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 만들어야 했던 비오톱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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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만들어야 했던 비오톱지도
  • 박병상
  • 승인 2013.11.1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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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의 창]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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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의 비오톱 맵의 등급별 평가도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나라는 복 받았다. 얼마 전까지 분명했고 아직 어느 정도 그렇다. 수명 연장한 뒤 닥친 지진과 쓰나미는 후쿠시마의 낡은 핵발전소 4기를 폭발시켰지만 우리는 멀쩡하다. 지진과 쓰나미가 없는 나라라는 의미가 아니다. 온갖 부정과 부패는 감시가 철저하지 않아 발생하는데, 그런데 하느님의 보우하사, 주민의 삶을 위협하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뿐인가. 첫 조상이 자리 잡기 훨씬 전부터 유구하게 흘렸고 그 덕분에 농사지으며 안정된 삶을 살았던 우리가 크고 작은 강에 콘크리트를 붓고 굴삭기로 직선화시켰지만, 큰 변고는 없다. 역시 애국가 1절 덕분인가.

애국가 1절 때문일 리 없다. 지구온난화로 예전과 달리 자주 헝클어지기는 해도 사계절이 분명하고 농사짓는 시기에 적당히 비가 내린다. 인구에 비해 농토가 넓지 않아도 농사짓기 어려움이 없으니 배곯는 이 비교적 적었다. 황해의 습기를 품은 바람이 백두대간에 부딪혀 비를 뿌리면 화강암 모래와 더불어 굽이쳐 흐르는 강물은 마실 물은 물론, 농사짓기 부족하지 않은 습기를 남겨주었다. 빙하가 뒤덮지 않아 간직된 고생대의 풍적토는 강을 타고 오랜 세월 해변 드넓게 펼쳐져 수많은 어패류의 산란장을 만들었고, 우리는 4계절 풍요로울 수 있었다. 자연재해는 너끈히 완충되었다.

비의 절반 이상이 여름 한철에 집중되고 국토의 65퍼센트가 경사가 깊은 산악이라도 굽이치는 강과 풍부한 숲 덕분에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렸고 우리는 안정된 삶을 구가해왔는데, 언제부턴가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돈벌이와 욕심이 비례하는 토건자본이 갯벌과 강변을 매립해 도시와 공업단지를 만들고 도로와 골프장으로 숲을 파헤치며 자연의 흐름을 끊어낸 이후의 일이다. 어느새 사람들만 몰려 사는 도시에서 자연을 느끼기 어렵다. 부는 바람은 매캐하고 마찰하는 기계의 소음으로 가득해온다. 자연에서 소외된 사람은 폭력적으로 변하고, 자연을 찾지 못하는 자는 회색도시에서 오늘도 진저리친다.

낡은 건물을 부셔 최신으로 높이고 넓히면서, 그게 발전이라 여긴 사람들이 삭막한 도시를 틈틈이 떠나 자연을 찾으러 돌아다니다 지쳤다. 자연을 자연 그대로 보거나 느끼려하지 않고 거기에 도시의 편의를 도입하면서, 획일적 개발이 점철되면서, 식상하게 되었으리라. 요즘 자연을 찾는 사람들은 숲과 강이 파괴된 곳에서 권태로움을 느낀다. 그들도 자연에서 태어난 조상의 후손이기 때문이리라. 자연이 보전된 공간에서 위안과 편안함을 느끼려는 사람들은 도시에서든 도시 바깥에서든, 분별없는 개발로 자연이 붕괴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 차라리 도시에 자연을 도입하는 걸 반긴다. 삭막한 회색도시에 생기를 불어넣어야 시민들은 비로소 이웃을 바라보고 얼굴을 편다는 사실을 반긴다.

확장되기만 했던 도시도 멀지 않았던 과거, 주변에 자연이 넓었다. 넓은 숲이 가까웠고 천렵하던 시내도 흘러들었다. 도시에 자연을 다시 도입하자면 개발 이전의 생태를 알아야 한다. 또한 훼손되었을지언정 현재 상황은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어디를 얼마나 돌이킬 수 있는지 생태적으로 계획할 수 있다. 그때 현황을 알리는 지도, 이른바 ‘비오톱지도’가 활용될 수 있다. 토건자본이 시민의 의지를 왜곡시키며 추동해온 관성을 멈추게 하고, 자연이 들어설 자리를 안내하는 지도로 활용될 수 있는 까닭이다. 숨 쉴만한 공간으로 나와 가족이 사는 도시를 회복시키고 싶은 시민들은 비오톱지도로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인천시의 비오톱지도가 진작 있었다면 문학경기장에서 동암역으로 이어지는 중앙공원이 도로로 뚝뚝 끊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청량산과 문학산 기슭에 수백 개의 식당과 여관이 들어서지 못했을 것이다. 드넓게 육지와 이어졌던 갯벌과 갯고랑이 메워져 해양 생태계를 망가뜨리며 오랜 해양문화를 잊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문학산 정상을 군부대가 차지해 조상의 숨결을 짓누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라도 비오톱지도가 필요하다. 예전과 같은 자연을 회복하지 못할 테지만, 삭막하게 개발된 도시에 생기를 생태적으로 불어넣는데 기반을 열어줄 것이 아닌가. 시민들에게 비오톱지도의 가능성을 알릴 필요가 크다.

20여 년 전부터 유럽에서 일반화된 비오톱지도가 현재 인천시에도 작성되고 있다. 생물(Bio)와 장소(Tope)의 합성어인 ‘비오톱’의 지도는 현재 그 도시가 처한 생태 현황을 도면에 표시한다. 회색도시에 가련하게나마 뿌리를 내린 식물과 그 식물이 만들어내는 공간에 찾는 동물을 표시한 비오톱지도는 삼천리금수강산이 복 받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2000년 서울에서 작성하기 시작한 비오톱지도는 2010년 인천으로 이어졌다. 남동구에서 작성한 비오톱지도는 서구와 계양구로 이어졌고 내년 9월 강화와 교동도의 작성으로 완료될 예정이라고 인천발전연구소의 권전오 박사는 전했다.

“공원녹지의 분포도 한 눈에 알 수 있기 때문에 공원녹지가 부족한 지역을 파악하여 공급하는 계획을 수립할 때도 활용할 수 있으며 자연재해예방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고 권전오 박사가 귀띔한 비오톱지도는 개발 초기 계획부터 난개발을 억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지구온난화와 에너지 위기 시대를 슬기롭게 대처하는 생태도시의 방향을 이끌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개발과 최첨단의 초고층화는 석유위기 시대에 대안이 없다. 석유가격이 치솟는다면 누가 부담이 커질 그런 시설의 증가를 반기겠는가.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이웃과 희로애락을 나누는 도시에서 우리는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도시의 생태성이 회복되려면 외곽의 생태계가 건강해야 한다. 비오톱지도는 도시 바깥의 생태계 회복에 크게 기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외곽의 생태계가 건강하면 도시에 파급되는 자연재해는 그만큼 완화될 수 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칠갑된 도시는 에너지 낭비 없이 유지되지 못한다.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우며 자연재해에 약할 수밖에 없는 회색도시의 대안은 생태성에서 찾아야 한다. 진작 작성하지 못해 아쉽지만 머지않아 완성될 비오톱지도의 활용을 관심 있는 시민과 더불어 적극 모색할 때가 되었다. 도시의 완성은 에너지 과소비를 요구하는 최첨단이 아니라 반가운 이웃이 따뜻하게 만나는 공간의 확대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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