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나로 기억되고 싶은 나” <스틸 앨리스(Still Al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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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한 나로 기억되고 싶은 나” <스틸 앨리스(Still Alice)>
  • 김정욱 영화공간주안 관장 겸 프로그래머
  • 승인 2015.04.17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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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욱의 영화이야기] 20.
 
 

미국 최고 대학 중의 하나인 콜롬비아 대학의 언어학과 교수인 40대의 앨리스는 대표적인 미국의 성공한 여성이다. 남편도 같은 대학의 생물학과 교수이며 큰 딸과 사위는 변호사에, 둘째 아들은 의사이다. 유일한 걱정거리가 있다면 세 자녀 중 막내딸이 배우가 꿈이라 대학을 안가고 극단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미국 상류층의 지식인 앨리스의 인생은 완벽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사소한 건망증이 생기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폐경기 증상일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 사소한 건망증들은 결국 조발성 알츠하이머, 즉 치매로 밝혀지고 그녀의 삶은 점점 깊고 어두운 수렁으로 빠져든다.

미국 아카데미시상식 여우주연상 등 전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여주주연상만 20개 이상을 수상한 줄리안 무어 주연의 영화 <스틸 앨리스>의 줄거리이다. 영화는 완벽한 인생을 살아가던 한 여자가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는 슬픈 여정을 애잔하고 담담하게 그려낸다.

알츠하이머는 병에 걸린 환자 자신은 물론 주위의 가족들까지 상대적으로 더 큰 고통을 받기에 무서운 병이다. 남편은 미래의 불안감에 일에 더욱 몰두하고, 앨리스의 알츠하이머가 유전에 의한 것을 안 자녀들은 자신과 미래의 자식들을 심히 걱정한다. 하지만 알츠하이머 환자가 아니라 가족과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여전한 앨리스'로 기억되고 싶은 앨리스는 사라져가는 기억의 범위 안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그녀는 사라지는 뇌의 기능을 붙잡으려 발버둥치는 대신에 아름다웠던 추억들을 간직하고자 노력한다. 여기에 가족들의 이해의 노력과 그 여정에의 동참이 함께 하는 가슴 시린 영화이다.

영화의 원제는 리사 제노바의 동명 소설이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하버드 신경학 박사 출신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박사과정을 하던 중 당시 80대였던 할머니가 알츠하이머라는 소식을 듣고 놀라움과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곧 할머니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과정과 알츠하이머를 겪는 할머니의 심정은 과연 어떨까 하는 의문을 소설로 쓰게 된다.

또 하나 안타까운 점은 이 가슴 아프지만 감동적인 소설을 영화로 만든 리처드 글랫처 감독이 최근에 위게릭병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의 불치병 투병과정의 묘사가 너무나 사실적이고 직접적으로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한국도 2030년에는 양가 부모 네 명 중 한 명은 알츠하이머 환자가 될 거라 예상될 정도로 발병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하니 당연히 남의 나라 남의 이야기는 아니다. 견디다 못한 가족이 환자를 요양원에 보내거나, 심지어 간호의 스트레스와 경제적 압박에 지쳐 살해와 자살로 이어지는 비극도 간간히 뉴스를 통해 전해진다. 긴 병 앞에 장사 없고 효자 없다는 옛말이 틀린 말이 될 수 있도록 하루 빨리 확실한 치료법과 예방법이 나왔으면 한다.

4월30일 전국 개봉하는 영화 <스틸 앨리스>는 4월18일(토) 오후4시 인천 남구의 예술영화관 영화공간주안의 <제24회 사이코시네마 인천>에서 좀 더 일찍, 좀 더 깊이 있게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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