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젊다는 것” <생각보다 맑은>
상태바
“이 땅에서 젊다는 것” <생각보다 맑은>
  • 김정욱 영화공간주안 관장/프로그래머
  • 승인 2015.02.01 14: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정욱의 영화이야기] 10

다른 나라에 비해 자국 영화와 드라마 사랑이 유별난 한국에서도 애니메이션은 유독 찬밥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대가에서부터 신카이 마코토 같은 젊은 애니메이션 작가들까지 일본 애니메이션의 골수 팬들도 많고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눈의 여왕>이 천만 명 넘는 관객을 동원한 사실을 보면, 한국인들은 결코 애니메이션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유독 토종 애니메이션에 애정을 주지 않는다.

문화관광체육부 산하 한국영화진흥위원회에서 운영하는 국립영화학교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도 일찌감치 애니메이션과를 창설해 운영 중이며, 최근에 <돼지의 왕>,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등 몇몇 애니메이션들이 선전을 해주었지만 너무나 가끔이라 심지어 우연한 해프닝으로 여겨질 지경이다. 우리에게 한국 애니메이션은 아직까지도 ‘영화’이기보다는 여전히 ‘만화영화’인 듯하다.

그러나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는 희망을 알리는 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바로 한지원 감독의 <생각보다 맑은>으로 감독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재학시절부터 졸업작품까지 만든 <럭키 미>, <사랑한다 말해>, <학교 가는 길>, <코피루왁> 등 총 4작품을 엮은 옴니버스 작품이다.

감수성 넘치는 스토리를 인물보다는 배경에 집중하는 작화 스타일로 풀어내며 1인 작업을 하는 이 무서운 신예 감독은 놀랍게도 올해 26살의 청춘이다. 젊음은 도전이며 무모이며 과감이며, 무엇보다 꿈을 향해 돌진하는 저돌임을 실감하게 하는 또 한 명의 어린 감독이다.

1월 29일 오후 3시 30분경 여수시에서 일가족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아내와 아들은 자동차에 탄 채 바다에 빠져 숨져 있었고, 남편은 한 아파트에서 시신이 발견됐다. “아기와 부인이 용주리 인근 바다에 있다. 나만 살아나와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긴 유서를 토대로 한 경찰 조사 결과, 남편은 자신의 부인, 아들과 함께 목숨을 끊기 위해 자동차로 바다에 빠진 후 혼자 살아나왔고, 이후 집으로 돌아와 번개탄을 피우고 자살했다. 정확한 경위는 조사 중이나 생활고로 인한 극단적인 선택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오늘 접한 이 기사에서 필자가 놀란 것 또한 이들의 나이였다. 3살 난 아들과 함께 자살한 이들 부부는 불과 25살 동갑내기였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이렇게 극과 극의 청춘의 삶이 공존한다는 사실이 실감되지 않는다. 젊음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엄청난 자산이며 그 자체로 커다란 재능이지만, 이 땅의 누구에게 젊음은 앞으로 힘들게 살아갈 날들이 너무 많은, 매일매일 쌓여가는 해결할 수 없는 빚이었다 보다. 정지우 감독의 영화 <은교>에서 노작가 이적요는 그의 마지막 도서출판회장에서 젊은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다시 어려질 수는 없겠지만, 그 어림을 부러워하는 세상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