다, 방생을 해야 한다, 부적을지니고 다녀야 한다고. 정신과 수련받던 시절 정신과 진료받기 전에 병굿을 한다고 하룻밤 사이에 수 백만원이 들었다고 하는 환자들을 흔히 보아왔습니다.

치료 후에가족들은 주치의에게 투사[projection, 책임전가]하기도합니다. 심각했던 정신병적 증상은 입원 및 통원치료로 일상생활을 할 정도로 호전되었습니다. 그러나 손 떨림이 갑자기 생겼다며 합병증이라며 진료비 환불을 요구했습니다. 어떤경우는 점쟁이에게는 굿을 해서 몇 백만을 주었다며 아깝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하면서도, 입원비도 걱정이된다며 호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박을 나갔다가 오더니 16일만에 의사의 권유에 반하며 자의퇴원(discharge against advice)하였습니다. 알고 보니외박을 나갓 이유가 굿을 하였던 것입니다. 의료는 단방약처럼 빨리 치료되기 원하는 국민적 정서와 안되면책임전가식의 투사(projection)를 하지만, 점은 틀리면‘틀리네’ 하고 말면 그뿐이다. 점을 한편으로는 고비용으로 '마음의 위안'을 받으려고 하지만 넓은 의미의 치료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듯합니다.

우리 문화뿐만이아니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점은 인류 역사와 더불어 공생되어 왔습니다. 문명이 발달한 IT시대에도 점도 함께 발달하여 IT를 접목한 점집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한없이 나약할 수 밖에 없어 누군가에게 또는 습관성 약물에 또는 점이나 무속신앙에 치우친 의지를 하게됩니다. 그런 거대한 의존성(giant dependence)의문제 해결을 위한 토속신앙적 또는 민간치유적 접근 중에 하나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정신질환 치료적의미보다 정서적 위안을 위한 폭넓은 인생상담의 정도로 받아드릴 수 있을 듯 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상담해줘야 할 치료적 영역을 사회적 낙인을 두려워하여 회피하는 것을 이용하여 '점'을 통하여 부분적 대리만족을 얻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대신 지나치게맹목적으로 점을 믿고 현실왜곡이나 현실판단력의 손상(impaired reality testing)을줄 정도이거나 직업적이거나 가정적 문제를 일으킬 정도라면, 문제 정도를 벗어나 질병수준으로 정신과적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합니다. 특히 심리적으로 고통을 받을만한 스트레스 요인을 회피하기위한 수단이거나 성격적으로 피암시성(suggestibility)에 약한 사람은 점에서 들은 내용을 현실로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점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건강하게 심리놀이나 게임 정도로 가볍게 받아 들이고현실로 집착하지 않고 경직되지 않는 유연한 사고의 융통성(flexible)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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