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아니라 ‘시각장애’를 앞세우면 그건 구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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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아니라 ‘시각장애’를 앞세우면 그건 구걸이다."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04.03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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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날 기념 인터뷰①] 저시력장애인 사진가 김태훈
오는 4월 20일은 제34회 장애인의 날이다.

유엔(UN)은 1975년 ‘장애인 권리선언’을 발표하고 이듬해에는 ‘1981년을 세계장애인의 해로 만들자’고 선포했다. 이후 전 세계는 1981년을 세계장애인의 해로 지키고 있다. 정부는 ˝장애인 복지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촉구하고 장애인을 올바르게 이해하며 장애인의 재활의지를 고취˝할 목적으로 1981년부터 매년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해왔다.

‘어린이 날’이 어린이를 위한 날, ‘어버이 날’이 부모님을 위한 것처럼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을 위한 날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장애인들은 이 날을 축제처럼 즐기지 못하고 집회와 시위를 하며 힘겨운 싸움을 했다. 정부의 장애인복지정책으로 점점 장애인들이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인천in’은 제34회 장애인의 날을 기념해 장애의 아픔을 딛고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분들을 만나 삶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 듣는 시간을 갖는다.<편집자주>



김태훈 사진가(40)는 중도장애인이다. 한때는 IT 업계에서 ‘잘 나가는’ 직장인이었다. 사고 후 장애를 갖게 돼 직장과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친구, 동료를 잃고 자살 시도만 7차례. 정신과 치료 등을 받다 의사의 권유로 사진을 다시 시작했다.

2009년 장애인 문화 예술제와 장애인의 날 전시, 2010년 ‘서울의 빛과 어둠’ 전시, 2010년 실로암 시각장애인복지관 졸업전 기획 및 출품, 2013년 ‘memories’전 등을 했다. 오는 4월 11일부터 23일까지 ‘사진공간 배다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김태훈 사진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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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훈 사진가 ⓒ 이재은


- ‘사진공간 배다리’에서 하는 전시는 어떤 것인가.

4월 11일부터 23일까지 ‘보다’라는 주제로 소개된다. 시각장애인 사진전으로 총 3팀이 참여한다. 나는 개인전이고, 다른 2팀은 단체전이다. 내가 사진을 가르치기도 했던 팀이 이번에 데뷔전을 열고, 또 하나는 혜광학교 사진부 학생들의 전시가 있다.

‘보다’는 바라본다는 개념이지만 내 전시에서는 제3자의 관찰자시점에 초점을 맞췄다. 총 4개 테마로, 기승전결 개념으로 나눠 관음적인 시선, 갈등을 포함한 인간의 욕구, 박탈감, 상실, 탐욕 등을 담았다.


- 저시력 장애가 있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인가.

시각장애는 크게 세 가지 타입으로 구분된다. 아예 볼 수 없는 전맹, 조금은 볼 수 있는 저시력, 그리고 특이시력이 있다. 나는 저시력과 특이시력을 같이 갖고 있다. 컨디션에 따라 좀 더 보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가변적이다.

빛을 거의 볼 수 없기 때문에 해질 무렵이나 해진 이후 활동을 하는 편이다. 육지멀미가 있어서 정체된 걸 보고 있으면 멀미가 난다. 대상을 계속 움직이게 하거나 내가 수시로 고개를 흔들거나 해야 한다. 10초도 고정된 시선을 유지할 수가 없다.

인터뷰에 나오기 위해 어제는 종일 집에서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 김태훈 사진가는 서울에서 살고 있다. 그의 집 근처 전철역에서 만났는데 그는 15분가량 걸어왔다고 했다. 그 이상 되는 거리는 눈의 통증을 줄여주는 필터가 설치된 경차로 움직여야 한다. 차에는 구급약과 의료장비 등도 실려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사고 나기 전 그는 ‘화려했다.’ 화려했지만 공허했고, 공허했기 때문에 방탕하게 살았다. (무엇보다 돈에 관해서라면)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했고, 1년에 한두 번씩 차를 바꾸기도 했다. “삶의 가치를 느끼지 못해서 방탕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는 건강하지 못하다. 시각장애 외 심근경색과 뇌경련,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 공황 장애, 선단 장애, 환청 환각 환통 등을 앓고 있다. 자살수치도 높다. 의사가 ‘당장이라도 자살할 수 있는 상태’라고 말할 정도다. 이성으로 간신히 지탱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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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전시포스터(왼쪽)와 블로그에 실려있는 ‘in dream'(오른쪽) ⓒ 김태훈 제공


- 인천에서 하는 전시는 이번이 처음인가. ‘사진공간 배다리’ 이상봉 관장과는 어떻게 알게 됐는지.

인천에서 전시하는 건 처음이다. 이상봉 관장과는 그의 제자를 통해 알게 됐다. 혜광학교 사진반 학생이 인터넷에서 내 개인전 소개를 보고 연락해왔다. 그룹 과제라며 인터뷰를 요청해 와서 응한 뒤 혜광학교 사진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두 번 사진특강을 했다. 이상봉 관장이 내가 찍은 사진을 보여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그렇게 인연이 됐다.


- 시각장애인 사진가와 일반 사진가는 어떻게 다른가.

우리나라에서는 시각장애 사진가들을 작가가 아닌 쇼 개념으로 본다. 점점 더 그쪽으로 몰고 가고 있다. 사진이 먼저고 그 다음이 작가다. 사진이 메인이고, “근데 찍은 사람이 시각장애인이래.” 이게 정상이다.

키워드가 바뀌었다. 기업이나 사회에서는 장애인 작가라는 걸 내세운다. 사진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일본이나 싱가포르, 베트남 같은 아시아 지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시각장애인 사진작가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자타공인 시각장애인 사진작가가 없다. 자랑일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에 ‘타(他)’가 붙여지는 게 사람은 어쩌면 내가 유일할 것이다. 찾아보면 한두 명쯤 나올까.

언론이 망친 사람이 있다. 내 제자이자 친구인데 (나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장애를 갖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그는 저시력1급, 지적장애, 장기질환을 갖고 있다. 누가 봐도 장애인이다. 방송은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시각장애인이 사진 찍는다’는 대표적인 케이스가 되자 그는 방송에서 요구하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아무나 찍을 수 있는 사진인데 “시각장애인이 찍었대.”하면 “오, 잘 찍었다.”가 된다. ‘시각장애인’을 빼면 “이게 뭐야?” 한다. 그런 건 구걸밖에 안 되지 않나.

단지 ‘잘 찍었다’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사진작가가 의도한 단어를 보는 사람이 함께 공감하고 공유해야 한다. 작가의 감정이 그림에 나타나고 그걸 보는 사람이 공유할 수 있으면 좋은 그림 아닌가. 사진도 마찬가지다.


- 어떤 사진작가를 좋아하는지 궁금하다.

(그런 질문을 한 기자는 처음이라며 곰곰 생각하다가) ‘욕하면서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 ‘알베르트 코르다’라고 쿠바 사람이다. 체 게바라 전속 사진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바람둥이 같은 외모와 사진작가가 마치 권력가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일본에 소위 ‘똑딱이 카메라’로 찍는 여류사진가가 있다(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고 작품도 몇 천만 원 한다. 그는 자기 눈에 걸리는 것을 순수하게 찍는다. 사진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 파나소닉이나 올림포스 같은 카메라로 ‘오토’로 찍는다. 기계는 중요하지 않다.


- 어떤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나.

단종된 기종이다. 중고로 샀다. 가장 크게 인화할 수 있는 사이즈가 A3밖에 안 된다.


- 후반작업은 어떻게.

보정은 거의 하지 않는다. 사진전에 전시하는 작품일수록 더 안 한다. 출력하는 경우 보정을 잘 못하면 색이 제대로 안 나온다. 내가 보는 것과 일반인이 보는 색이 다르기 때문이다. 밝게 하고 싶어서 색을 조정하면 정안인(정상 눈을 가진 사람)은 아예 하얀 화면을 보게 될 수도 있다. 그 반대의 경우로 마찬가지다. 약간 어둡게 한다고 조정했는데 일반인은 캄캄한 풍경을 보고 있는 거다.


-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하나.

일본에서 개인후원을 해주는 분이 계시다(국내에서는 한 번도 개인후원을 받아본 적이 없다). 일본에는 팬클럽도 있다. 내가 블로그에 올린 사진을 봤다고 한다.


- 인천에 대한 인상을 말해 달라.

인천 분들은 인천에 애정이 많은 것 같다. 주변기록에 대한 작업을 인정해주고 그런 쪽으로 후원해주는 분도 많은 것 같다. 체험하고 함께 공감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서울은 실리 위주이지 않나. 재테크용으로 사진을 산다든지,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한다.

반대로 지역에 대한 애착심이 커서인지 폐쇄적이기도 하다. 자부심도 좋지만 타인을 받아들이는 데 인색하다. 플레이스(장소)는 콘텐츠가 아니다. 인천이라는 콘텐츠(장소)에서 벗어난 것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것 같다.


-> 김태훈 사진가는 혼자 산다. 그러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기 때문이다. 그는 건강하지 않고, 자기 상태를 스스로 컨트롤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는 ‘파인아트 작가’로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시각장애인 사진가’로서 어떤 길을 선호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는 쉽게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약하지만 강한 그를 오는 11일, ‘보다’ 오픈전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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