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석인 시인이 그립고 또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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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석인 시인이 그립고 또 그리운 날이다."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4.01.27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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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회 배다리 시낭송회, 고 이석인 시인 추모행사로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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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회 배다리 시낭송회는 고 이석인 시인 추모 낭송회로 진행됐다. 25일(토) 오후 2시, 배다리 아벨서점 전시관 시다락방에서는 고 이석인 시인의 친구와 지인을 비롯해 약 50여명이 모여 시인과 지낸 이야기를 나누면서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고 이석인 시인은 1943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났고, 인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미술학부를 2년 수료했다. 경기일보 문화부장을 거쳐 서울신문사와 동아일보사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한때 <어깨동무>에서 편집기자로 일했다. 인천에서 문학동아리 활동을 꾸준히 해왔고, 1973년 시 전문지 <풀과별>에서 추천을 마쳤으며 한국문인협회 인천시지회 회장을 역임했고 제6회 인천시문화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산우가>를 비롯해, <나무생각> <고치속의 잠> <치통> <둥지를 떠나는 새>가 있다. 유고시집으로는 <아른거리는 저편>이 있고 그밖에 <춘향전> 등 몇 권의 편저가 있다. 동아일보사 재직 중에 대장암 수술을 받고 회복이 되는 듯했으나 재발해 1997년 1월 20일 주안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부인과 세 아들이 인천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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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석인 시인을 추억하며 이야기하는 아동문학가 김구연씨.
 
 
 추모 시낭송회를 시작하면서 시인과 오랜 벗인 아동문학가 김구연씨는 '작은 시집' 앞부분에서 “어느 정다운 형제간인들 그토록 날마다 다붙어 살았겠으며 그토록 알뜰히 위하고 보살피며 살 수가 있었더란 말인가. 때문에 나는 누구에게도 표현을 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세상을 버리고 나서 몇 달 몇 년을 두고두고 심한 외로움과 슬픔의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그 분함과 서운함은 십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워질 줄을 모른다. 세상을 편하게 살고자 한다면 잊을 것은 하루속히 잊고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나는 종내 그를 못 잊겠던 것이다. 지금 그가 내 곁에 살아있다면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세상살이가 얼마나 아름답고 신나고 재미있을 것인가. 참으로 안타깝고 그가 그립고 다시 또 그리운 오늘이다”라고 밝혔다.

또 낭송회 마지막 부분에서 인천문인협회 회장인 정승렬 시인은 “한국문인협회인천지회 지회장으로 당선되면서 형의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했다. 열정적인 형의 활동과 형 못지않은 정열을 갖고 호흡을 맞춘 장종권 사무국장이 이루어낸 문협은 그 이전과 이후를 망라해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가져왔다. 이때부터 문협의 회원 수가 획기적으로 늘어나고 기관지 하나 없던 문협에 <인천문단>이라는 정기간행물을 발간하게 됐고, 학생백일장 들을 신설하게 되었다”면서 “끝 무렵엔 인천에 계간지 하나 만드는 것이 소원이어서 <학산문학> 발행을 추진하다가 발행인 문제와 예산이 문협을 거쳐가야 하는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돌연 사표를 내고 말았다. 형은 그런 사람이다. 아니다 싶으면 깨끗이 손을 씻어 버리는 결단력이 있는 분이다”라고 고인을 회고했다.


다음은 고 이석인 시 몇 편이다.


<나무는 숲이 보이지 않는다>

넓은 들이 아니어도 좋다
마주하는 산
산정의 허리거나 비탈에 서서
눈 들어 바람을 보는 눈
바람 너머 구름
구름이 머물다 사라진 하늘
하늘을 보는 눈.

가까운 들녘
황토길을 따라 늘어선 가로수거나
맑은 물
흐르는 물결 따라 도랑을 이룬
풀섶에 버티고 선 잡목이거나
담을 친 뜨락의 상록수거나
눈을 들어 하늘을 보는 눈
눈을 따라 구름을 쫓고
구름 따라 하늘을 보는 눈.

나무마다의 눈 속에
길게 보는 바람이거나 눈이거나
그에게 아픈 시선이 있거늘
그에게 늘어뜨려 너풀거리는
가지와 잎사귀의 모습이 보이지 않듯
나무와 나무 사이에 자라고 있는
숲의 너울거림을 나무는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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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통'에서 묘사된 표현이 실감나게 와닿았다는 참석자.


<치통>

물은 물대로 산은 산대로
흘러가다
멈춰 서서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즐펀히 엎디어 듣고 있는 한 줌 흙.

어느 날
도공의 손 끝에 의해 눈을 뜨고
활활 타는 내열의 가마 속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한 마리 잉어가 되어
푸드들거리다
두께를 알 수 없는 시간의 벽을 허물며
끝내 앓은 만큼의 통증으로
하나의 형태 고운 질그릇이 된다.


<신포동 일기>

한 달에 한 번쯤일까.
아니면 두어 번 가고 싶은 골목에 들러 주점에 자리한다.
그래서 보고 싶은 얼굴들을 만난다.
누가 오래서 온 얼굴이 아닌
그저 그렇게 들러서 만난 얼굴들이 해바라기처럼 모여 앉아 술잔을 비워댄다.
술잔을 비워대며 그저 그렇게 살아온 이야기를 주정처럼 나누다 헤어진다.
그때마다 내게 앙금처럼 내려앉는 한 가지 생각
마치 견고한 부리를 갖지 못한 새 한 마리가
쪼아도쪼아도 허물지 못하는
시간의 벽만 흔들고 있었다는 점이다.


<수인선>

눈을 감으면 어머니의 모습
마주하고 앉은
어머니 나이 하고 똑같은
대야 속에 묻은 주름진 얼굴.

부끄러울 것 없는 눈매로
갈치 자반
밴댕이 가오리를 이고 다녔다.
깨어진 시루를 노끈으로 감아
콩나물을 키우면서도
매끄럽게 머리카락
눈빛 하나만은 정겹게 나를 보셨다.

어서 커서
듬직한 아들이기를 바랐던
꺼칠하던 손마디 따뜻한 체온
대야 속 비릿한 내음에 취해
편히 잠든 얼굴.

덩치 큰 아들 성큼 안아줄
우람한 체격을 생각하며
끝없이 달려가는 꿈의 협궤여
목쉬게 지나온 60평생의 꽃이 핀다.


<꿈속의 잠>

바람 같은 부피로 떠돈다.
산이며 들로 먼지처럼 떠돌다
물결이듯
휩쓸려도 도랑으로 흘러가다
벼랑에도 서 보고
낮은 곳 깊숙이 괴어 있기도 하고
트림처럼 피어올라 흩어지기도 한다.

피어올라 흩어져 구름을 타고
다시 바람이듯 물결이듯
휩쓸려 밀려가면
그 흔한 강물 바람으로 남아
폭풍으로 몰아치기도 하고
물결로서 강줄기를 다스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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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 있는 소리>

떠날 수 있으면 가라
가서 누릴 수 있는 것
네 안에 있거든 가라
네 안에서 보는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일 때
그때는 네게 떠나지 않기 위하여
가는 것을.

보는 눈으로서야
떠도는 섬
섬은 언제나 바람
바람으로 뒤덮여 아른거리는 안개
안개 속으로 가는 일
정녕 떠나고 싶으면 가라

한동안 그렇듯 또 떠돌며
바람 탓인 듯 휘돌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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