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호출해 전주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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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호출해 전주에 갔다
  • 이희인 여행가 겸 작가
  • 승인 2015.05.22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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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인의 <길 위의 책, 길 위의 맛> 10. 전주


['2015세계 책의 수도 인천' 기획]?길 위의 책, 길 위의 맛?
추억이 호출해 전주에 갔다
- 찾아간 곳 / 전북 전주
- 읽은 책 / 양귀자, <한계령>

생각보다 너무 많이 변해버렸네요. 해질녘, 전주 한옥마을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서울의 지인이 대뜸 내게 건넨 말이다. 그도 전주 향교에서 거행될 사진 페스티벌 행사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었다. 그는 해마다 이맘때 열리는 페스티벌에 3년 만에 찾아왔다고 했지만 나는 초행길이었다. 그러니 그가 한옥마을의 변화에 안타까워하는 탄식을 나는 실감할 수 없었다.

이상한 일이다. 우리 국토의 구석구석을 많이 다녀봤다고 자부하는 편인데, 이상하게도 전주는 제대로 만나본 적이 없다. 옥정호나 순창, 김제나 군산, 진안이나 무주 가는 길에 도시를 잠시 거쳐 갔을 뿐이다. 한번은 삼천동인가 하는 곳의 막걸리 골목에서 상다리 휘어지게 나오던 막걸리 상을 받은 적도 있지만 그 저녁에도 전주를 바로 떠난 것이다. 그러니 이번 전주행이 처음이라 할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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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가는 길에 어떤 책을 가져가면 좋을까 고민하며 정보를 뒤적여 봤다. 위대한 대하소설 <<혼불>>의 저자 최명희가 전주 사람이요, 요즘 잘 나가는 젊은 작가 백가흠이 전주와 가까운 익산 사람이다. 그러나 최명희의 대하소설을 당장 읽어낼 수도 없었던 데다, 백가흠의 소설 중에 전주에 진득하게 터한 작품은 찾기 힘들다는 게 아는 분의 조언이었다. 그러다 문득 아주 좋아했던 소설집 중 하나인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을 떠올리게 됐다.

이 책은 부천시 원미동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언젠가 부천이나 경기도 얘기를 풀어놓게 될 때 다룰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부천과 부평, 주안, 역곡, 김포, 시흥 등의 공간을 매력적인 여행지로 다루기는 쉽지 않을 듯해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것이다. 그러다 작가 양귀자의 고향이 전주인 것을 기억해냈고, 그 연작 소설 중 가장 좋아했던 작품이자 고향에 대한 향수가 가득 담긴 마지막 단편 <한계령>을 또 기억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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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행 버스에서 몇 페이지를 읽는 사이 이러한 짐작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실로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는 반가운 소설이었다. ‘전화에서 흘러나오는 여자의 목소리는 지독히도 탁하고 갈라져 있었다.’ 정확히는 아니지만 거의 외다시피 했던 소설 <한계령>의 첫 구절은 고향 버스터미널에 첫발을 내딛는 것처럼 설렘 가득한 호흡으로 나를 반겼다. 그리고는 머리와 마음속에 남아있던 대로 소설은 술술 풀려 갔다.

“혹시 전주에서 ...... 철길 옆동네에서 살지 않았나요? (중략) 혹시 기억할는지 모르겠지만 난 박은자라고, 찐빵집하던 철길 옆의 그 은자인데 .....” (중략) 박은자. 그러나 나는 그 이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큼이나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가 하면 전화 속의 목소리가 찐빵집 어쩌고 했을 때 이미 나는 잡채가닥과 돼지비계가 뒤섞여 있는 만두 속 냄새까지 맡아버린 뒤였다. 하지만 나는 만두 냄새가 난다고 말하지 않았다. 세월이 그간 내게 가르쳐준 대로 한껏 반가움을 숨기고, 될 수 있으면 통통 튀지 않는 음성으로 그 이름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음을 알렸을 뿐이었다. (양귀자, <한계령>에서)

작가의 평온한 일상에 걸려온 뜻밖의 전화. 오랫동안 잊고 살아 이제는 먼 옛날의 일이라 생각했던 과거의 호출은 언제나 사람을 당혹스럽게 한다. 반가움은 잠시고 곧바로 경계와 의심의 둑을 쌓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노래를 즐겨 부르던 고향 친구 박은자의 전화는 작가로 이름을 높인 화자의 일상을 뒤흔들어 놓는다. 가까운 부천의 나이크클럽에서 미나 박이란 이름으로 가수 생활을 하는 자신을 꼭 한번 찾아올 것을 종용하는 옛 친구. 화자는 그러마고 대답을 한 뒤 주저하고 머뭇거리며 친구와의 만남을 차일피일 미룬다. 대신 고향과 유년의 일들, 힘겨웠던 가족사, 특히 부친이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가족을 위해 젊음을 다 바친 큰오빠에 대한 안타까움을 찬찬히 그려내고 있다. 그 회상과 추억의 과정은 요란하거나 복잡하지 않지만 누구나 공감할 만한 잔잔한 힘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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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향교의 너른 마당에서 거행된 사진 페스티벌의 밤은 아름다웠다. 흡사, 페르도 알마도바르 감독의 영화 <그녀에게>에 나오는 명장면, 그러니까 스위밍 풀이 있는 너른 정원 마당에서의 ‘쿠쿠루쿠쿠 팔로마’를 부르던 낭만적인 콘서트의 장면을 연상시켰다. 그 밤에 봄은 슬그머니 뒷문으로 떠나고, 풋내 나는 여름이 어설피 대문을 열고 들어와 서성였다. 향교 마당에서 축제의 밤을 보낸 뒤, 사진가들이 어울려 한옥마을 끝에 있는 가맥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게 맥주의 준말이라는 ‘가맥’은 전주 특유의 서민적인 풍류를 안주 삼아 마시는 독특한 문화였다. 전주의 밤은 정겹고 아름다웠다.


친구의 호출에도 불구하고 만남을 차일피일 미루던 <한계령> 속의 화자는 마침내 미나 박이 마지막으로 노래하기로 되어 있는 밤에 슬쩍 집을 빠져나와 나이트클럽으로 향한다. 거기서 옛 친구인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한 여자 가수가 무대 위에서 불러대는 노래에 흠뻑 빠져들며 자신의 가족과, 특히 인생의 험하고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온 큰 오빠의 모습을 회상한다. 그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고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구름 몰고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양희은 노래, <한계령>)

이미 알고 있는 노래였지만 대학 때 이 소설을 읽은 뒤 ‘한계령’을 진정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소설 때문에 어떤 노래를 좋아하게 된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가맥집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신 일행 중 마지막 무리들이 노래방에 쳐들어갔을 때 문득 이 노래가 떠올랐다. 하지만 부를 수는 없었다. 한참 달아오른 흥을 깰 수야 없는 노릇이었다. 소설 속 화자가 옛 동창인 미나 박을 끝끝내 직접 만나지 않은 것처럼, 이런 노래는 혼자 가슴으로 나지막이 불러야 할 노래일 터였다.

어느 책에선가 <<원미동 사람들>>을 일컬어 박태원의 <<천변풍경>>,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세태소설의 하나라는 얘길 했다. 그렇다면 나로서는 세태소설 취향인 것이다. 대학 시절 <<원미동 사람들>>을 읽으며 내가 자라고 커왔던 인천의 송림동, 그 퇴락했던 동네 풍경과 완벽하게 겹치던 경험을 떠올리며 얼마나 놀라워했던가? 시골에서 상경해 단칸 지하방에 6식구를 먹여 살리는 노가다 인부의 이야기인 <비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라든가, 미스터리 형식을 차용한 <한 마리 나그네 쥐>, 중년 남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연애담인 <찻집 여자> 같은 단편에 나는 얼마나 가슴이 먹먹했던가. 특히 동네 슈퍼마켓끼리의 출혈 경쟁을 매우 유머러스하고도 디테일하게 그려낸 <일용할 양식>같은 단편을 접하며, 실제로 동네에서 쌀집과 작은 미니슈퍼를 했던 우리 가족의 삶이 떠올라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마음으로 읽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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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미동 사람들>>의 대미를 장식하며 연작 소설 중 가장 아름답고 원숙한 느낌을 주는 단편 <한계령>에는 모두 3곳의 지리적 공간이 얽혀 있다. 연작 소설의 모든 작품이 터하고 있는 부천 원미동이 한 곳이고, 노래 가사를 통해 삶을 은유하는 상징적 공간인 설악의 한계령이 또 다른 한 곳이며, 현실과 이상 사이에 떠밀려 사는 우리를 줄곧 호출하는 추억의 공간인 전주가 또 다른 장소를 형성한다. 현실에 치여 살면서, 이상의 삶에 도달하지 못한 고달픔과 상처를 이따금 과거의 시간에서 치유 받으며 우리는 살아간다. 숨 가쁘게 달려가는 현실 속에 추억의 가치는 늘 폄하하면서 말이다.

추억이란 그런데 그처럼 무능하기만 한 것일까? 과거란 무기력하여 빨리 잊고 극복해야만 할 시간일까? 추억이 밥을 먹여주진 않지만 그러면서도 추억으로 인해 별의별 짓을 도모하기도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되돌아볼수록 추억이란 온전하게 남아있지가 않다. 그래서 작가 양귀자도 (미국 작가 토마스 울프의 책을 아는지 모르는지), ‘누구라 해도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비감어린 푸념을 소설 어딘가에 적어놓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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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해가 중천에 뜬 대낮에 간신히 눈을 떠 유명한 왱이집에 가 콩나물국밥으로 해정을 했다. 그리고는 거리로 나서 전주의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무슨 까닭이일까. 내 고향도, 내 추억이 어린 장소도 아니건만 먹거리와 상점들이 늘비한 한옥마을의 번잡함 속에서 나는 종종 길을 잃는 기분이었다. 내 고향도 아니건만, 고향이 바뀌었다고 탄식하는 아주 이상한 상실감이었다.

어떻게 붙잡아 두는 게, 어떻게 부수고 새로 짓고 만들어가는 게 추억을 오롯이 살리면서 고향의 살림살이도 살리는 길인지 우리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외국과 우리의 몇몇 도시에서 그런 일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며 떠들곤 하지만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곳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걸 꼼꼼히 고민하고 머리를 맞대 답을 얻기도 전에 자본과 행정의 불도저는 이미 낡고 오래된 것들에 손을 대 허물어뜨리기 시작한다. 추억의 가치는 누군가의 배를 불리는 이익과 탐욕에 늘 한 발 뒤지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세상은 과연 아름다운가? 늦은 점심으로 또 다른 맛집인 삼백집에서 전주비빔밥에 모주를 한 잔 마셨고 늦은 저녁엔 허름한 가맥집에서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뒤 터미널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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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는 활동하던 한 SMS의 모임들을 탈퇴했다. 그리고 나를 초대해오는 SNS들에 대체로 문을 걸어 잠그기로 했다. 몇 해 전엔 학창시절 사귀던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신 일도 있는데 그게 잘 한 일이었는지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지금은 추억이 너무 자주 말을 걸어오는 시대다. 추억이 범람하고 추억이 상품화돼 찾아오는 시대다. 수십 년 그리워만 했던 사람도 작정하고 스마트 폰을 뒤적이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고스란히 간직해두었으면 좋았을 추억이, 판도라의 상자를 잘못 여는 바람에 망가지는 씁쓸한 경험을 수도 없이 듣게 된다. <한계령>의 화자가 끝내 옛 친구를 만나지 않은 것, 추억이라는 판도라 상자를 섣불리 열지 않은 것에 나는 이번에도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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