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와 도표, 번호가 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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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와 도표, 번호가 된 사람들
  • 김영수
  • 승인 2015.06.23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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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컬럼] 김영수 / 갈산종합사회복지관 관장

 

‘1번’ 환자, ‘14번’ 환자, ‘35번’ 환자...

메르스가 확산되면서부터 각종 매체를 통해 매일 듣고 보는 이름들이다. 물론 개인의 비밀보장을 위해 확진 순서대로 매겨진 번호들로 구별하고 있지만, 번호로 불리는 이름들만으로는 각각의 환자들이 고유한 삶과 인격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점은 간과되고 만다. 아울러 1번 환자를 통한 2차 감염, 14번 환자를 통한 3차 감염 등 감염경로를 도표화하고, 감염지역과 확진자의 경유병원들이 지도에 표시되어 나타나면서 몇몇 환자들은 ‘슈퍼 전파자’로 명명되었다. 하지만 감염경로를 표시한 도표에도 각각의 사람들이 직면한 위기는 표시될 방법이 없다.

현재까지 몇 명이 사망함으로써 치사율은 얼마, 오늘 현재 확진자 몇 명, 의심자 몇 명, 시설 격리자 몇 명, 자가 격리자 몇 명 등 매일 공식발표가 나오는 순간 다양한 통계가 쏟아져 나오고, 그 통계의 결과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위기의 심각성을 구체적 뒷받침 해준다. 세월호의 아이들처럼, 각각의 아들 딸들이 406명 중 한 사람이 되어 버린 것처럼 한 생명이 스러지고 그 생명의 우주가 사라져도 치사율의 수치만 높이는 변수가 되어버리고 만 것 같다.

마치 젊은 날 즐겨 불렀던 노래의 한 소절처럼 ‘통계와 도표 번호가 된 각 사람’들이 정부의 실책을 증명하거나 혹은 반대의 경우를 입증하는 존재들로 다루어지고 있을 때, 그 각 사람들의 만나고 기억하던 가족들과 친지들의 마음은 어떠할지 민망하고 안타깝다.

공공서비스나 행정에서 개별적이고 고유한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주로 현장에서 다루는 실무자들이다. 대개의 경우 그 실무자들은 경험이 적고 직급이 낮다. 경험이 쌓이고 직위가 높아지면 현장에서 멀어진다. 현장에서 아주 멀어질 때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게 된다. 그 때쯤이면 문제의 구체성 보다는 비슷한 경로로 권한을 획득한 이들 사이에서의 정치적인 고려와, 더 강력한 권한을 가진 상급자의 의중을 먼저 살피게 된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고, 자신들이 정당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무시하게 된다. ‘나도 그런 어려움 정도는 충분히 겪어봤어 징징대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며 찌푸린 표정 지으면, 현장에서 들리는 고충은 쉬 해결된다.

문제는 그러한 과정에서 현실의 문제는 곪거나 터져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는 것이다. 삶의 위기를 완화하고, 보다 안전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보다 나은 안전망을 만들어나가는 공공서비스와 행정의 목적, 가치, 보람 따위는 높이 올라간 분들에겐 이미 오래 전에 잊혀진 것들이다.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삶의 구체적인 문제를 다루고, 그것을 통해서 사회적 과제를 도출해내는 현장에 권한을 주어야 한다. 그 권한이 오용되지 않도록 조정하고 현장의 의견이 정책화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직책을 가진 이들의 역할이다. ‘권한은 현장에, 책임은 위로’ 이것이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위기를 예방하고 관리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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