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금, '줬다 뺏는' 정부
상태바
기초연금, '줬다 뺏는' 정부
  • 조민호 관장(성미가엘종합사회복지관)
  • 승인 2014.09.02 16: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초연금 도입이 수급 노인에게 손해로 귀결되는 현실"

기초연금 첫지급일인 25일 오전 10시, 모든 노인에게 차별 없이 기초연금을 지급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국민연금공단 충정로 사옥(보건복지부 장관 집무실) 앞에서 열렸다. (*사진=한국노총 제공)

지난 8월 20일,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이면서 65세 이상 되는 노인 40만 명이 그간 받아오던 수급비(생계급여)에서 20만원을 삭감하였다. 이유는 지난 7월 25일에 지급한 기초연금 20만원을 소득으로 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수급 노인은 기초연금을 받았다 뺏긴 꼴이 되고, 정부는 줬다 뺏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수급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줬다 뺏는 정부의 논리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수급비를 받는 노인이 기초연금까지 받으면 중복급여가 되기에 생계급여에서 삭감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또 하나는 수급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온전히 지급하면 차상위 계층 등 다른 노인과 소득역전이 발생하여 불평등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모든 어르신께 매월 기초연금 20만원을 지급하겠습니다.”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은 2014년 7월 25일부터 “일부” 시행되었다. 기초연금은 수많은 어르신의 삶에 좋은 영향을 주면서도 사회적 갈등을 키우고 있다. “기초노령연금 2배 이상”은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이 2012년 총선 공약으로 제안한 것이다. 당시 기초노령연금이 9만원 가량이었는데, “모든 어르신들에게 기초노령연금 18만원을 매달 지급하겠습니다.”라는 ‘2배 인상 공약’을 제시하였다.

이 공약은 일제하에서 태어나 6.25를 경험하였으며, 산업화를 통해 대한민국을 일으켰지만, 쓸쓸하게 노년을 보내는 어르신을 위해 후손들이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라고 여겨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도 공약으로 채택했다. 이에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하였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국민행복연금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정부는 “70%의 노인에게,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하여 차감하는 방식으로 최대 월 20만원까지 지급”하기로 하였다. 결국은 “모든 노인에게”, “소득과 관계없이”, “월 2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모든 공약을 파기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70%의 노인에게 월 20만원까지 지급하겠다.”는 것조차 지키지 않는 점이다. '모든 노인'과 '70% 노인'을 말했을 때 "수급 노인은 빼고"라고 하지 않았다.

지난 7월 25일에 기초연금을 받은 노인은 전체 노인의 64%에 불과하여 약속한 70%에 6%포인트 부족하다. 또한 이 땅에서 가장 가난한 어르신인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게는 20만원의 기초연금을 주고 다음 달 생계급여에서 20만원을 삭감하여 “줬다 뺏는 복지”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가난한 노인에게 기초연금 혜택을 주지 않는 것은 기초연금 도입의 취지를 훼손하고, 사회정의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그리고 '줬다 뺏는 기초연금'은 어떤 정책 철학을 배경으로 하는지? 취약계층을 최우선하는 선별복지에도 맞지 않고, 모든 이들에게 혜택을 주는 보편복지에도 맞지 않는다. 줬다 뺏는 것은 인권 침해이다. 인간의 기본권 중에 노후소득보장권이 있고, 기초연금 시행은 낮은 수준이지만 노후세대에 대한 인권보장 정책이다. 여기에서 수급 노인이 배제되는 것은 노후소득보장권의 침해이다.

기초연금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모든 노인에게 드리는 보편적 수당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복지이다. 이러한 취지는 5월에 통과된 기초연금법에도 명확히 명시돼 있다. 기초연금법은 제5조에서 기초연금 감액방식을 다루면서 6항에 감액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 조항을 두었다. 즉 20만 원을 전액 지급하는 대상을 특별히 명시했다. 여기에는 장애인연금 수령자, 기초생활 노인 등이 열거되어 있다.

보건복지부는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관할하는 부서이다. 만약 기초연금만큼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를 삭감할 계획이었다면 굳이 기초생활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20만 원 지급한다고 기초연금법에 명시할 이유가 없다. 더 심각한 것은 기초연금을 받았다 뺏기면서 기존 경로연금, 교통수당마저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일반 노인들은 새로 기초연금을 누리지만, 수급 노인들은 기초연금만큼 생계급여에서 깎이니 기초연금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기초연금 도입을 명분으로 이전에 생계급여와 별도로 받던 경로연금, 교통수당만 오히려 빼앗겨 버렸다. 기초연금 도입이 수급 노인에게 손해로 귀결되었다.

빈곤 노인에게 경로연금은 생계급여와 별도의 노인복지였다. 기초연금이 오히려 빈곤 노인에게 손해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정부가 부당 행정을 벌인 것이다. 정부는 국민과 노인들에게 약속한대로, 기초연금법 취지대로 행정을 펴야 한다. 수급비는 가난해서 지급하는 것이고, 기초연금은 노인이어서 지급하는 것이다. 엄연히 범주가 다른 것을 갖고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가장 가난한 노인에게 기초연금 혜택을 주지 않는 것은 기초연금 도입의 취지를 훼손하고, 사회정의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 소득인정액 항목에서 기초연금을 조속히 삭제해 기초생활 노인에게 생계급여와 별도로 기초연금을 인정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