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안전은 뒷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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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안전은 뒷전인가?
  • 김도연
  • 승인 2010.06.2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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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 신호체계 변경, "사고 위험 크다"


 
 
지난해 9월부터 인천지역 곳곳의 교차로에 비보호 좌회전과 직진후 좌회전 신호체계가 새롭게 등장했다. 정부의 교통신호체계 선진화 방안에 따른 것으로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사항이다.
 
하지만 운전자들 사이에선 선진화라기보다 사고 발생 우려를 낳는 '탁상행정'의 결과라는 지적이 높다. 교통흐름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 '일방적 행정'이라는 것이다.

충분히 홍보도 하지 않은 채 덜컥 체계부터 바꾸고 보는 행정 앞에서 그저 따르는 수밖에 없는 시민들. 여기서도 '소통부재'는 그대로 드러난다. 운전자들은 현실을 반영한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비보호 좌회전의 문제


비보호 좌회전 신호 체계 변경 교차로. 현재 인천에선 모두 350여개가 변경됐다.
 
현재 단일로를 제외하고 신호등이 설치된 인천지역의 교차로 수는 1천183개다. 이 가운데 지난해부터 교통신호체계 선진화에 따라 비보호 좌회전으로 변경설치된 교차로는 모두 350여개, 직진후 좌회전 신호로 변경된 곳은 650여개에 이른다.
 
정부는 비엔나 협약에 따라 앞으로 상당수 교차로의 신호체계를 비보호 좌회전과 직진후 좌회전 구간으로 변경할 예정이다. 직진을 우선으로 하는 교통신호 체계로 변경을 꾀하겠다는 방침. 이에 따라 인천지방경찰청도 앞으로 지역 내 상당수 교차로를 비보호 좌회전 또는 직진후 좌회전 신호로 변경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직진후 좌회전 신호의 경우 운전자들이 빠르게 적응해 나은 편인 반면, 비보호 좌회전 신호는 운전 미숙자들이나 보행자에게 큰 불편을 주고 있다.
 
연수구 연수동의 아파트 주민 김 모(62. 여)씨는 "아파트 앞 교차로가 비보호 좌회전으로 바뀌고 나서 반대편 차선 직진 차량들 때문에 교차로에 진입하기 겁이 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비보호 좌회전 구간은 초록색 신호에 좌회전을 해야만 해 운전 미숙자들의 경우 반대편 차선 직진 차량의 흐름이 끊길 때까지 기다리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형편이다.
 
교통흐름 오히려 역행
 



인천지방경찰청은 인천도로교통공단과 현장 실사를 거쳐 예상 교통량을 기초로 우선 변경 지역을 선정했다고 하지만, 실제 사정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더욱이 일부 구간에선 편도 1차선 도로를 비보호 좌회전으로 변경해 교통흐름이 더 나빠졌다.
 
실례로 계양구 효성2동 치안센터 앞 사거리의 경우 왕복 6차선인 주요 간선 도로와 만나는 왕복 2차선 도로를 비보호 좌회전 구간으로 변경했다가 최근 원상복귀시켰다. 교차로 진입 차선이 한 개 차선이다 보니 비보호 좌회전 차량이 반대편 직진 차량에 막혀 좌회전을 하지 못하면, 해당 좌회전 차량 뒤로 차량들이 한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해 교통흐름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뿐만 아니다.
 
편도 2차선 이상의 도로라도 비보호 좌회전 구간의 경우 직진 신호와 함께 차량 진행 방향의 횡단보도 보행신호가 동시에 켜지게 되므로 비보호 좌회전을 하는 차량이 보행자에 의해 진행이 막히는 사례가 빈번하다. 이 경우 반대편 직진차량의 진행방향을 막게 돼 사고 위험이 매우 높다.
 
계양구 효성동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한 주민은 "가게앞 교차로가 비보호 좌회전으로 바뀌면서 차량흐름이 더 나빠졌다"며 "편도 1차로에 비보호 좌회전을 설치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행정이다"라고 비난했다.
 
실제로 일부 구간은 교차로의 차량 통행량을 잘못 계산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을 정도다.
 
사고 위험 오히려 높아

비보호 좌회전 차량과 횡단보도 보행신호가 동시에 켜져 보행자의 사고 위험이 높다.
 
아직까지 운전자들 사이에서 충분히 인식되지 못해 비보호 좌회전 구간으로 변경된 이후 교통사고 발생이 잦아지고 있기도 하다. 얼마 전 계양구 모 초등학교 앞 교차로에서 사망사고가 일어났다.
 
비보호 좌회전 차선에서 직진을 하던 차량이 상대편 비보호 좌회전 차량을 미처 보지 못해 발생한 통행위반 사례이지만, 가해 차량은 초록색 신호 때문에 관습적으로 직진을 해 비보호 차량을 인식하지 못해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다른 초등학교 앞 교차로 역시 비보호 좌회전으로 변경하고 난 뒤 크고 작은 접촉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연수구의 한 편도 2차로 교차로에서도 얼마 전 비보호 좌회전을 하려던 마을버스와 반대편 도로에서 직진하는 차량이 부딪힐 뻔한 사고가 목격됐다. 다행히 사고 직전 차량들이 서로 멈춰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일부 비보호 좌회전 신호 변경 교차로는 시내버스나 마을버스 노선에 포함돼 있어 대형사고의 위험이 높은 형편이다.
 
이런 이유로 비보호 좌회전으로 변경된 교차로의 일부가 이전 신호체계로 다시 바뀌고 있기도 하다.
 
비보호 좌회전으로 변경된 교차로 가운데 사고유발, 교통흐름 저하, 민원 발생 등의 이유로 원상복귀 조치된 교차로 수는 현재 30개가 넘는다. 전국 6대 광역시 지방경찰청 가운데 가장 많은 수치라고 한다.
 
민원이 많아서일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교통상황을 잘못 예측한 인천지방경찰청의 시행착오라는 지적이 높다.
 
별도의 좌회전 차선 설치해야
 
비보호 좌회전에서 원래 신호로 복귀된 사거리. 
 
인천지방경찰청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검토를 통해 원상복귀가 필요한 구간에 대해서는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사고 위험을 줄이고 교통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좌회전 차선 설치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또 횡단보도 보행신호 역시 교차로 전체에 동시에 시행하도록 하는 것과 충분한 홍보도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교통안전공단 자료에 따르면 비보호 좌회전 구간은 별도의 좌회전 차선을 설치해 직진 차량의 진행을 방해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연수구 주민 김 모(40)씨는 "비보호 좌회전 차량이 보행자와 부딪칠 위험이 높으니 아예 교차로 전체에 동시 보행신호를 주는 게 보행자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일 것 같다"라며 "교통신호 체계 선진화는 보행자와 운전자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차량신호와 보행신호를 분리하자는 의견이다. 또 수십년 지속돼 온 교통신호 체계를 하루아침에 바꾸면서 수개월 동안 홍보로 모든 운전자가 인식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판단을 접고, 운전자의 인식 개선을 위해 충분하고 지속적인 홍보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선 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시민들 사이에서 몸에 밴 습관과 인식을 갑자기 바꾸는 건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충분한 홍보가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인천지방경찰청은 비보호 좌회전 신호로 변경한 지역에 좌회전 차선을 설치하는 것에 대해 "앞으로 지속적으로 검토한 뒤 문제점이 발견되면 개선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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