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년, 3월1일 정오... 끝나지 않은 역사의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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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3월1일 정오... 끝나지 않은 역사의 고리
  • 정대민(인천미디어시민위원회 기획정책위원장)
  • 승인 2015.03.03 1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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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마이의 미디어로 세상헤집기> 10.
 
인류가 생겨난 이래 모래알처럼 셀 수 없는 사람들이 태어났고 죽었으며 또 태어나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속에서 별처럼 셀 수 없는 사건들이 벌어졌고 잊혀갔으며 또 생겨나고 잊혀가고 있다. 인간의 기억이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록을 한다. 우린 그 기록을 “역사”라 명명했다.

1800년대를 살은 독일의 실증주의 역사학자 레오폴트 폰 랑케는 역사는 더도 말고 빼도 말고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것이기에 감정이나 가치 판단에 있어 주관성이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고 했다.

1900년대를 살며 <역사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영국 외교관 출신이자 역사학자 E.H 카아가 랑케와는 다른 논리를 폈는데 '사실'이라는 것은 자루와 같아서 그 속에 무엇인가를 넣어주지 않으면 사실은 일어서지 않는다고 했다. 즉 어떤 전문가가 세심히 어루만져줘야 일어선다는 얘기고 그 전문가란 곧 역사학자란 말씀이다. 카아는 또 역사란 역사가와 사건의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도 했다.

자 그럼, 카아의 관점에서 우리 민족의 주관을 가지고 역사가가 되어 과거와 대화 좀 해보기로 하자. 엊그제가 3월1일, 삼일절이었다. 1949년 10월 1일, 일제에 항거한 순국선열을 추모하고 우리 민족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양력으로 3월 1일이며, 3.1운동에서 보여준 민족의 숭고한 자주독립정신을 영원히 기념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적혀있다. 지금도 학교에서 부르는지 모르지만, “기미년 3월 1일 정오 터지자 빗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 날은 우리 의요 생명이요 교훈...” 삼일절에 매년 부르며 류관순 누나를 기렸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류관순 누나를 모르는 이는 없겠으나 16세의 나이에 3.1운동에 참가하고 이후 주도까지 하여 옥중에서 그 영웅적 생을 마감한 여걸이라고 잠깐 언급해본다.

3.1운동은 국내외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919년 3월에서 5월까지 3개월 동안 조선총독부 공식집계기록으로 약 106만 명이 참여한 최초 최대의 항일집회였다. 당시 조선 전체 인구가 일천육백팔십만명 정도였으니 대단하다 아니할 수 없다. 물론 8천명에 가까운 숫자가 사망했고 부상자만 1만6천명에 육박했으며 체포된 사람만 4만7천명을 밑도는 비극이 있었다. 그러나 비극의 사건으로만 끝나지는 않았다. 해외 한인동포에게 미친 효과는 기본으로 치고 중국의 5.4운동을 비롯해 인도와 이집트, 인도차이나, 필리핀의 독립운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다. 특히 비폭력의 평화적인 독립운동 방식은 1919년 4월5일부터 시작된 인도 간디의 사타야 그라하 사브하(진리수호) 운동에 큰 힘을 주었다고 한다. 하여 3.1운동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피압박민족의 독립운동 가운데 첫 봉화였고 정의와 인도주의, 인류평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남겼다고 역사는 기술하고 있다.

E.H 카아의 관점에서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그런데 패망한지 70년이 지났는데도 당시 전쟁유발국 일본은 대화를 진정 회피하고 있다. 개인이든 국가든 역사에서 흠하나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너네 역사네 우리 역사네를 떠나 죄 없는 양민을 학살하고 청순한 여성들을 성의 분출구만으로 삼은 행위는 씻을 수 없는 역사적 범죄다. 구렁이 담 넘는 사과 말고 통렬한 사죄와 보상의 책임이 뒤따라야한다. 아, 물론 카아의 말이 틀렸으므로 과거와의 대화 따윈 필요 없고 또 카아의 다른 강론인 역사는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이 틀릴 수 있으니 재팬니스 너네님들 맘대로 해석하겠다고 하시면 할 말은 없다.

강제규 감독의 영화 <MY WAY>는 한일합작 영화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관점보다 전쟁이라는 참극 속에서 모두가 피해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전쟁을 유발시킨 쪽은 엄연히 가해자인 것만은 변할 수 없다. 인정할 건 해야 역사의 고리를 풀 수 있다. 고리를 풀어야 문을 열고 서로를 마주볼 수 있지 않느냐 그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평범한 사람들이 각성해가며 진실을 향해 국경을 넘고 해협을 건너 끝없이 요구해 나갈 것이다. 그것이 일본에게 침탈당했던 상처받은 국가들의 길이며 그 국가의 국민 개개인의 마이 웨이다.

요즘 일제치하 독립운동가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훈장까지 받았던 故유영 판사에 대해 1심을 깨고 친일반민족행위로 판결한 서울고법 곽종훈 부장판사와 친일파 재산권에 대해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에서 소급입법금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내가며 친일파 후손들의 사욕에 제동을 건 수원지법 이종광 판사의 이야기가 SNS에서 회자되고 있다. 매우 고무적인일이다. 비록 처음 단추를 잘못 꼈더라하더라도 어느 쯤에서는 바로 잡아놓아야 미래에 수고스러움이 덜하지 않을까...... 

“과거의 일을 과거의 일로서 처리해 버리면, 우리는 미래까지도 포기해 버리는 것이 된다.” <윈스턴 처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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