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디어다”-미디어축제로 노는 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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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디어다”-미디어축제로 노는 법(1)
  • 최향숙 나이스미추 기자
  • 승인 2014.09.22 0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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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안미디어축제 류이 예술감독 인터뷰
*[인천in]은 오는 9월 27~28일 개최되는 제11회 주안미디어축제의 개막을 앞두고 축제의 예술감독인 류이 미디어교육연구소 이사장의 인터뷰를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합니다. 인터뷰는 최향숙 나이스미추 기자가 진행했습니다. 
 
 
 
미디어로 노는 법, 창조체험에 빠져들면 나도 모르게, 시간 가는 줄 모르지요. 그렇지만 축제 무대에서 사람들 앞에 나설 때는 누구나 긴장하지요. 첫 공연 첫 상영을 앞둔 분들, 처음 창조체험을 하는 분들에게 꼭 필요한 화두를 소개합니다. 에미상을 수상한 코미디언인 루이스가 ‘천 개의 성공을 만든 작은 행동의 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은 공연을 하는 유일한 길은 형편없는 공연을 많이 해보는 것입니다. 힘들게 공연하는 시간을 쌓아가요. 포기하지 않으면 차차 나아집니다.”
 
≪뉴욕 타임스≫에 칼럼을 쓰고 있는 앤 라모트(Anne Lamott)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칼럼니스트입니다. '글을 잘 쓰는 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군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 중요한 것은 ‘정말 엉망진창인 초안’을 써 보도록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것이에요. 엉망진창인 초안을 쓰면 두 번째 안은 더 좋아지고 세 번째는 더 훌륭한 작품이 나올 확률이 높아지죠.”
 
네, 마을극장에 처음 참여하는 영상 동아리, 마당극 동아리의 주민들에게도 꼭 전하고 싶은 말입니다. 우리 형편없이 망가지고 엉망진창이 되자구요. 즐겁게요~!
 
엉망진창인 작품에 빠져서 서로 박수 치고 격려하는 것, 참 재미나고 좋은 예술작품이 탄생할 때까지 실수도 예뻐 보이고 서툰 것도 우스꽝스럽게 재미있는 것이 ‘공동창작’의 세계랍니다. 성장하는 마당예술 두레패와 마을공동체 관객들이 사람과 세상을 바꿉니다.

 

최향숙 : 오늘 인천 남구에서 미디어축제가 왜 중요한 의미가 있는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물론 미디어축제는 안팎으로 미디어 창조도시 남구를 알리는 대표 축제이지요. 그런데 그 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있어요. 그동안 관에서 주도하고 몇 사람만 만지던 축제를 이제는 민간이 참여를 해서 민과 관이 같이 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주민들이 중심이 되는 ‘우리들의 축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뜻을 갖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힘써서 홍보해야 하고 끊임없이 남구 주민들에게 자부심을 갖도록 알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동네에 이런 축제가 있었어?”라고 한번쯤 으스댈 수 있는 그런 날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알려야 하는 것이라고 얘길 했어요. 맞나요?
 
류이 : 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남구 주민들 가운데서 주안미디어축제를 잘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제대로 알리고 주민과 함께 하려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2012년에 미디어아트축제에서 주민참여축제로 전환하기로 결정을 했지요. 예술인이 만들고 주민은 관람하는 미디어아트 축제가 아니라 주민들이 만들고 주민들이 같이 노는 축제로 전환하기로 한 것이지요. 2013년도부터 ‘나는 미디어다’를 주제로 하여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21개동 마을극장 경연대회를 열었습니다. 마을극장 수상작들이 재미 있었구요, 말하자면 주민들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나 할까요? 문학동 대지명가 빌라 마을에서는 쉼터를 원하는 마을 주민들이 무허가 건물주와 구청, 주민센터 공무원들과 다투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하는 과정을 촬영했습니다. ‘레미제라블’을 패러디해서 뮤지컬 촌극을 만들어서 박수를 받았지요. 학익 2동 14통 마을은 공중화장실과 노인정 문제를 다뤘는데요, ‘바운스’ 노랫말을 바꿔서 뮤직비디오 ‘느낌 아니까~’를 만들어 장려상을 받았습니다. 이 14통 마을에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구청에 이야기도 하고 국회의원들에게까지 ‘노인정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을 했는데 반응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을극장에서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서 상영하자 특별한 일이 생겼습니다. 마을극장에서 그 뮤직비디오를 아주 재미있게 본 남구청장이 노인정을 꼭 만들어야 하겠다고 생각했고 인천시장의 약속을 끌어냈어요. 그래서 올 봄에 인천시로부터 건축비 10억을 지원받았다고 합니다.
 
최향숙 : 아주 좋은 사례군요. 제목처럼 ‘느낌 아니까~’ (웃음) 감성을 자극하는 영상미디어로 정말 제대로 된 ‘소통’이 이루어진 것이네요?
 
류이 : 바로 이것이 주민들이 축제의 주인공이 되기 시작한 첫 발걸음이라고 생각해요. 주민들이 자기 마을에서 공동체 활동을 하고 그 활동을 영상미디어로 표현하는 축제, 자기가 직접 기획하고 만들고 그것을 경연에 붙이고 서로 경쟁하고 소통하고 일 년 동안 묵었던 갈등도 해소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주민들이 하나가 되는 체험을 공유하는 축제가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마을극장이나 주민참여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들이 있지만 말입니다.
 
최향숙 : 어떤 논란이 있었나요?
 
류이 : 주민들이 할 수 있겠느냐? 준비가 안 되어 있다. 21개동 부스를 마련해서 사람들이 안 오면 어떻게 하느냐? 주민들이 참여하더라도 아마추어 수준도 아니고요. 이제 배우는 단계인데 그 주민들이 만드는 콘텐츠를 본 무대에 올릴 수 있겠느냐? 같은 것들이지요. 이제까지 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하는 축제에서는 남구의 주민들이 참여하기 어려웠으니까요, 주민 참여 경험이 없으니까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최향숙 :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직접적으로 지명해 주지 않는 이상 잘 안 나오시죠. (웃음) 그래서 늘 참여하시는 분들이 또 참여하게 돼서 피로감이 쌓이는 것 같아요. 작년 축제부터는 새로이 참여하는 분들이 많이 있겠다 싶지만요. 축제는 기본적으로 묵은 때를 씻고 새로 태어나는 것이라고도 하는데요. 그것이 어떤 뜻인지요? 축제가 그런가요?
 
 
마을극장 21개 동 경연대회가 미디어축제의 중심
서로 싸우고, 이기고 지고 먹고 놀고 두드리면서
묵은 때를 씻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두레 공동체의 대동놀이
 
류이 : 네, 축제는 기본적으로 우리 마을과 이웃 마을 사이 혹은 한 마을 안에서라도 윗마을과 아랫마을 사이에서 편싸움을 하며 묵은 때를 씻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대동놀이입니다. 옛날이야기인데요, 우리 동네에서는 해마다 대보름이 되면 달맞이를 하려고 뒷산에 청솔가지들을 하늘 높이 잔뜩 쌓고 그 한가운데에 대나무를 넣어 달집을 만듭니다. 솔잎에 불을 붙이면 대나무가 타면서 ‘펑’ ‘펑’ 폭발하는 소리를 내는데, 이 소리가 마을의 나쁜 귀신을 쫓아낸다고 믿었지요. 저는 어려서 그 의미는 잘 모르고 그냥 신나서 쫓아다니기만 했지만 말이죠. 달집태우기를 하려면 마을 뒷산의 높은 봉우리를 차지해야 합니다. 그 봉우리를 먼저 차지하려고 이웃 마을 하고 우리 마을 장정들이 대판 싸웁니다. 마을 공동체들이 축제 때 서로 싸우고, 이기고 지고 먹고 놀고 두드리면서 지난 1년 동안의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거든요. 갈등이 없어서 공동체가 아니구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데서 공동체가 있는 것이지요. 줄다리기, 차전놀이, 돌싸움, 고싸움, 동채싸움, 나무쇠싸움, 농기싸움, 횃불싸움, 전부 다 싸움이에요. 경연이 없으면 축제가 안 됩니다. 여성들의 다듬이놀이, 길쌈놀이나 놋다리밟기도 경쟁입니다. 물론 경쟁 이후의 화해와 신명풀이도 많습니다만. 작년 축제에서도 제가 누누이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바라보고 구경하는 데만 익숙한 편입니다. 서로서로 소외시켜서 개체화되는 것이지요. 군중 속의 개체일 뿐입니다. 공동체가 없는 것이지요. 축제에서 주민들이 참여해서 뭔가 만들고 경연하는 것, 한판 붙어보는 그런 공동체 경험이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새롭게 축제를 기획하고 실행하시는 분들은 축제의 본질에 대해서 늘 다시 되새겨봐야 합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예요.
 
최향숙 : 보통 사람들이 공동체라는 단어에 대해서 익숙하지가 않아요. 축제 이야기할 때 공동체라는 말이 많이 들어가잖아요? 축제를 한다고 해서 공동체 의식이 생기나?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고요. 또 하나는 이 축제가 우리 먹고사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래요. 저희 기자들 회의에서 나온 얘기인데요, 또 그들만의 리그일 텐데 우리는 열외 아니냐? 축제를 자기들끼리 즐기는 것 아니냐? 이런 말도 나왔거든요.
 
류이 : 이제까지 1회에서 10회까지 미디어아트 전시는 예술인을 위한 축제였다는 점에서 ‘또 그들만의 리그’라고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주민들이 직접 참여할 공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9회부터 주민참여를 모색하기 시작했고요. 작년 10회부터 주민들이 직접 예술을 창작하고 그것을 전시하고 향유하고 나누는 마을극장을 시작했습니다. 21개 동 마을극장 경연대회가 우리 미디어축제의 중심 프로그램으로 틀을 잡기 시작한 것이지요. 한 번 틀을 잡았으니까 올해에도 계속 갈 것입니다. 미디어축제는 21개 동에서 대표 팀을 뽑아서 그 대표 팀이 5분 영상으로 경연을 벌이고 남구의 최고 영상 팀을 뽑는 잔치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이 마을극장 경연대회가 2~3년 사이에 뿌리를 내리면 그제서야 인천 남구가 미디어 창조도시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엔 하나의 동에서도 여러 팀이 경연을 하는 단계로 발전해야 하겠지요.
 
최향숙 : 그 경연대회를 가지고 세부적으로 더 발전시켜 나가자는 것이지요? 그럼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네요? 한 번 했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류이 : 축제를 일 년 내내 하는 것이지요. 동 내부에서도 몇 개 마을에서, 몇 개 팀들이 모여서 동 축제를 하는 거죠. 영상 미디어로 나를, 마을을, 공동체를 표현하는 것이지요. 이야기를 갖고 있다면 뮤직 비디오도 좋고, 뉴스다큐멘터리도 좋고, 마당영화도 좋고, 어떤 양식이라도 복합장르라도 좋은 것이지요. 공동체라는 것은 우선 나누는 거잖아요. 품앗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 마을에서 힘든 사람들을 먼저 도와주는 거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자원봉사 하고 이웃과 나누고 있잖아요? 똑 같습니다. 그것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며 같이 노는 것이지요. 2012년에 학산문화원에서 ‘우각로 마을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마을영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요. 저는 우각로에 사시는 그 옛날 성냥공장에 다녔던 할머니 이야기를 보고 싶었는데 그 이야기가 없어서 좀 아쉬웠지만, 좋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외롭게 사는 할머니들의 감동적인 인생 이야기를 듣고 혼자 재미있고 말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메시지도 주고 그래서 그 할머니와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장을 만들자는 것이지요. 영상미디어의 주인공이 된 할머니가 당당하게 자기 소외로부터 걸어 나와서 마을공동체의 문을 열고 들어오게 하자는 것이 공동체예술의 첫걸음인 것이지요.
 
최향숙 : ‘미디어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단지 우리가 알고 있는 몇 가지 형식만이 아니라 마을공동체의 중심이 될 수도 있는 영상 동아리와 품앗이까지, 미디어문화축제를 알기 쉽게 설명한 말씀이시네요.
 
류이 : 네. 작년에 21개동 경연대회로 ‘마을극장’의 틀을 만들었다고 한다면, 올해는 이 마을극장을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작년 겨울부터 마당예술 동아리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영상 동아리도 만들 계획으로 있습니다. 마당예술 동아리와 영상 동아리를 만들고 또 마을두레tv도 만들고요. 적어도 3~4년 사이에 동아리 중심의 동 축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주춧돌을 놓는 것이지요. 용현시장 수퍼마켓 앞에서 어느 후배가 술 한 잔을 하면서 이웃 아저씨가 광주항쟁 때 특전사로 참여했던 아픔을 나누었다는 말을 들었어요. 저는 당장 이렇게 생각했지요. “그 아저씨의 이야기가 마을극장에 왜 올라오지 않을까? 올라오기만 하면 1등상을 받을 것 같은데.” 그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나 공연하는 과정에서 그 이야기의 주인공만이 아니라 주인공과 관련된 분들까지도 서로 치유의 예술 행위에 동참하게 될 것이고요. 마을 사람들도 그 과정에서 서로 이해가 깊어지고, 공동체가 새로와지는 것이지요.
 
최향숙 : 무엇이든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거네요. 내 이야기, 우리 이웃의 모든 이야기들.
 
류이 : 그렇죠. 남구는 내 이야기, 이웃 이야기, 마을 이야기가 넘쳐나는 42만 명의 수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는 도시입니다. 이 이야기들을 영상미디어로 표현해서 보여주는 것이지요. 자기표현을 하는 것이 미디어축제라는 것이지요. 이런 창작 모임, 이런 창작 공동체를 만들어서 마을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고 이웃과 나누고 함께 보람을 느끼는 남구의 ‘이야기 나라’ 미디어축제를 키워나가자, 다른 나라 사람들도 와보고 싶어하는 남구다운 축제, 남구사람의 자부심을 키워주는 미디어축제로 설계해나가자는 것이지요.
 

자기표현과 소통이 미디어축제의 본질
‘나’는 미디어를 즐기고 미디어를 공유하고 미디어로 노는 주체
개개인의 삶들이 기록되고 소중하게 남아서 축적되기 시작하면
바로 그것이 마을공동체의 기록이자 표현
 
최향숙 : 그래서 주민참여를 계속 확대시켜 나가고자 하는군요. 21개 동이 지금 준비를 하고 있잖아요? 각 동별로 컨셉이 다를 텐데 그건 동에서 기획해서 만드나요?
 
류이 : 작년에는 마을극장 PD가 마을 동아리를 찾아 나섰지요. 마을 동아리와 함께 기획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주민들이 주로 배우로 출연을 했지요. 주민이 영상을 촬영하고 제작한 것이 아니라 주로 배우 체험을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아직 동네마다 영상 동아리를 만들 역량은 부족합니다. 주민이 직접 참여하고 직접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작년부터 마당예술 동아리를 먼저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인천남구에는 시민단체도 없고, 예술창작 동아리도 없으니까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마당극부터 먼저 자리를 잡아보자고 한 것이지요.
 
최향숙 : 그래서 미리미리 마당극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군요. 축제 준비를 작년부터 해왔네요?
 
류이 : 미디어로 자기표현을 하는 마을 영상 동아리를 만든다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지금 미디어활동가 교육에 참여하는 주민들 대다수가 5~60대입니다. 아무래도 영상미디어가 익숙하지 않은 세대이지요. 보다 젊은 3~40대들이 참여해야 할 때입니다. 경험이나 모델이 없기 때문에 몇 년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지요. 마당예술 동아리를 만드는 것도 몇 년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1970~80년대에 해오던 가락이 있으니까, 더 빨리 정착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마당예술 동아리와 영상 동아리를 함께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주민 참여를 만들어 나갈 것인지 작년 올해 계속 마을 두레패를 설계하고 고민해 왔어요. 2014년에는 마당예술 동아리를 중심으로 마당예술의 터전을 만드는 데 힘을 쏟고, 2015년에는 그 터전 위에서 동네 영상 동아리를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올해 씨앗을 잘 뿌리면 내년에는 마을극장 영상 동아리가 동네마다 한두 개쯤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마을 콘텐츠도 더 재미있게 만들겠지만 말이죠.
 
최향숙 : 마을의 전통과 전설과 스토리가 생기는 거네요?
 
류이 : 그렇죠? 장기적으로 보면 마을에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계속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이 시작되는 거죠. 삶의 기록이 축적되고 축제의 기억이 새록새록 쌓여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묵은 때를 씻고 새로운 것을 맞이하는 축제가 열릴 때 마을은 더 이상 낯선 공간이나 떠나고 싶은 공간이 아니라 친숙한 공간 돌아오고 싶은 공간으로 다시 탄생하는 것이지요.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이사 갔어도 한번쯤은 다시 와보고 싶은 그런 마을 말입니다.
 
최향숙 : 우리 시골이 그런 향수를 갖고 있잖아요. 우리 마을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네요?
 
류이 : 인천 남구가 영상 미디어로 주민들의 삶의 흔적들을 기록하고 그것을 축적해 나간다면 그렇게 될 수 있겠지요. 이제는 역사도 왕의 역사나 장군의 역사가 아니라 민초의 역사, 생활사를 중심으로 보지 않나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추적하는 것을 통해서 그 시대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우리가 획득하는 것이지요. 오늘날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개인들의 이야기잖아요? 내 삶과 관련된 사람들이 흥미롭고 관심이 있는 거죠. 주민참여를 단순하게 표피로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나와 너, 우리가 속살을 내주고 나눠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야 이야기나라에 재미가 깃들어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마을에 살고 있는 개개인의 삶들이 기록되고 소중하게 남아서 축적되기 시작하면 바로 그것이 마을공동체의 기록이자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디어축제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이죠.
 
최향숙 : 감독님 설명을 들으니까 이해가 쉽습니다. 미디어축제를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우리가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미디어가 아니구나, 우리가 바로 미디어 속에서 살아 왔구나라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축제라는 개념 혹은 인식의 문제인데요, 축제를 내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 하는 것이지요. 기존의 축제들은 내가 참여해서 먹고 마시고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즐기고 그게 전부인데요. 유일하게 약간 다른 축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류이 : 약간 다른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유일한 미디어축제를 만들자는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미디어축제는 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하는 축제입니다. 예술인들이 중심이 되는 축제입니다. 서울에서 비엔날레로도 하고 광주도 하고 유럽에서도 합니다. 저희들은 다릅니다. 마을 사람들이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으로 혹은 두레예술로 미디어를 다루고 자기표현을 하는 축제는 아직까지는 세계에서 유일한 것 같습니다. 미디어 발전사, 사람의 자기표현의 발달사, 커뮤니케이션의 역사로 보면 우리가 가장 첨단에 서 있습니다. 작년부터 미디어축제의 큰 주제를 ‘나는 미디어다’라고 정했습니다. 이것은 내 말이 미디어를 통해 영상으로 멀티미디어로 활자로 변환되는 미디어의 대전환의 시대에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 페이스북에서 친구가 보낸 콘텐츠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과 같은 미디어 행동 하나하나가 스스로 의식하지 않더라도 나도 모르게 내가 메시지와 콘텐츠를 매개하고 있고, 나 자신이 미디어가 되어버리는 것을 뜻하는 것이죠.
 
최향숙 : 말씀을 들으니 우리는 수많은 미디어를 이용하고 참여하고 소통하고 하면서도 그 주체인 나 자신이 미디어라는 걸 인식을 못하고 살아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비로소 축제의 주제가 이해가 됩니다.
 
류이 : 바로 그 지점입니다. ‘나는 미디어다’라는 주제는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자각하게 하는 것이지요. “나는 미디어를 즐기고 미디어를 공유하고 미디어로 노는 주체다, 그래? 미디어로 만나는 사람들, 이웃들의 이야기를 같이 표현해서 21개 동 경연대회에서 한 판 붙어보자” 하는 것입니다.
 
최향숙 : 이번 축제의 총 예술감독이시잖아요? 21개 동을 중심으로 큰 틀을 잡을 때 지금 말씀하신 부분들을 이 축제의 가장 중요한 틀이자 핵심으로 두신 것 같은데요.
 
류이 : 네. 그럼요. 21개 동 경연대회가 아직 참여의 폭이 좁고 틀이 안정적으로 완성이 안된 단계죠. 올해 내년 틀을 잡아서 발전시켜야 합니다. 틀이 잡힌다는 것은 동 축제까지 진행한다는 얘기지요. 올해는 공식적으로 동 축제를 안 합니다만, 자발적으로 동 축제를 해보고 싶다는 동이 몇 개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미디어축제가 틀이 잡히면 마을축제 동 축제를 하게 되겠지요. 그러면 주민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진행하는 축제의 본원적인 의미가 살아날 것이라고 봅니다. 스스로 놀 마당을 만들고 스스로 먹거리를 싸오고 스스로 춤추고 놀고 이런 축제로 발전할 것입니다. 마을축제 동 축제가 활성화되면 미디어축제를 인지하는 사람들도 남구 주민의 절반을 넘어서고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하겠지요? 그게 5~6년은 걸리겠지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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