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도와 평화롭게 살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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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와 평화롭게 살 권리
  • 이창수 법인권사회연구소 준비위원장
  • 승인 2014.09.17 2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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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의 법과 인권 이야기] 3

2014 유엔 세계평화의 날 포스터

 

지난 9월 15일 인천 월미도 앞바다에서는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는 국가의 행사가 있었다. 같은 날 월미공원에서는 64년 전의 이 상륙작전을 위해 미군이 감행한 사전 공습으로 희생된 민간인 영령들을 위로하는 위령행사가 열렸다. 인천상륙작전은 수세에 몰린 국군과 연합군의 반격을 가능하게 했다는 의미에서 볼 때 성공한 작전이었다. 하지만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이 비무장 민간인을 학살할 정당성은 없다. 전쟁은 지휘계통을 가진 무장한 집단들 간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미군의 월미도 거주민 학살 사건을 단순히 인천상륙작전의 일부로 사전 폭격과 기총소사의 군사적인 행위로 보는 시각은 교정되어야 한다. 한국 전쟁 기간 동안에 자행된 수많은 민간인 학살 사건과 마찬가지로 비무장 민간인을 상대로 한 학살을 정당화하는 법적, 윤리적, 도덕적 근거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지난 60여 년 동안 학살을 은폐하고 왜곡하거나 심지어는 피학살 유가족들을 배제해 왔다. 전쟁을 평화를 침략한 적을 격퇴시키고 국가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라는 국가주의적인 발상과 학살의 참상을 직접 당하지 않은 상대적인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 감내해야 할 조건쯤으로 여기는 경향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평화가 과연 군사력의 확보를 통해서 유지될 수 있는가? 국가는 언제나 전쟁을 일으킬 수 있고 국민은 국가의 전시동원명령을 착실히 수행만 하면 평화가 확보되는가? 흔히 평화에는 공짜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공짜가 없다는 말을 곧 누군가의 생명을 요구하는 것으로 곡해하거나 의도적으로 특정 집단과 사람들을 배제해야 한다는 논리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평화는 평화 상태를 지속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전쟁은 전쟁을 억제하고 회피하려는 정치적인 해결 방법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는 불가피하게 전쟁을 수행하더라도 생명을 존중해야 하고 비무장 비교전 상태의 포로와 민간인에 대해서는 인간답게 처우해야 한다는 것이 국제인도주의법과 전쟁법의 기본 원칙이다.

전쟁은 전쟁 그 자체로 사람의 생명권을 박탈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 공동체에 사는 사람들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롭게 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권리가 현실에서 잘 작동되거나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역으로 말하면 왜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욕망이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명권이 ‘전쟁’이라는 명제 앞에서는 무력화되고 실현되지 못했을까? 이 물음은 평화롭게 살 권리를 실현하고 이런 문화적인 인식을 확산시키는 조건을 찾아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한번 생각해 보자. 월미도 원거주자들은 진실로 억울하고 원통하게 폭격의 희생자가 되고 심지어는 거주지마저도 빼앗기고 쫓겨났다. 죽어야 할 법적인 이유와 근거도 없었으며 자신들이 거주지에서 쫓겨나야 할 법적 의무도 없었지만, 64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해자인 미군과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한 법적 배상 등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 즉 인천상륙작전이 갖고 있는 국가차원의 ‘전승기념’의 신화를 만들기 위해서 월미도에 사는 ‘소수의 사람’들의 죽음과 재산권 박탈은 희생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런 공리주의적인 논리는 어떤 면에서 대한민국을 위해서 - 물론 대한민국 자체도 민간인을 죽일 권한은 없다 - 한 마을과 그 주민들의 삶과 인권은 희생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이런 공리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논리는 우리 사회 도처에 있다. 방사능 폐기장 건설 문제와 밀양 송전탑 건설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전기 대란이 온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만약 이런 논리로 방폐장과 대형 송전탑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 주장하는 사람의 앞마당에 이런 시설을 설치해도 괜찮은 건가? 바로 서울을 중심으로 한 국가주의가 지역의 구체적인 삶과 충돌하는 지점이다. 월미도 민간인 희생 사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와 유사한 논리구조를 갖고 있다.

월미도 민간인 희생 사건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분명히 국가가 할 일이다. 하지만 월미도를 전승의 전적지로 만들려고 자기의 주민의 생존과 평화를 위협하는 정책에 동조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지방정부와 지역사회 주민이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야만적이고 반인권적인 인식에 근거한 것이다. 월미도 문제 해결을 위해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대해서 아주 강력하게 목소리를 내야하는 것도 바로 주민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의지이기 때문이다. 인천시는 월미도 민간인 희생 사건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올해는 유엔에서 “인류 평화에 대한 권리 선언”을 채택한 지 30주년이 된다. 오는 9월 21일은 일곱 번째를 맞는 UN 세계평화의 날이다. 모든 국가와 국민이 전쟁과 적대행위를 중단하는 날이다. 그리고 각국 정부는 평화,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과 홍보를 통해서 이 날을 기념해야 한다. 월미도 민간인 희생 사건은 바로 전쟁의 참상과 그 희생자와 유족들의 고통, 그리고 인권과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알게 하는 생생한 현실이다. 이를 적극적인 평화와 인권의 자산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인천이 국가 프레임에서 벗어나 주민들의 자치체임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평화롭게 살 권리는 바로 민간인 희생자들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때만 실현할 수 있는 충분조건이 마련되는 것이다. 평화는 공짜가 아니라, 삶에서 필수적인 공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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