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기대회는 인천체육사 최고의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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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기대회는 인천체육사 최고의 결실이다
  • 조준호 박사(체육학, 인천체육사 전공)
  • 승인 2014.09.27 1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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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대의 대회를 역대 최악의 대회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2014년 9월 19일 제17회 인천아시아경기대회가 개막되었다. 이날은 인천체육사(仁川體育史)에 기리 남을 역사적인 날이다. 하지만 그 마음도 잠시, 최근 경기장과 선수촌 곳곳에서는 여러 문제가 발생되고 있다. 대회기간 내내 활활 타올라야할 성화가 잠시나마 꺼지기도 했고 대회에 참가한 해외선수단은 불평불만이 늘어나고 있으며 자원봉사자들의 이탈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인천아시아경기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다짐하던 인천시민의 열정적 모습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가. 해당 기고에서는 인천의 아시아경기대회 역사와 유치과정을 되짚어 침체된 인천아시아경기대회의 활성화에 일조(一助)하고자 한다.
 
최초 아시아경기대회는 1913년 필리핀에서 시작된 ‘동양올림픽대회’가 모체다. 이 대회를 시작으로 아시아경기대회는 세계적 혼란기인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기본적 틀을 다잡는다. 1949년 2월 인도의 IOC위원인 손디(G. D. Sondhi)는 “아시아의 평화를 기원한다”는 의미 있는 제안을 하였다. 이러한 제안은 지금의 ‘아시아경기대회'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제1회 아시아경기대회는 1951년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되었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제1회 대회는 불참하였고 제2회 대회부터 꾸준히 참가해왔다. 특히 우리나라는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제10회 대회를 서울에서, 제14회 대회를 부산에서 개최한 바 있다. 특히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경기대회의 성공적 개최는 인천에 적잖은 충격이었다. 인천과 부산은 비슷한 항구도시라는 특성이 미묘한 경쟁구도를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부산의 발 빠른 움직임에 자극받은 인천은 동북아의 관문도시란 명성에 따른 이미지 제고를 고려하여 내심 아시아경기대회의 개최를 결심한다.
 
결심이 선 인천은 2005년 3월 2일 대회의 유치의향서를 대한올림픽위원회(KOC)에 제출했다. 이에 관해 대한올림픽위원회의 국제관계특별위원회는 아시아 경기대회의 국내유치를 심사, 곧 4월 7일 상임위를 열고 2014년 제17회 아시아경기대회의 유치를 결정하였다. 그리고 대회 유치의 국내 후보지로는 인천광역시를 만장일치로 의결하였다.
 
대내외에 아시아경기대회의 개최 의지를 과시한 인천은 드디어 대회의 유치경쟁에 공식적으로 뛰어든다. 인천과 함께 아시아경기대회의 개최지로 주목받는 유력한 경쟁 도시는 인도의 델리였다. 개최도시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줄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I)의 심사단도 2006년부터 인천을 2차례 방문하였다. 당시 인천이 실사단에게 내세운 인천만의 강점은 다음과 같다. 우선 인천은 아시아에서 경제 및 스포츠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대한민국의 관문도시라는 점, 국제 수준의 경기시설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 다양한 국제스포츠대회 개최를 통해 안전하고 능숙한 경기진행이 가능하다는 점 등을 내세웠다.
 
인천시는 숱한 노력 끝에 개최지 결정의 순간을 맞는다. 2007년 4월 17일, 모두의 시선은 OCA 회장인 세이크 아메드 알사바의 입가로 모아졌다. 2014년 아시아경기대회의 개최지를 그는 크게 외쳤다.
 
“INCHEON"
 
현장에 있던 인천시장과 대회관계자들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며 크게 포효했다. 그들은 모두 '인천 만세'와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당시 인천은 총45표 가운데 32표를 획득, 인천만의 놀라운 저력을 과시하였다.
 

대회의 성공적 유치

자료출처: 2014 아시아경기대회 인천유치백서(2007) p. 300.



아시아경기대회 개막식과 포스터

이제 인천은 서울과 부산에 이어 국내에서 세 번째로 아시아경기대회를 개최한 도시가 되었다. 즉 인천은 올림픽을 유치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아시아경기대회를 유치한 영광스런 도시가 된 것이었다. 이번 인천아시아경기대회를 통해 인천은 대한민국 체육발전과 인천체육 발전,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서의 인천 위상 제고와 시민의 자긍심 확립, 인천의 생활체육 발전과 지역의 균형적 발전이 가능해진 것이었다.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정부에서도 2014인천아시아경기대회 지원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은 2007년 12월 14일 제정 및 공포되었으며 2011년에는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 2014년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의 지원법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특히 이 법에는 아시아경기대회를 통한 남북 체육교류 조항이 신설되어 남, 북간 체육교류 및 협력, 남북 단일팀 구성 등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진 경우 행정적, 재정적 지원도 가능하다는 내용도 담고 있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인천은 작금의 아시아경기대회를 개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천은 수도 서울의 관문이자 개항의 도시로 스포츠가 가장 먼저 도입된 한국 근대스포츠의 발원지다. 과거 인천은 경기도체육의 중심지였으며 직할시 승격과 함께 진정한 홀로서기를 하였고 광역시 승격과 함께 국제스포츠도시로 성장하였다. 이를 과시하기라도 하듯 인천은 전국체육대회를 5회나 개최했으며 2002년 월드컵과 2005년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 등 수많은 국제대회를 훌륭히 치러냈다. 이제 인천은 아시아경기대회를 통해 세계적 스포츠도시로 준비된 비상(飛上)을 하려한다. 어떻게 얻은 영광의 기회인가.
 
인천아시아경기대회는 인천체육사(仁川體育史) 최고의 결실이다. 우리 모두가 국제스포츠도시 인천의 놀라운 체육사를 기억한다면 더는 나태해질 수 없다. 자칫 인천은 역대 최대의 대회를 개최하고 역대 최악의 대회를 개최한 도시가 될 수도 있다. 인천은 우리 선조들과 선배들이 이룩한 명실 공히 최초이자 최고의 스포츠도시다. 역사는 화살과 같다. 인천체육사(仁川體育史) 앞에 당당할 수 있도록 책무(責務)에 충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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