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살이의 잔혹함을 돌아보게 하는 이 땅의 큰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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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의 잔혹함을 돌아보게 하는 이 땅의 큰 나무
  •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 승인 2014.12.31 17:3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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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 이야기 (1) : 전주 삼천동 곰솔

새해 첫날, 나무컬럼니스트로 활동하고 계신 고규홍 선생님의 [나무 이야기], 그 첫 번째 이야기를 게재합니다. 나무이야기를 통해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제공할 [고규홍의 나무 이야기]는 앞으로 한달에 한번 독자 여러분들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눈이 참 많이 나리던 날, 전주에 다녀왔습니다. 올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자주 찾게 된 전주입니다. 다른 일 때문에 이루어진 발길이지만, 여느 곳에서처럼 나무 만나는 일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전주라면 더더구나 그렇습니다. 생명의 존귀함, 혹은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짚어보게 하는 우리의 나무 ‘전주 삼천동 곰솔’ 이 있는 곳이니까요.

널따란 길 옆에 우리의 전주 삼천동 곰솔이 가지 위에 하얀 눈을 소복히 얹은 채 가만히 웅크리고 있습니다. 뜻밖의 아픔을 겪어야 했던 나무이건만, 그때의 상처까지 고스란히 품어 안은 채 이제는 적이 평안해진 모습입니다. 자주 찾아보아서인지, 혹은 오래 된 눈길에 익숙한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흰 눈 소복히 쌓인 마당 가운데에 서 있는 곰솔은 흉한 모습이어도 그리 나쁘지 않게 가슴 깊이 평안하게 파고 들어옵니다. 죽음을 이겨내고 떨쳐 일어난 생명의 큰 함성이 담긴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다시 새 삶을 살아가는 반쪽도 채 안 되는 나무 한쪽에서 무성하게 돋아난 푸른 솔잎이 싱그럽습니다.

나무가 사람 때문에 겪으며 하릴없이 흉측해진 상처를 애써 외면하려고 싱그러운 솔잎이 무성한 쪽에 오래 머무르면서 나무를 바라봅니다. 바라보면 볼수록 나무는 사람의 마을에서 펼쳐질 수밖에 없는 매정함,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 주는 고행의 수도승, 혹은 거리의 랍비를 닮았습니다. 참 많은 곡절을 거치며 살아온 나무의 생김생김에서 우리네 인생살이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합니다. 탐욕에 얼룩져 서로의 생명을 앗아가며 살아야 하는 이 험악하고 참담한 세상살이! 나무는 그 혹독한 시련을 딛고 생명을 붙들어 안았습니다.

이 나무는 온전히 살아있던 시절, 살아있는 곰솔 가운데에는 가장 아름다운 나무로 여겨졌던 나무입니다. 널찌거니 펼친 나뭇가지의 모양이 마치 학이 하늘을 날아오를 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해서 ‘학송(鶴松)’이라는 근사한 별명으로 불리던 나무입니다. 지금은 전주역으로 이어지는 전주시의 주요 간선도로가 놓였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곳은 사람의 발길이 그리 많지 않은 전주시 외곽의 한적한 산마을이었습니다. 나무가 있는 자리는 인동장씨 가문의 선산이었고, 나무는 가문의 선산 묘역을 표시하기 위한 표지송이었습니다. 오래도록 사람들의 보살핌으로 나무는 평안히 이 자리에서 잘 자랐습니다.

 

그러다 1990년대 초반에 이 지역을 중심으로 택지 개발 사업이 벌어지면서 문제가 벌어졌습니다. 나무 바로 옆으로 8차선 도로가 뚫리고, 자동차들의 왕래가 잦아지자 나무는 몸살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를 견디려면 시간이 필요했던 거죠. 그러던 어느 날, 나무가 갑자기 푸른 솔잎을 한꺼번에 후드득 내려놓았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나무 밑동에 여덟 개의 예리한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안에는 독극물이 투여된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택지 개발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개발이익에서 소외된 누군가가 벌인 일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게 2001년 여름입니다.

아름답던 나무가 본래의 모습을 잃고, 지금처럼 처참한 몰골로 살아남게 된 건, 오로지 나무가 사람의 마을 한복판에 자리잡았다는 이유 뿐입니다. 사람에 의해 사람의 마을에 들어와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려고 안간힘을 다하던 나무가 마침내 사람에 의해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그래도 나무는 쉬이 생명의 끈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나무가 그렇듯, 나무는 스스로 제 생명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살아남으려 애썼습니다. 나무가 그나마 빠르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전주의 많은 시민들의 돌봄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많은 시민들은 나무를 그냥 떠나보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온갖 궁리를 하며, 나무를 되살리기 위해 애썼습니다. 물론 나무를 예전 모습 그대로 되돌린다는 건 불가능한 상태였지요. 그래도 나무의 생명만큼은 온전히 남기고 싶었습니다. 살아 있어야 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나무에 모아지면서 전주 삼천동 곰솔은 차츰 기력을 되찾았습니다. 이미 부러져나간 대부분의 가지는 그렇다치고 애면글면 살아남은 네 개의 가지만으로 나무는 다시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전주 삼천동 곰솔은 살아나기 시작했고, 사람들과 더불어 전주의 상징이 됐으며, 나무 옆으로 난 길은 ‘곰솔 길’이라는 이름의 큰 길이 됐습니다.

곡절을 겪으며 살아남은 전주 삼천동 곰솔을 바라보면 언제나 우리 사람살이를 돌아보게 됩니다. 때로는 나무 앞에서 온갖 세상의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자신의 흉악한 몰골이 드러나는 듯해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그게 서러워 눈물이 배어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땅의 큰 나무를 찾아다니는 내내 전주 삼천동 곰솔은 잊지 못합니다. 사람과 나무가 더불어 산다는 것! 그것을 생각하게 하는 매우 큰 의미를 던져주는 나무인 까닭입니다.

 

□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이 원고는 홈페이지 솔숲닷컴(http://solsup.com)의 ‘나무를 찾아서’ 게시판에 함께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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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혜 2015-01-01 13:14:13
나무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나무를 통해 삶을 되돌아 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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