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는 공공을 위한 고민을 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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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는 공공을 위한 고민을 담아야
  • 윤현위
  • 승인 2013.11.28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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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윤현위 / 건국대학교 지리학과 시간강사

2013년 11월 18일자 신문에는 일제히 서울시 종로구 송현동 구 미대사관저 부지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계류 중인 관광진흥법 개정에 관련해서 대통령의 힘을 실어주는 발언 때문이었다. 종로3가에서 인사동을 지나서 정동독서관으로 올라가는 길은 서울도심에서 대표적인 걸을만한 길이다. 덕수궁 정동일대와 함께 도심 역사문화에 있어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의 근현대사에 관한 학술답사도 좋고, 데이트코스로도 제격이다. 주말이면 항상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인사동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삼청동방향으로 가지 않고 광화문쪽으로 좌회전하면 광화문을 만나기전까지 무척이나 높은 담장을 지나야한다. 무척이나 높다. 실제로 3미터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런 표정도 없고 출입문도 폐쇄되어 있다. 덕성여중에서 보면 아무것도 없다. 풀만 무성할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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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송현동 구 미대사관저 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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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대경성정도에 나온 송현동

 송현동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에도 사용된 족보 있는 지명이다. 소나무가 무성해서 만들어진 지명이다. 이 땅은 현재 대한항공 소유다. 원래 이 땅은 일제강점기 식산은행 기숙사로 사용되었다. 식산은행은 당시 산업금융을 담당하던 특수은행이었다. 현재의 산업은행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실제로 식산은행이 해방 후에 다시 영업을 시작한 것은 1954년이었는데, 이때의 은행상호가 산업은행이었다. 해방이 되니 식산은행 기숙사는 흔히 말하는 적산가옥이 되었다. 미국은 기숙사이외에도 주변에 몇 개의 건물을 더 불하받아서 1980년까지 미국 대사관 직원의 기숙사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에 1998년에 삼성생명이 국방부로부터 매입하였고, 2002년에 삼성으로부터 대한항공이 구매해서 현재에 이른 것이다.

대한항공은 여기에 호텔을 짓고 싶어했다. 문제는 입지가 가진 특수성이다. 이 부지 주변에는 학교가 무려 3개나 있다. 풍문여고, 덕성여자중·고교이며 이들 학교는 역사도 짧지 않다. 더군다나 경복궁이 지천이다. 스쿨존과 문화재에 따른 고도제한에 걸린다. 새롭게 건축을 하려고 해도 현행법으로는 16m이상 올라가지 못한다. 어쩜 삼성은 이런 여러 가지 규제 때문에 일찌감치 부지를 매각했을지도 모른다. 정확히는 신세계도 여기에 또 다른 신라호텔을 짓고 싶어했다. 사실 입지로만 치보 이 자리가 나쁘지 않다. 도심에 가까운게 아니라 아예 한 복판에 있다. 각종 시설이 인접하고 교통도 좋으니 비즈니스와 관광목적의 수요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다.

조선의 왕궁과 수십 년 된 오래된 학교들이 있는데 7성급 호텔이 올라간다면 주요 문화재 앞에는 원래 높은 건물을 짓지 않아왔던 도시건축의 룰이 무너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더군다나 고급호텔이 들어오면 주변의 보안과 경호등급이 올라간다. 이것은 아이들이 배우고 뛰어노는 것에 적합하지 않다. 특정 자본에 들어와서 학교수업에 지장을 준다면 그건 말이 안 된다. 2010년에 서울시 중부교육청이랑 대한항공은 이미 한번 행정소송에 맞붙은 적이 있다. 이때도 교육청이 이겼었다. 당연한 결과이다.

문제는 대통령이 힘을 실어준 것처럼 관광진흥법이 통과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법이 통과되면 그간 호텔건설을 붙잡고 있던 규제들이 사라진다. 대통령은 현재의 경제상황과 법개정에 따른 고용효과에 대해서 역설했다. 송현동 부지는 종로-광화문 일대 문화벨트를 잇는 주요한 축에 놓여있다. 여기에 호텔이 들어오면 시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그만큼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법을 개정해서까지 여기에 개발의 여지를 준다면 그만큼 공공성은 훼손될 것이다.

정부수립이래 최대의 단일 재개발사업이었던 종묘 앞의 세운상가재개발 사업은 지지부진하다가 최근에서야 리모델링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법과 제도보다 높으신 분들의 의미와 말씀이 중요하던 가까운 과거의 우리들은 종묘 앞에다가 그렇게 크고 높은 건물을 지었다. 그 사이 종묘는 새삼스럽게 세계문화유산이 되었고, 이제 나이를 먹은 건물을 다시 짓고자 했을 때 문화재청은 개발을 막는데 상당부분 공헌했다. 만약 법안이 통과되서 호텔이 들어선다면 앞으로 공공성이나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논쟁은 불필요해진다. 필요할 때마다 법을 개정하면 된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적산기업과 적산가옥을 불하받은 이들이 대대손손 잘 사는 모습을 지겹도록 보아왔다. 심지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도 자주 나온다. 이번 송현동 ,구 미국대사관저 부지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적산가옥을 미국이 불하받아 사용하다가 이를 국가가 매입해서 다시 재벌에게 파는 모습은 그간 우리의 시대상이 압축적으로 드러나있다. 도심에 얼마 남아 있지 않은 미개발지에 그간 우리의 역사를 굳이 되풀이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현재의 대한항공은 원래 1962년에 대한항공공사였다. 이를 한진그룹에서 1969년에 인수한 것이다. 이 당시에는 한진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들도 많은 공기업들을 인수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한 하와이 이민 1세대들이 정말 고생해서 모은 돈으로 설립한 인하대학교 역시 현재는 한진그룹이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인천에 사시는 분들은 정석공고라고 하면 다들 아실게다. 현재 정식명칭은 정성항공과학고등학교이다. 인하대학교가 새로 지은 도서관이름도 정석학술정보관이다. 정석은 한진그룹의 창업자인 조중훈회장의 호다. 한진그룹이 들으면 조금 억울할지도 모르겠지만 한진그룹은 자신들이 자랑하듯이 조중훈회장이 월남전에서 총알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서 군수물자를 직접 수송하면서 키운 측면도 분명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재벌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주요 알짜배기 기업들을 국가로부터 인수하고 많은 혜택을 받으면서 성장해온 것도 묵과할 수 없다.

대항항공은 40년 넘게 우리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오면서 성장해왔다. 물론 여러부침이 있었고 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잘 살펴보시라 국민들이 외면해서 회사가 어려운 적이 있었나 싶다. 그간 많은 사랑을 받은 기업이다. 보답할 차례이다. 현대식으로 호텔을 지으면 멋지게 지을 것이다. 그러나 호드라지게 벚꽃 핀 정독도서관에서 맞이하는 봄이 더 아름답다. 수백만의 우리들에게 높은 담장을 허물고 그 공간을 개방하면 어떨까? 수십 년 간 외국인들이 사용했던 그 땅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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