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행복기사’는 존재할 수 없다 - 첫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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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행복기사’는 존재할 수 없다 - 첫 번째 이야기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12.02 0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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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을 나누다 ⑦-SK브로드밴드 통신기사

“애사심은커녕 자랑스러워할 만한 게 전혀 없어요. 회사는 저희를 ‘행복기사’라고 칭하면서 친절을 강요하지만 우리가 즐겁지 않은데 어떻게 행복을 주나요?”

오늘로(12월 2일) 총파업 13일째. ‘SK브로드밴드’ 소속 노조원들은 사측과의 협상을 위해 매일 서울에 모인다. SK텔레콤 본사가 있는 을지로 주변이거나, (LG유플러스와 연대할 경우) 여의도에 자리를 잡는다. 날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는 외침은 단 하나 ‘고용안정’이다.

진대철(34) 씨와 이명호(36.가명) 씨는 ‘SK브로드밴드’ 부평지회 소속 서비스 기사다. 진 씨는 설치담당, 이 씨는 장애담당 기사로 일하고 있다.

“SK에서 하청업체에 위탁을 하죠. 그럼 그 회사가 또 다른 하청을 줍니다. 사장 아래 소사장, 소사장 아래 또 사장이 있죠. 그렇게 4단계까지 가는 사람도 있어요. 입사할 때 알았다고 해도 중간에 또 다른 업체가 끼어드니까 대부분 본인이 어디에 소속돼 있는지도 몰라요. A라는 회사 이름으로 얼마, B라는 회사 이름으로 얼마가 들어오는데 대체 급여가 어떻게 책정되는지도 말해주는 사람도 없고요. 파업하기 전까지 급여명세서도 없었어요.”

이 씨는 13년째, 진 씨는 3년째 ‘통신밥’을 먹고 있다. ‘하나로통신’ 시절부터 기사로 일한 이 씨는 “급여도 복지도 거꾸로 가고 있다. 예전에는 이렇게 심하지 않았다”고 했다. 일한 만큼 가져갈 수 있었고, 등급을 매겨 급여를 깎는 일도 없었다.
 

▲ 3년 전 입사해 설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진대철 씨.
 

통신기사는 위험한 직업이다. 안정장비도 없이 벽을 타야 하고, 비 오는 날에는 감전 위험에 노출된다. 하나로통신에 입사했을 때 이 씨는 3개월 수습기간 동안 ‘선배’를 따라다니며 일을 배웠다. 요즘에는 그런 교육조차 제대로 시키지 않는다. 인원보충이 급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생계에 쫓겨 이 일을 하게 된 사람이 많다. 파업 후 사측은 너희가 근로계약서에 동의하지 않았냐고 하는데 사실 계약서도 제대로 쓰지 않고 고용된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올해 3월 30일 SK브로드밴드는 노조를 결성하고 부분적으로 경고성 파업을 했다. 사측은 교섭에 성실하게 응하지 않았고 중재위원회에서 몇몇 지역에 쟁의권을 줬다. 수도권과 일부 지방 조합원은 단체행동을 하기로 결의하고 지난 11월 20일 총파업을 선포했다. 수도권만 800여명, 울산, 대구, 광주, 전주 등 지방에서 올라온 조합원들까지 매일 1천여명이 모인다.

그들의 요구는 첫째, 직접 고용하라. 둘째,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전체 기사들을 대표하는, 말하자면 ‘대장’격인 서울지부장님이 하신 발언이 기억에 남아요. 현재 SK는 통신업계 1위잖아요. 그룹으로 치면 삼성이나 현대 다음이죠. 삼성, 현대는 생산설비가 있어서 해외지사도 많고 공장도 많죠. SK는 아니에요. 국내에서 서비스로 몸집을 키웠어요. 그 서비스를 담당한 사람이 우리죠. 우리를 쥐어짜서 큰 건데 하청업체에 넘겼을 뿐 나중 일은 모른다고 하는 거예요. 모른다고요? 정말 그럴까요?”(진대철)

“저희는 평가기준이 매우 많아요. 기사 1명당 한 달 기준 7-8명의 고객에게 무작위로 전화를 걸죠. 서비스에 만족하셨냐고 물어요. 대부분은 ‘만족’한다고 하겠죠. 저희는 ‘매우 만족’이 아니면 안 돼요. ‘만족’도 점수가 깎이죠. 해피콜 점수가 좋지 않으면 반성문을 써요. 같은 접수가 두 번 들어오거나 서비스를 받은 고객이 고객센터(106번)로 전화를 걸어도 나쁜 평가를 받습니다. 이런저런 근거로 기사마다 1등급에서 5등급까지 등수가 매겨지는데 등급에 따라 급여 차감금액이 달라요. 1등급과 5등급의 편차가 40만원 정도 납니다.”(이명호)

1등급이 5만원 깎일 때 5등급은 40만원 깎이는 식이다. 급여가 차감되지 않는 달은 없다. 매달 급여액이 다르지만 누구 하나 “이런 사연으로 이런 금액이 나왔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다. 등급별로 모아놓고 교육을 시키기도 하는데(1등급은 예외) 늘 듣는 말은 “더 잘 하자”, “더 열심히 하자”는 얘기다.
 

▲ 서울 집회 모습.(이명호 제공)
 

“저는 기본급이 없어요. 개통(설치) 건 별로 수당을 받죠. 조금이라도 더 벌려고 밤늦게까지, 주말에도 일해요. 고객이 ‘매우 만족’하시길 바라며 거슬리는 일이 있어도 꾹꾹 참죠. 제가 만능 슈퍼맨도 아닌데 시키는 일은 다 해줘야 해요. 그렇게 일하면 뭐하나요? 자재비라고 해서 비품 사용도 업무비 명목으로 빼요. 월급 받으면 허무해요. 열심히 한 보람이 없는 거예요.”(진대철)

차가 꼭 필요하지만 주유비를 주지는 않는다. 전화 통화할 일이 많지만 통신비를 주지도 않는다. 평일 8시반에 출근해서 10시간 이상 근무한다. 토요일도 평일처럼 일한다.(노조 생긴 이후로 조금 줄긴 했다) 일요일에는 당직을 서는데 한 달에 두 번 꼴로 차례가 돌아온다. 명절 근무도 기본이다. 이명호 씨는 남들처럼 귀성차량에 실려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게 ‘꿈’이라고 했다.

“SK는 특히 이미지로 먹고 살죠. 요즘에는 ‘10년의 편지’를 광고하고 있는데 좋은 얼굴, 깨끗한 이미지 밑에 저희 같은 사람이 수천 수만명 고생하고 있는 거예요. 통신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고객할인이나 이벤트를 많이 하는데 그 부담을 고스란히 AS기사들이 받아요. 고객들 요금을 싸게 해주면서 회사가 돈을 더 내놓는 게 아닙니다. 우리를 쥐어짜는 거예요.”

총파업 기간 고객 업무는 누가 할까. 현재는 대체기사가 들어가 있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직원과 소규모 통신사 기사들을 끌어 모았다. “서비스 접수가 들어오면 당일 혹은 다음날 처리하는 게 기본이었거든요. 지금은 최소 일주일 정도 대기하라고 안내한대요. 과부하가 걸린 거죠.”

이 씨는 지난해 결혼을 했다. 첫 아이 출산으로 출근을 못하게 돼 당일 아침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축하해요” 같은 인사는 없었다. 상사는 대뜸 “너 안 나오면 누가 일하냐”고 했다. “대체 인력이 없으니 피해가 고스란히 옆 사람한테 가요. 서로서로 힘든 거죠.”

“입사 3개월 된 사람이랑 저처럼 13년 된 사람이랑 월급이 비슷해요. 매해 1년짜리 계약을 하니 경력이 인정되지 않는 거죠. 산재도 없고 퇴직금도 없어요.”(이명호)

“저는 4대 보험 가입도 안 돼 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에요.”(진대철)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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