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간의 시기심 - 이은미 단편 아동소설 <닭벼슬 머리 우리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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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간의 시기심 - 이은미 단편 아동소설 <닭벼슬 머리 우리 형>
  • 이한수 선생님
  • 승인 2015.05.21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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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수 선생님의 교실밖 감성교육] 제27회
 
2010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화당선작인 이은미의 <닭벼슬 머리 우리 형> 신문 삽화 (출처=강원일보)
 

아이가 학교에 다시기 시작하면서 시기심 때문에 마음이 삐뚤어지는 것 같아서 속상한 부모님들 많을 겁니다. 우리 교육이 어떻게 하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까 하는 방법론에 몰두하고 있으니 학교 문화는 온통 경쟁과 시기심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기심은 추한 마음이라고 가르치면서 시기심을 부추기는 이율배반의 모순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성취동기를 부여한다는 건 어떤 거창한 논리를 덧씌운다 할지라도 결국 시기심을 자극하는 것일 뿐이라는 걸 부인하기 힘들 겁니다. 어떻게 보면 ‘시기심’ 문제는 교육의 처음이자 끝이며 삶의 모순을 규명하는 키워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미운 마음이 생기기 시작하는 걸까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가까운 혈육 간이라도 시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적절할 듯합니다. 감히 우애(友愛)의 도리를 폄훼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사촌’ 정도로 자리 잡았겠지만 형제간에도 시기심은 어쩔 수 없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시기심은 유아기 때부터 집안에서 이미 싹튼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학교 문화가 경쟁 심리를 조장하여 시기심이 더 심해지도록 만드는 건 사실입니다만 가정이 시기심의 근원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아이의 삐뚤어진 심성은 혈육지간에서 비롯되니 부모는 시기심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모의 차별이 형제 사이에 얼마나 심각한 상처를 내는지 들여다봅시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속담처럼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마음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형제간에 다툼이 생기고 의(義)가 상하면 십중팔구 부모의 차별을 의심하게 됩니다. 부모님에게 차별을 받는다고 느끼는 아이는 마음에 심한 상처를 받습니다. 자존감이 형성되지 않아 매사 자신감이 없고 좀 삐뚤어지면 비행을 저지릅니다. 부모 보기에 꼴사나운 짓을 일삼으며 부모 속을 태웁니다. 그런데 그런 미운 짓이 대부분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랍니다. 그렇게라도 자신을 드러내어 이목을 끌지 않으면 아이는 더 살아갈 수 없다고 합니다.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이 부모의 차별 때문일 수 있다니 부모 된 입장에서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부모는 아이의 비행(非行)으로 속이 다 타들어 가는데 그게 다 부모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니 그 아픔은 이루 말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지혜롭게 공평하게 대한다 하더라도 아이는 차별받는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니까요. “왜 나만 갖고 그래?” 하면서 대드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면 ‘이 아이가 버릇이 없어지는구나’ 생각하게 마련이고 더 어긋나기 전에 따끔하게 야단을 칠 필요가 있다 싶어지는 게 당연합니다. 부모는 진정으로 아이를 위해 마음을 다잡는데 아이는 부모의 훈계를 차별로 받아들입니다. 그때부터 악순환이 거듭됩니다. 아이는 집에서 외톨이가 되고 밖에 나가서도 자신감이 없어집니다. 나중에는 튀는 행동을 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에게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어른들 보기에는 용납할 수 없는 비행일 뿐입니다. 그러니 낙인찍힐 수밖에 없게 되고 헤어날 수 없는 구렁텅이에 갇히게 되는 겁니다.
 
이 악순환의 구렁텅이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말은 쉽습니다. 아이를 나무라지 말고 지켜봐 주라지만 그게 어디 쉽습니까. 자식이 아니라 원수다 싶을 정도로 마음이 닫힌 상태가 되면 회심(回心)을 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차별받아 자존감이 없는 아이를 제대로 보살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아이 때문에 절망 상태에 빠진 부모를 치유해야 합니다. 병들어 아픈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돌보는 건 불가능합니다. 먼저 부모가 기운을 회복해야 아이를 편안하게 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심전심 동병상련으로 공감할 만한 이야기가 있으면 참 좋습니다. 자신이 겪은 아픔을 또 누군가가 앓고 있구나 하고 눈물이 글썽이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간접 체험이 반복되면 각성(깨달음)은 저절로 옵니다. 너무 급하게 단시간에 깨달으려고 조바심하지 말고 거듭거듭 같이 아픔을 나눕시다.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하는 마음이 들도록.
 
엄마 얼굴은 늘 슬퍼 보인다. 엄마는 형이 사춘기가 빨리 찾아온 거라고 사람들에게 말한다. 하지만 아빠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 같다. 아빠가 언제 형에게 매를 들지 알 수 없다. 항상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아니, 이거 누가 이랬어?”
사촌 형이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겁이 덜컥 난다. 소리 나는 방으로 달려간다.
“참이야, 네가 이 게임기 점수 지웠냐?”
“아니.”
“그러면, 너지? 야! 일어나봐.”
사촌 형이 씩씩거려도 형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고개를 까닥거리며 음악을 듣고 있다. 닭벼슬도 춤추듯 까딱까딱 흔들린다.
“너, 계속 이럴 거야?”
“…….”
“이렇게 나오면 너 학교에서 아이들 돈 뺏은 거, 작은아빠에게 다 말할 거다.”
형은 사촌 형과 같은 학교다. 형이 아이들 돈까지 뺏다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하지만 내가 이런저런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갑자기 형이 벌떡 일어나 사촌 형 가슴팍을 머리로 받아버린 것이다.
“그러잖아도 억울해 죽겠는데. 네가 봤어?”
사촌 형이 뒤로 벌렁 넘어졌다.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난 일이라 사촌 형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울음을 터트린다.
“무슨 일이야?”
어느 틈에 큰엄마가 방으로 들어온다. 뒤이어 눈에 잔뜩 힘을 준 아빠와, 얼굴이 붉어진 엄마가 보인다.
“사촌끼리 이게 뭐하는 거야? 진이 너, 머리카락을 그 빨강인지 파랑인지 희한하게 물들일 때부터 알아봤다. 할머니도 계신데 어디서 싸움질이야. 그리고 듣자니까, 애들 돈까지 뺏고 다니는 거냐?”
아빠가 숨을 씩씩 몰아쉰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형의 주홍빛 닭벼슬을 움켜쥔다. 아빠가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는 엄마를 향해 냅다 소리 지른다.
“당신, 빨리 가서 가위 찾아와. 머리가 단정해야 생각도 올바른 거야. 순 날라리같이 이 꼴이 뭐냐고!”
 
초등학생이 이 정도로 막무가내면 부모는 얼마나 낙담이 심할까요. 정말 버릇없는 모습이라 옆에 있으면 한 대 쥐어박고 싶어집니다. 소설 장면을 보고 이럴진대 실제 제 자식이 이런 꼴로 막 나가면 차라리 부모 자식 인연을 끊고 싶어질 겁니다. 착한 동생을 걸핏하면 때리고 학교를 더 못 다닐 정도로 비행을 일삼으니 집에서 만날 혼나고 얻어맞는 이 아이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동생이 태어나면서 형은 찬밥 신세가 되었습니다. 엄마는 엄마대로 갓난아기를 돌보느라 첫째에 대해 신경을 덜 쓸 수밖에 없습니다. 찬밥 신세가 된 형은 서운하겠지요. 심해지면 자아상실의 위기에 빠집니다.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한 대안을 찾지 못하면 정말 위험해집니다. 폭력적 행동을 하는 등 비행을 저지르는 건 아이에게는 살기 위한 절박한 몸부림입니다. 머리카락을 닭벼슬처럼 깎고 물들인 아이를 보면 어른들은 십중팔구 혀를 차며 눈총을 줍니다. 어딜 가나 이런 시선을 받으니 아이는 방어심리가 강화될 수밖에요. 튀는 행동과 용모가 자칫하면 관계의 단절을 가져오지만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이 방법이라도 써야지요. 나 좀 봐달라고 몸부림을 치는데 꼴사납다고 백안시하니 문제는 더 꼬여갑니다.

이 이야기가 아이의 시기심을 차분하게 살펴보는 좋은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부모님들 마음 아프게 하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가족 간에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가 생기는 끔찍한 일을 겪지 않으려면 우선 나 자신부터 차분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내 탓이요’ 하는 게 참 아픕니다만 평화를 위해 이바지하는 마음으로 임하면 기쁨이기도 합니다. ‘롤프 하우블’이라는 시기심 전문가는 시기심이 꼭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랍니다. 그 마음 잘만 다룬다면 성취동기가 될 수도 있답니다. ‘카인 콤플렉스’라는 심리학 용어가 수천 년 전해져 내려온 ‘카인과 아벨’ 설화에서 따온 것을 보면 시기심은 인간 본연의 심성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기심은 추하다는 분별심보다 누구나 다 그렇다는 공감이 필요합니다.
 

인성여자고등학교 이한수 선생님
블로그 http://blog.daum.net/2han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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